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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Nov 09. 2023

역사(임용)의 역사

   이제 와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은 누군가가 말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학점 4점 이상 맞으면 안 된다고. 그건 슬픈 일인 거라고, 그건 왕따임을 증명하는 거라고.


   “네가 1학년 과탑이라며?”

   얼굴도 모르는 선배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나를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아, 뭐, 너도 왕따 처음 봐? 변명을 하자면 나는 ‘자발적 아싸’에 속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뭐 이래 저래 마음 맞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나는 매일 아르바이트를 다니기 바빴고, 장학금에 목을 매며 살았으니까. 적당히 점수 맞춰 온 애들의 불평과 불만이 너무 철없이 느껴졌다.


   왕따가 된 덕에 1학년 말에 교직이수 과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건 학과 성적 상위 10% 이내에 들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선생님, 같은 거 장래희망에 올려본 적도 없지만 일단 신청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에 ‘그런 과에 가면 뭐 할 수 있는데? 뭐, 너 알아서 해.’ 하고 안쓰럽게 쳐다보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뭐가 안 되면 임용고시라도 보고 선생님 하면 되겠지.




   “언니, 나 다시 임용고시 준비할까?”

   창 밖을 보다 말고 고개를 틀어 물었다. 언니의 표정이 구겨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너 4학년 때 그렇게 고생하고도 또 그게 하고 싶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언니는 덧붙였다. 그럴 거면 그때 그냥 일 년 더 해보지 그랬냐, 너네 아빠가 지원해 준다고 하지 않았냐, 이제 와서 또 그런 얘기를 하면 가족들이 뭐라고 하겠냐. 준비된 멘트를 나열하는 사회자처럼,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그런 말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언니는 정말 그걸 내 걱정이라고 하는 거야?

   

   “근데 진짜 모르겠어.”

   “회사? 다 그래, 그냥 다녀.”

   이 언니가 진짜.

   “아니. 여기서 얼마나 더 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언니는 그제야 걱정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잘리니? 사고 쳤어?”

   “아니, 나도 다 알아. 우리 회사만 한 데 물론 있기야 하겠지만 잘 없지. 나 여기 일 적성에 안 맞는 것도 아니고. 설령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냥 이직을 하면 되는 문제지, 다 알아. 근데 언니, 내가 이직을 아무리 많이 해도 말이야, 40대만 되면 내 자리가 없을 것 같아.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 없을 것 같아. 있었는데? 아니 없어요. 있었었는데? 아니 없어요 그냥. 한다니까?”

   언니는 대답 대신 긴 한숨을 쉬었다. 같은 처지니까, 우리는 같은 처지니까.




   임용 시험 준비 얘기는 이번에 처음 하는 게 아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교생 실습 다녀오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고려하고, 임용 시험을 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실제로 1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정작 시험장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땐 그게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그 뒤로 호주에서 일을 할 때도 임용 준비를 계속해서 생각하기는 했었다. 노량진에 가서 공부할 돈을 모아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비록 한국에 돌아와서는 모든 게 달라져 있었지만. 이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도 임용 시험을 치려고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수 차례 마음을 먹었지만 실제로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만약에 못 붙으면?’

   그러니까.

   ‘4년, 5년을 했는데도 못 붙으면?’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내게는 매달 일정한 금액 이상의 돈이 필요했다. 내 입만 걸려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돈이었다. 게다가 일단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시험 준비를 한다니. 돈을 벌고 쓰는 맛을 알아버린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아니었다. 그렇게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현재에 안주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 지난날들의 내 모습이었다.




   다만 이제는 정말 막다른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로 속으로 헤치고, 헤집고 나간 끝에 마주한 막다른 길.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탈출구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나자 쉽게 끊어낼 수 없었다.


   ‘4년까지만 안 가면 되는 거잖아?’


   처음으로 3년 안에 합격한다면 꽤나 해볼 만한 도전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벌써 5월이니까, 6월까지 회사 다니고 준비 시작해서 내년 또는 내후년 안에만 합격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회사 다니는 동안 그 정도 버틸만한 돈은 마련해 놨으니까. 이 돈이 내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내가 시험 운은 있는 편인데, 정말 한번 해볼까. 준비생의 10%가 합격한다고 치면, 우리나라 교육 제도 안에서 항상 그 정도 상위권에는 들었던 것 같은데. 아, 아닌가.


   그러나 한번 시작한 생각은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것이어서,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어느새 임용을 준비하지 않는 미래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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