저는 글로자입니다.

by 슬로
"작가는 무엇보다도 글쓰기의 모든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고 기뻐해야 해요."

끝까지 쓰는 용기 中



나는 글로자다. 글로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아직 글로 먹고살지는 못하지만 매일 성실하게 일정한 글노동을 한다. 처음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학창 시절 때 가장 망설였던 건 창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재능이 없어서 안 될 거라 생각하기를 10년. 그 세월 동안 열심히 남들처럼 근로자로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이 노동이 이왕이면 글노동이면 좋겠다는 소망이 자라나다 못해 갈망으로 바뀌는 순간까지 와버렸다.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글로자로 살아보기로 다짐했다.


KakaoTalk_20241010_220700286.jpg <저희 보호자는 고양이입니다> 책 출간 기념 인증숏


좋은 기회가 닿아 1년도 안 돼서 작가로 데뷔했다. 그 시간 동안 글로자로서 성실히 살아냈다. 그리고 첫 데뷔와 함께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10년 전, 전혀 몰랐던 작가의 재능에 숨겨진 비밀을 말이다. 작가에게 있어 재능이란 잘 쓰는 것이 아닌 끝까지 써내는 것이었다. 이건 마치 운동과도 같았다. 내가 필라테스를 2년 넘게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초보딱지를 떼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만큼 꾸준히 열심히 하지 않아서다. 내가 지난 10년 간 그리고 그전에도 작가가 되지 못했던 이유는 똑같다. 꾸준히 열심히 쓴 적이 없어서다. 난 첫 출판 이후 매일 글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꾸준함이 작가를 완성시키는 재능이라면 해볼 만하다 싶었다.


나는 딱히 잘하는 게 없는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도 사교성이 좋아서 리더 역할을 하는 것도 신체 능력이 좋아서 몸을 잘 쓰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오래 앉아있는 건 누구보다 잘했다. 아침에 등교하면 점심시간 전까지 일어나지 않는 게 힘들지 않았고 저녁 12시까지 공부는 안 해도 앉아있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재능이었다. 그래서 난 평생을 재능 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야 돌이켜 생각해 보니 엉덩이가 무거운 재능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다.


KakaoTalk_20241010_220751357.jpg 나의 작업실과 나의 고양이


20대 후반에 뒤늦은 취업을 했는데 재택을 선호하는 회사였다. 그래서 집에서 매일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근무가 끝나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다 보면 늘 잘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특별한 재능 덕분에 그 생활을 5년 동안 무난하게 지켜왔다. 그리고 글로자가 되었을 때 진가를 제대로 발휘했다. 작년 퇴사한 후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 다짐했을 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격증 시험처럼 문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데드라인이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내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건 자유를 가장한 함정이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글노동만큼이나 주도적인 행위는 없었다. 스스로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책상에 앉아 글을 써 내려가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노동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쉬운 노동이었다. 평생 자유로운 출퇴근 속에서 스스로 방에서 일해왔던 습관은 글로자로서의 방향 전환을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그저 근로자에서 글로자로만 바꾸면 되는 것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늘 하던 대로 집에서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노트북을 켜고 오늘치의 글노동을 해내면 그만이었다. 난 엉덩이가 무거운 덕분에 누구보다 꾸준히 쓰는 글로자로 살아가고 있다.





남들처럼 오후까지는 근로자로, 저녁에는 글로자로 살고 있다. 난 평생 글 노동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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