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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Jan 17. 2024

미신을 건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들어 전날 미국의 주식 시장을 살폈다.

   “오늘은 좀 올랐네, 그냥 오늘 다 팔아버릴까.”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폭락한 주가를 보고 주식 시장에 뛰어든 동학 개미 중 하나가 나였다. 그때는 주식 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고, 무슨 종목을 사든 쉽게 오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재밌는 게 주식이라면 왜 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 후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 전체적으로 수익을 한번 실현하고 다시 매수를 시작한 바로 그 지점에서 콱 물려버렸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시험을 보기 전까지는 전부 청산해야 했다. 그건 왜 그런 거냐, 하면.




   ‘수입이 있는 한 다른 수입은 얻을 수 없다.’

   이건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믿고 있는 나만의 미신이었는데, 언뜻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 미신은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매니저의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너는, 평생 일할 팔자네.”

   보통 그런 걸 물어보고 다니지 않는데 그날따라 괜히 매니저에게 손금을 물어보고 싶었다. 마침 매니저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걸 확인하고 대뜸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금 볼 줄 아냐고 물은 것도 아니고, 대뜸 손금을 봐 달라는 나의 말에 매니저는 짧고 굵게 답했다.


   “일이 없지는 않겠어. 아마 평생 계속 일이 있을 거야. 끊이지 않고.”

   매니저는 자연스럽게 손바닥을 가져가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툭툭, 별 중요치도 않은 얘기를 하듯 내뱉었다. 그리고는 그렇게 평생 일을 해도 사모님처럼 도도하게 차 뒷좌석에 앉아 기사가 모는 차를 타는 일 같은 건 없을 거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는 네가 벌어먹고 살 팔자라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매니저의 집안이 대대로 신기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심지어 동생은 이미 무당이 되었고, 동생이 되지 않았다면 그 매니저가 무당이 돼야 했을 거라는 얘기 마저. 한 동안은 그 말을 잊으려고 애썼다. 아무리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하는 얘기를 담아둘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살면 살수록 그 말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들이 생겼다.


   일단 취직 준비를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취업에 성공하다가도 막상 직장을 얻고 나서 이직을 하려면 한 번도 되지 않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다른 자리를 알아보면 채 몇 주가 걸리지 않아 다른 회사에 들어가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자리에 지원을 하면 서류에서부터 붙지를 않을 때,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시험을 준비하려고 하면 매번 일이 생겨 실패할 때. 그런 때마다 매니저의 말이 떠올랐다.

   ‘일은 끊이지 않지만, 일단 일이 생기면 그걸로 끝이구나.’


   언제부턴가는 그 말을 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일이 없으면,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일하게 만들겠지. 그러니까, 내가 돈을 벌지 않고 있으면 내가 돈을 벌 수 있도록 만들어주겠지. 내가 돈을 벌지 않고 공부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합격시켜서 일을 하게 만들겠지.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었다. 회사를 다니는 한 붙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으므로.




   이제 수입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건 모두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라도 주식이 내 주수입원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없어야 하니까. 누군가는 그런 유사과학도 아닌 미신을 믿고 자빠진 거냐고 나의 어리석음을 따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간절하면 이렇게 된다. 이렇게 해서라도,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서라도 합격의 문을 넘고 싶으니까.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을 폈다.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겼지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글자를 눈앞에 두고 내 머릿속에서는 시험에 합격한 미래와 불합격한 미래가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누가 누가 제 중심을 차지하나를 두고 수만 가지 상상이 펼쳐졌다. 그리고 최대한 합격하는 상상을 많이, 세세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하지 않나.


   마지막으로 나를 믿자고 되뇌었다. 지난날, 수 없이 많은 핑계와 어려움을 딛고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끝없이 눈물 흘린 나를 믿자고. 이만큼 했으면 이제는 나를 좀 믿어줘도 된다고.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믿어줄 리 없으니까. 미신에 me信을 더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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