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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키모자이크 Oct 18. 2020

<연재소설> 영원의 정원 / 제2장 감교수

"정 써보고 싶으면 나 죽은 다음에!"

  2019년, 테라스가 있는 어느 술집.


  나는 감교수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오늘의 주제는 '불평등'이나 '부조리'에 대한 것들이다. 감교수는 고대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파라오와 신전의 권력에 대해 말한다. 몇 번의 건배가 오가고, 대화는 자연스레 종교에 대한 것으로 넘어간다. 나는 유일신에 대해 말하고, 감교수는 개혁과 전쟁, 정치에 대해 말한다. 얼핏 대화가 잘 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큰 화법의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주로 키워드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감교수는 정확한 데이터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파라오, 권력, 신전, 영향력 뭐 이런 것이겠죠?"

  "그렇지! 그리하여 기원전 1380년, 아멘호테프 4세가 칼날을 뽑아 든 것이지."

  "개혁, 유일신..."

  "그렇지! 아톤!(유일신 종교의 태양신) 헤스프(이집트의 행정 단위)의 지방신을 죄다 정리한 거야. 나일 강 하류로 궁전도 옮기고, 아케타톤으로 수도도 옮기고 말이야. 거기가 바로 현재의 '텔 엘-아마르나'라는 도시예요."


  감교수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말한다. 이상하게도 감교수의 존댓말은 반말보다 더 반말같이 들린다. -그게 기분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감교수는 술잔을 들어 올리며 자아도취에 빠져든다.


  "라 호라크티,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자, 태양 원반에 쓰여있는 빛의 이름을 가진 자, 라-호루스-아텐!"


  나는 감교수와 술잔을 부딪히며 퍼즐앤드래곤(일본 퍼즐게임, 이집트 고대신 캐릭터가 등장한다.)을 떠올린다. 도르륵도르륵하고 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우리는 그 이후에도 몇 시간 동안이나 대화를 이어갔다. 중요한 것은 이 대화가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한 대화였다는 것이다. 이집트에 대한 대화가 아니라.


  감교수는 초록색 모자를 만지작거린다. 모자를 '쓴 것'이 아니라 아예 정수리에 딱 '붙인 것' 같은 모양이다.


  "교수님, 저 그 모자 한 번만 써봐도 돼요?" 내가 묻는다. 감교수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 말한다.


  "정 써보고 싶으면 나 죽은 다음에! 술이나 마셔요."


  나는 또다시 감교수와 건배하고 술을 마신다. 그만 마시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잔에 입을 가져다 대고 술에 입술을 적신다. 고양이가 물을 마시듯 혓바닥을 몇 번 날름거리다가 교묘하게 술을 도로 뱉고 잔을 내려놓는다. 


  "어이! 평등이라고 평등이요! 똑같이 마셔야지!" 눈을 가늘게 뜬 감교수가 말한다. 나는 다시 억지로 술을 목구멍 안으로 넘기면서 이 상황이 몹시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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