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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키모자이크 Oct 18. 2020

<연재소설> 영원의 정원 / 제5장 집착은 썩은 향수

자네는 썩은 향수병을 들고 있었던 거야.

  감교수가 눈을 가늘게 뜬다. 케케묵은 짜증과 분노가 입가에 드러난다. 탁! 하고 손바닥을 내리쳐 모기를 때려잡고는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죽은 모기는 감교수의 흰 셔츠 위에 달라붙어있다. 손바닥에 약간의 피가 묻어 나온다. 감교수는 모기사체와 손바닥을 번갈아보며 으... 하는 입모양을 한다. 손날로 가볍게 옷에서 모기를 털어낸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기를 흰 셔츠에 발라(spread) 버리고 만다. 감교수의 목에 힘줄이 선다. 흰 셔츠에 선명하게 그려진 검붉은 라인이 흉악망측하다.


  "여기 물티슈 있습니까?" 감교수가 술집 직원에게 다급하게 묻는다. 예전 같으면 '냅킨'을 달라고 했을 텐데, 언제부턴가 '물수건’를 찾더니 요즘엔 당연하게 ‘물티슈'를 찾는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변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변화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다. 모기가 죽음의 객체이듯. 감교수가 모기의 속성이나 역량 따위를 염두에 두었을 리도 없다. 변화의 주체적인 시각에서 보면 우리도 모기와 다를 바가 없다.


"옷에 너무 집착하시는 거 아니에요? 차라리 화장실에 가서 빨지 그래요?" 내가 말한다.

"입은 채로 빨기엔 애매하잖아. 위치가. 안 그래요?" 물티슈를 문지르던 감교수가 짜증 섞인 투로 말한다.

 "그래도 벗어서 세제로 빠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안다구요 알아. 핏자국에 뜨거운 물이 금물이라는 것도 잘 알지요. 내가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지. 아, 근데 자네는 그 '발라버린다'는 말이 이런 의미인 줄 알았나? 나는 지금껏 별생각 없었는데 말이야. 오늘 모기 한 마리를 실제로 발라버리고 나니까, 절대 사람이 사람을 발라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발라버린다'라... 그게 그런 의미였나. 나는 풉 하고 웃는다.


 "에이! 포기 포기. 자네가 하나 사주는 방법도 있어요오오" 감교수가 말끝을 늘어뜨리며 능청스럽게 말한다. "뭐 그러시든가요." 나는 애매하게 대답한다.


"그러고 보니 자네를 처음 본 날이 생각나는구먼. 기억나요?"

"기억 안 날 수가 있겠어요? 얼마나 비현실적인 등장이었는데..."

"하하! 그때도 딱 그런 애매한 표정을 짓더니, 지금도 참- 애매해. 자네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네요."

"당연히 칭찬이지요. 이 사람아."

"시간 참 빠르네요."  


감교수는 잠시도 상념에 젖을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고민이 뭐라구요?" 감교수의 표정이 가면을 벗듯 일순간에 진지하게 바뀐다.

"그  꽃이요. 대체 왜 혼자만 죽은 건지..." 하고 내가 말한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집착이라구요 집착!" 감교수가 말한다.

"알아요. 그래도 너무 궁금해서 그래요."  

"하! 이 답답한 친구야. 궁금해하는 것이 집착이라는 게 아니고! 집착 때문에 죽은 거라고요."

"네? 그럴 리가요. 늘 똑같이, 골고루, 물을 줬는데, 유독 그 꽃만 죽어버린걸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이 뭐였는지 알아요? 그건 바로 무덤에서 이름을 지우는 거였지. 자네는 그 꽃의 이름을 지운 거라고! 아이고... 이 답답한 친구야. 자네는 그 꽃의 이름도 모르지 않았나? 장미인지 국화인지 그런 형이하학적인 이름 말고요."

  "그 꽃에게 다른 이름이 있었나요?"

  "당연하지! 이 친구야. '유대(紐帶)'라는 이름이 있었지!"

  "제가 아는 그 '유대'와 다른 건가요?"

  "자네가 아는 '그 유대'를 내가 모르는데 어떻게 대답을 하나? 갈수록 멍텅구리가 되어가는구만. 쯧쯔..."

  "뭐 한자는 다르지만 정 모르겠으면 나 '감교수'할 때 그 '감!'을 뒤에 갖다 붙여 봐요. 유대감(紐帶感)이라고! 지금 자네에게는 최악의 멍텅구리가 빙의한 것 같으니 더 쉽게 말하자면, 자네는 공통분모를 없애버린 거야. 이보다 더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제가 집착을 해서 유대감을 없앴다. 이 말인가요?" 나는 감교수의 설명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감교수는 다시 설명하기 시작한다. 아마 또 난해한 비유가 난무할 것이다.


  "집착은 썩은 향수와 같아요. 자네는 썩은 향수병을 들고 있었던 거야. 꼭 목덜미나 손목에 갖다 뿌려야지만 썩은 향수인가? 아니지. 향수병 안에 미동도 없이 고여있어도 썩은 향수는 썩은 향수라고. 그걸 병째로 갖다 버리지 않는 이상, 자네는 '준비된 집착꾼'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이지요."

  "'준비된 집착꾼'이라... 그것 참 듣기 힘든 말이네요."

  "준비된 집착꾼! 준비된 집착꾼! 준비된 집착꾼! 준비된 집착꾼! 준비된 집착꾼!..." 감교수는 빠른  발음으로 나를 놀려댄다.


  그 꽃을 편애했던 사실을, 나는 이제야 인정한다. 그 꽃을 마음속 깊이 원했던 사실도 인정한다. 그 꽃을 꺾어서 가지려고 했던 마음도.  


  "자! 그리하여!" 감교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한다.

  "그리하여?" 내가 묻는다.

  "다시 정원에 들어가고 싶다. 이 말 아니에요?"

  "맞습니다." 하고 내가 말한다.

  "그 말인즉슨! 셔츠를 새로 하나 사주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감교수가 윙크를 하며 말한다.

  "네. 그것도 맞습니다." 졌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가 말한다.

  "자아 그럼 출발해볼까!"


우리는 정원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반드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감교수의 말을, 나는 믿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의심'을 했을 텐데, 언제부턴가 '우려'를 하더니 요즘엔 '신뢰'하고 있다. 이 변화의 주체는 내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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