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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키모자이크 Oct 27. 2020

<연재소설>영원의 정원 / 제16장 거울에 비친 시간

우리는 순간에서 영원으로 향하는 존재이다

  잉위는 연못 주변에 멋대로 똥을 싸놓고 나무 그루터기에 느긋하게 걸터앉아 담배를 피운다. 꼬리지느러미 사이 어딘가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더니 이번에는 거울 하나를 내민다. 거울에는 잉위의 똥이 조금 묻어있다.


  "너는 거울이 필요할 것이다.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다. 절대 아무나 주는 것이 아니다. 그 거울은 이천만 원짜리 거울이나 다름없다."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본다. 스무 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30대의 남자가 보인다. 머리는 묶일 정도로 길게 자라 있고, 수염이 덥수룩하다.


  "세월은 참 빠르다." 잉위가 말한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묻는다.

  "같이 여행을 한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위대한 잉위와 함께 보낸 시간은 절대로 아깝지 않다." 하고 잉위가 말한다.

  "지금이 혹시 몇 년도야?" 내가 묻는다.

  "우리는 순간에서 영원으로 향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굳이 바깥 시간으로 따진다면 지금은 2008년도이다." 하고 잉위가 또박또박 말한다.

  "2008년이라고? 바깥 시간이라고?"


  나는 분명히 1998년에 처음 이 곳으로 들어왔다. 그 후에는 비현실로 가득한 현상들이 내 감각을 지배해왔다. 나는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어느 지점에서 경험치를 쌓는 것이라고 여겼다.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무언가를, 또는 어떤 보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러가버린 것이다.


  "잉위는 거울이 다시 필요하다. 너에게 거울을 주고 나니 내가 볼 거울이 없다. 그 거울을 가져가면 나는 무슨 거울을 보라는 말이냐. 거울을 도로 내놓던지 아니면 거울을 새로 하나 사주던지 그건 너의 자유이다."

 

  내가 먼저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하고 생각해보지만 입을 떼기가 귀찮아진다.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은 말도 없고 하고 싶은 말도 없다. 피곤하다고 느낀다.


  잉위가 어기적거리면서 다가온다. 나는 바닥에 놓인 거울을 향해 주먹을 내리친다. 어딘가에 꽉 막혀있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다. 나는 멈추지 않고 거울을 완전히 박살 내버린다.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깨진 거울은 여전히 투명한 표면을 유지하고 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내리막으로 향하는 통로 입구가 보인다. 나는 피 묻은 손을 부여잡고 내리막으로 다시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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