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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키모자이크 Oct 25. 2020

<연재소설>영원의 정원 / 제14장 예술의 경지

"잉위는 미니멀리스트이다."

  내리막길은 미끄럼틀로 이어진 긴 통로다. 어디로 가는 건지, 언제까지 미끄러져 내려가는 건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미끄러져 내려가는 동안 나는 잔디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악취까치는 ‘잔디 하나하나가 다 누군가의 마음’이라고 했다. 나는 왜 가슴 한편이 아리고 애잔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일까. 멀어질수록 더 커지는 물결처럼 잔디밭에서 멀어질수록 더 큰 그리움이 밀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손에 쥔 잔디 한 움큼을 비벼본다.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한다. 마침내 그리움이 나를 완전히 집어삼켜 절박한 심정에 사로잡혔을 때 나는 풍덩 소리를 내며 연못으로 추락한다.  


  연못에서 헤엄치던 잉어 한 마리가 물 밖으로 나온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걸어 나온다. 잉어의 움직임에서 잔상이 보이는 듯하더니, 어느샌가 잉어는 걷고 있었다. 내가 눈을 비비는 찰나의 순간에 꼬리지느러미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튼실한 다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방금 전까지 새와 대화를 — 대화라고 하기엔 다소 일방적인 것이었지만 — 나누다 온 나는 당연히 걸어 다니는 잉어를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는다.


“넌 누구야?” 내가 묻는다.

“이 몸은 ‘잉위’이다.” 잉어가 말한다.


  잉위라니. 잉어 치고는 너무나 멋진 이름이 아닌가. 나는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Yngwie Malmsteen)*을 떠올린다. 잉어와 잉베이를 어떤 범주로 묶으면 좋을지 생각해본다.


“잉베이가 아니고 잉위?” 내가 농담 삼아 묻는다.

“잉위는 말 많은 기타리스트 따위가 아니다. 잉위는 메타(Meta) 잉어이다. 잉위는 ‘잉어 위의 잉어’라는 뜻이다.” 하고 잉위가 말한다. 잉위의 말투는 국어책을 읽는 초등학생 같다. 

“말 많은 기타리스트라고?” 나는 묻는다.

“기타리스트는 연주로 말한다. 그의 연주는 노트(note, 音)가 너무 많다. 그러므로 그는 말이 많다. 그는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가 아니라 ‘모어 이즈 모어(More is more)’라고 말한 멍청이이다. 잉위는 다르다. 잉위는 미니멀리스트이다.” 하고 잉위가 말한다.


  나는 잉위라는 이름을 가진 이 걸어 다니는 잉어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끊임없이 나를 질책하던 악취까치와는 달리 이번엔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기대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잉위는 볼품없이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아이 깨끗하다! 아이 깨끗하다!” 하고 외치며 똥을 누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추함의 끝을 보는 것만 같다. 볼 일을 다 본 잉위는 자신이 싸놓은 똥을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는 그런 잉위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역시 예술이다. 잉위 똥은 오천만 원짜리 같다.” 잉위가 말한다.

“그 똥이 예술이라고?” 내가 묻는다.

“이게 예술이 아니면 그럼 뭐가 예술이냐?” 잉위가 정색하며 나에게 따져 묻는다.

“이봐, 이 세상의 모든 동물은 똥을 싼다고. 그럼 모두가 예술가겠네?”

“답답하다. 그런 똥과 잉위의 똥은 다르다.”


  잉위는 어기적거리면서 연못 주변 여기저기에 똥을 싸놓는다.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설마 저 똥을 다 치우는 것이 이번 업무는 아니겠지. 하고 생각한다.



각주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의 헤비메탈 기타리스트. 영어 발음을 대강 추측해서 옮긴 잉위 맘스틴이라는 잘못된 표기로 오랜 기간 통용되어 왔다. 이 통용 표기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원발음에 가까운 잉베이 말름스틴이라는 표기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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