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지만, 인간이 남긴 몇몇 글은 불명을 획득한다."
- 결혼 여름(알베르 카뮈) 中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을까.
내가 죽어서도 남길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돈도 사람도 나의 껍데기인 몸도 결국은 나를 드러내지 못한다. 내가 죽는 순간 내가 소유했던 모든 것은 남의 것이 된다. 내가 관계 맺었던 모든 사람들과는 인연이 결말에 다다른다. 그렇다고 나의 몸이 썩지 않고 보존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건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난 오랫동안 나를 오래도록 남길 수 있는 방법을 갈망했다.
그러던 중 1940년대 작품을 읽고 나서 깊은 울림을 받았을 때 깨달았다. 인간이 자신을 가장 오래 이 세계에 머물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래도록 가치 있게 보존될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동일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건 동일하지 않다.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난 나의 흔적을 오래오래 남기고 싶은 것이다. 50년이든 100년이든 아주 오랫동안 내 혼은 이곳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분의 짧은 영상이 세상을 뒤덮어도 결국 그 유행 밑바닥에 깔려있는 건 무거운 책들이다. 직접 집필을 해보니 1년에 한 권을 쓰려면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너무 느린 게 아닐까 걱정했다. 1년이면 1분짜리 영상을 마음만 먹으면 300개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작업 공간에서 매일 읽고 쓰고를 반복해도 결과물은 빨라야 1년에 한 번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1분짜리 영상보다 1년짜리 글을 쓰려는 건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까지 남아줄 유일한 나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만 더 오래 이곳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가끔 작가와 대화를 할 때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작가를 책 속에 끌고 들어와 앉혀놓는 것이다. 이 부분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이 장면은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 이 책을 다 쓰고 스스로에게 어떤 보상을 줬는지 찬찬히 하나씩 묻는다. 대답 또한 나의 몫이지만 난 그 시간을 통해 동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 작가까지도 소환해 내며 작가와의 만남을 즐긴다. 그리고 난 상상한다.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우연히 펼치게 된 나의 책 안에서 나를 만나주기를. 내가 이 세상에 있지 않을 때에도 여러 번 혹은 자주 소환되어서 못다 한 인생에 대한 후회가 남지 않게끔 만들어주기를.
그게 내가 삶에 대한 불안을 이기는 태도다. 오늘도 치열하게 쓰는 건 누군가의 가치를 증명하기 전에 그들과 다르지 않은 나를 먼저 증명하는 일이다. 증명이란 결국 삶에 대한 간절함이다. 매일 글노동을 하는 건 이 행위가 완벽하진 않아도 가장 완벽에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