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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Dec 27. 2023

헤어지지 못하는 개론서, 떠나가지 못하는 기출

   ‘공부 방법 잘못 잡아서 몇 달 공부 날렸어요.’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볼 때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공부 방법에 정답이라는 건 없지만 자신에게 맞는 공부 방법은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걸 빨리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이렇게 범위랄 게 없는 시험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몇몇 사람들은 개론서가 답이라며 십 수번을 읽어 내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요약집이나 단권화를 믿고 그것만 주구장창 파기도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교과서를 잡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기출만 파기도 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갈팡질팡, 뭐가 맞는지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럽기만 했다.


   공부하면서 샀던 기본 개념 강의를 모두 끝냈다. 인터넷 강의라지만 해당 강의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이고 볼 수는 없었다. 교육학은 한 번만, 전공은 빠른 속도로 두 번씩 들었다. 그런 후 한참을 망설였다. 모의고사 강의를 듣기 전까지 어떻게 틀을 잡아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빠른 시간 안에 가장 많은 내용을 습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따지자면 기출문제를 보는 것보다 요약집을 보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건 그 때문이었다.


   “내가 시험에 떨어지면 그게 기출을 덜 푼 탓이겠냐고, 그냥 기본 개념을 몰라서겠지.”

   그런 생각으로 다른 사람이 요약해 놓은 내용을 프린트해서 보고 또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큰 틀을 잡고, 구조화를 한 다음 그 안에 세부 내용을 넣는 식이었다. 역사 공부를 할 때 가장 문제는 항상 헷갈린다는 것이다. 너무 비슷한 지명, 인명, 왕조, 전쟁 등이 반복되기 때문에 내가 공부하는 시기가 어느 시기인지 반드시 구분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 이 성종이라는 왕이 삼국 시대에 등장한 인물인지 고려인지 조선인지 계속 헷갈리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어려서부터 독학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잠깐 다녔던 피아노 학원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학원에도 발도 들이지 못했다. 별 달리 학원에 욕심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럴 형편이 안 됐다. 미술 학원만큼은 가고 싶었던 내가 엄마에게 혹시 학원에 가면 안 되냐고 물었을 때도, 엄마는 여느 때와 같은 답을 했다.

   “학원은 의지 없는 애들이나 가는 데야.”


   엄마는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게 엄마의 신조였는지 엄마에게 있었던 마지막 자존심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어린 내가 곧이곧대로 그 말을 믿는 동안 나는 혼자서 뭐든 잘 해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현실은 잔혹했을지 모르나 어쨌든 도움은 됐다.


   그 덕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도 알아서 공부해서 수능을 치고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나한테 맞는 공부 방법과 집중하는 방식을 파악해 놓은 것도 도움이 됐지만 무엇보다 큰 건 알아서 계획을 짜고 공부를 해내는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자연스럽게 갖췄다는 점이었다. 그 후로 대학에 가서도 계속해서 좋은 학점을 유지할 수 있었고 토익, 토플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도 한 번에 좋은 점수를 얻었다. 그렇기 때문에 임용 고시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게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수 있었다.




   얼마 뒤 인터넷으로 주문한 암기 펜이 여러 개 도착했다. 짙은 녹색 사인펜 같은 암기펜으로 외우고 싶은 부분을 칠하면 붉은색 셀로판을 갖다 댔을 때 해당 글자가 보이지 않아 그 자리에 들어갈 단어나 내용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펜이었다. 서둘러 암기 펜을 들고 전공 요약집의 거의 모든 중요한 단어를 암기펜으로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둘러 외워 나가기 시작했다.


   교육학은 A3 사이즈로 주요 내용을 구조화해놓은 표를 뽑고, 각 주제 별로 나눠져 기재되어 있는 내용을 포스트잇으로 가렸다. 그리고 주제의 제목만 본 채로 해당 주제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들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보다 치열한 암기 싸움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기출문제 풀이를 시작했다. 기출문제라는 건 워낙에 소중하기 때문에 조금 더 준비가 됐을 때, 조금 더 지식을 쌓고 났을 때 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얼른 문제를 풀고 틀려야 더 치열하게 외울 수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틈틈이 개론서를 반복해서 읽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특히 개론서에서 자세히 나오는 부분이나 복잡한 부분, 기출문제가 자주 출제되는 부분은 따로 떼어내서 더욱 자주 읽었다. 기출문제를 보고 어느 개론서에서 나왔는지, 어떤 식으로 출제가 됐는지 분석하고 예상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분석은 과감하게 버렸다. 다시 한번, 내가 시험에 떨어진다면 그건 기출을 분석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본 개념이 부족한 탓이기 때문이었다.




   10월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모의고사 강의를 들으며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이제 4개월, 비로소 남들과 속도를 맞춰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공부 방법이 제일 맞는지, 뭐가 정답인지, 그런 건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는 언제나 그랬듯 나를 믿고 나만의 길을 가야 했다. 흔들리면 거기서 끝이라고 되뇌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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