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임에 분명했다.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다. 평생 그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다고.
“언니, 어디서 자꾸 노랫소리 들리지 않아요?”
나라와 포르토 대성당에 들어와 1층 중정을 돌아보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나는 거 같지 않아?”
우리는 계단을 마저 올라 포르토 대성당의 탑으로 올라가 대성당 앞의 광장을 내려다봤다. 철조망 사이로 멀리 광장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네 시, 해가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빛을 비추고 있었고 그림자들은 끝도 없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광장을 걷는 사람들, 계단에 앉은 사람들, 난간에 기대어 멀리 강가를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 그를 찾아냈다.
“저기서 기타 치고 있다.”
그는 난간 쪽 간이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며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그 옆에 있던 작은 앰프를 통해 광장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는 마치 내가 좋아하는 밴드 kings of convenience에서 튀어나온 사람처럼 노래했다. 부드럽게, 은은하게, 그러나 귀에 꽂히는 적정한 발음으로 차분하게, 즐겁게 노래했다. 우리는 서둘러 그의 노래를 가까이서 듣기 위해 내려갔다.
기분 탓인지, 탑 위에서 내려왔기 때문이었는지 그가 노래하는 곳은 햇볕이 더욱 따뜻했다. 몸의 온도가 차근히 올라갔다. 정말 평생 앉아 있으래도, 그 자리에 평생을 앉아 그의 노래를 감상하고 싶었다. 그 순간 세상의 빛깔이 변했다. 분명 이 전까지의 세상이 푸른색이었다면, 그의 노래가 퍼지면서 점차 노란빛으로, 붉은빛으로, 그 사이의 어느 색으로 어지러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음악의 힘은 매번 마주할 때마다 놀라운 것이었다.
서양권 국가를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이 사람들은 정말이지 버스킹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왜 아직도 그가 가수로 데뷔하지 못하고 여전히 길거리에서 기타 또는 바이올린 가방의 입을 훤히 벌려 둔 채 노래를 하고 있는지 의문인 경우도 많았다. 내가 제일 높이 음이 올라가, 하고 자랑하는 식의 노래가 아니라 (물론 그런 노래도 좋다. 다만 내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일상을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만들어주는 힘을 가진 그런 노래를 불러서 그 자리를 떠나기 어렵게 많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호주에서 근무 중이던 카페 바로 앞에서 버스킹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한가롭게 손님을 기다리며 카페 문 밖으로 행인들을 구경하던 차에 한 남자가 홀로 걸어와 앰프를 내려놓는 모습을 봤다. 그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앰프에 연결한 후 연주를 시작했다. 캐논을 편곡한 곡 같았는데 그가 온몸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벅차오른다는 감정을 느꼈다. 천 번을 넘게 들어도 질리기 어려울 법한 연주였다.
근무 도중에 듣기에는 너무 아까운 연주였다. 그 뒤를 지나가는 트램의 거대한 기계 마찰음도, 그 앞을 생수통을 잔뜩 담을 에 담아 옮기는 소리, 자전거의 벨 소리도 오히려 그의 연주를 빛내 줬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카페에서 일하고 있던 내 인생의 한 순간을 단숨에 영영 잊지 못할 인생의 한 페이지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 같은 찰나였다. 아무것도 아닌 날들에 감사하고 싶게 만드는 연주였다.
그러고 보면 항상 음악이었다. 지독한 외로움에 밤거리를 정처 없이 걷던 날들에도, 말 못 할 괴로움에 이불을 꽁꽁 싸매고 눈물을 흘리던 밤들에도 인생의 다정함을 나누어 주던 건 음악이었다. 신의 존재에 의문을 던지고 그를 향해 저주를 퍼붓던 순간에도 나를 구원한 것 그런 것이었다. 따듯한 위로를 담고 있는 가사와 적당히 가슴을 울리는 킥드럼 소리, 여러 악기가 만들어내는 현란한 음들의 화합. 새로운 시야를 건네고 희망을 비춰주는 것도, 모두.
그러나 해가 지고 있었으므로 일몰을 보러 모루 공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몇 번이나 아쉬워하며, 계속 동영상으로 그 순간을 담으며 어렵게 발을 뗐다. 유명한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건너 도착한 모루 공원은 주말이라 그런지 수많은 인파로 앉을자리 하나 찾기 어려웠다. 결국 어떤 자리라고 말하기 어려운 아무 바닥에나 앉아 멀리 지는 해를 바라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다. 포르토의 풍경에 시시각각 다른 색이 입혀지며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갔다.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었다.
공원을 따라 나 있는 입구 길 위에서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인 파두 공연을 비롯한 각종 버스킹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포르토 대성당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게다가 공원 위쪽을 차지하고 무리를 지어 앉아 있는 청소년들이 하나씩 들고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서도 가지각색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공원 전체가 여러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이 사람들은 음악을 즐기며 살아가는구나. 음악은 정말 세계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공원을 가득 메우는 대마초 냄새를 맡으며 조심스레 생각을 고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