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1년 정도 늦게 입사한 옆자리 후배는 의자를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How may I assist you?”
그리곤 눈이 휘어지도록 웃었다. 헤헤, 뭐 그런 소리를 냈었나. 양손을 어깨 위로 올리며 으쓱- 한 건 확실히 기억이 난다. 아, 조롱이었다. 그건 명백한 조롱이었다.
그러나 더 나쁜 건 내 쪽이었다.
“제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요. 전 그 정도도 못해요.”
그건 비웃음보다 더 나쁜 자기 비하였다. 나도 혹시 웃고 있었나.
후배는 조용히 돌아섰지만 내 앞에는 굴욕감이 놓였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던 후배도, 짧은 영어로 밥 벌어먹던 나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합리화한 그 일이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마치 쉽게도 날 것을 까먹으려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영화관에 가서 내 자리도 아닌 자리에 앉았다가 누가 와서 거기 제 자린데요, 하고 말한 기분이었다. 자격도 없는데 요령을 부리며 살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계속 이렇게 살면 안 되겠지, 알고는 있지만.
그게 내 잘못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세상은 비상경 문과에게 너무 야박해. 얼마나 야박한지 글쎄 일자리 하나를 안 줘. 일자리를 주면 돈을 안 줘. 돈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주면 시간을 안 줘. 그러니 내가 전공도 아닌 영어를 길거리에서 배워서 일하는 데 써먹고 있지. 이건 명백히 세상의 잘못이야.
다만 그렇게 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기는 간 것 같았다. 나는 되는 않는 영어로 밥 빌어먹는 행위가 지긋지긋했고, 이제는 일기를 쓰는 대신 무언가를 해야 할 시기임을 느꼈다. 몇 개 국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후배들을 원망할 일이 아니었다. 내가 전문성을 가져야 할 때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우리 회사는 이쪽 업계에서 나쁘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연봉으로 따지면 최고 수준이었다. 해외영업, 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손 빠르고 엉덩이 무겁고 꼼꼼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신입 사원을 뽑으면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나처럼 관련 전공이 아니더라도 토익 성적과 회화 면접만 통과하면 붙는 여자들이었다.
그러나 위를 보면 얘기가 달라졌다. 내 윗자리를 올려다보면, 대리급만 가도 여자가 없다. 다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라져 버리고 없다. 결국 한 줌만큼 뽑혔던 남자 사원들이 대리를 달고 차장, 부장, 나아가 임원이 됐다.
내가 여기 더 있으면, 아무리 인정받고 일한다 해도, 대리 달면 나가리 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숨 쉬듯이 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게 남겨진 건 일말의 굴욕감, 일상의 회의감, 막연한 불안감, 그런 것들 뿐이었다.
야근을 하는 날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데. 정말, 정말 아니었는데.”
며칠 뒤 옆자리 사수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던 중 사수가 그런 말을 꺼냈다.
‘우리 회사는 전부 Generalist 뿐이잖아요.’
사전적으로 나쁜 말은 아니었다. 다방면에 걸쳐 많이 아는 사람, 즉 여러 분야를 대체적으로 잘하는 사람을 뜻했다. 그러나 사수는 나쁜 말로 썼다. ‘전문성 없는 사람들’ 즉, 몇 년을 일해도 특출 난 장기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술자리에서는 비슷한 푸념들이 오갔다.
‘이 바닥에 오래 있는다고 무슨 능력이 더 갖춰지는 건 아니야, 노하우는 좀 생기겠지. 그래도 일은 신입들이 더 빠르게, 새로운 방식으로 잘 해낼걸?’
‘나이 먹고도 민망하지 않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Specialist의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나만의 무기가 있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하고 싶었다. 그 어느 차가운 밤에도 고용 불안에 떨며 잠들지 않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갖고 싶었다.
퇴근길에는 습관적으로 새로운 진로를 모색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나만의 무기, 나만의 강점, 그런 게 도대체 뭐가 있을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외국어는 아니라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