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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키모자이크 Oct 24. 2020

<연재소설>영원의 정원 /제12장 악취를 풍기는 주제에

"음... 아무래도 넌 융통성이 없어!"

“응 자네는 죽었었지요오-“

 

나는 감교수를 멀뚱멀뚱 바라본다. 


“죽었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 참! 이래서 상상력이 없는 친구랑은 도무지 대화가 힘들다니까!”

“좀 이해할 수 있게 말해줄 수는 없어요?”

“지금은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니까! 받아들여야 할 때이니까!” 하고 감교수가 어딘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말한다.

“아… 관두시죠. 잔디나 마저 뜯어야겠어요.”


나는 감교수를 등지고 앉아서 다시 잔디를 다듬기 시작한다.


“잔디니까! 그러니까! 왜 그럴까! 아까 아까! 큰일이니까! 쪼여버리니까!”

“아니, 또 왜 자꾸 까! 까!로 끝나는데요?” 하고 소리치며 뒤돌아봤을 때,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곧이어 어디선가 희미한 악취가 풍겨온다. 지금껏 어디에서도 맡아보지 못한 이상야릇한 악취다. 차라리 코를 쥐어잡을 정도로 진동하는 악취가 나을 것 같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희미한 악취가 더 괴로운 법이다. 나는 어디에서 풍겨오는 냄새인지 알아내기 위해 코에 감각을 집중한다. 아까의 그 향기는 다 어디로 가버렸나.

잔디밭 어딘가에 죽은 쥐의 시체라도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악취의 근원은 머리 위에 있었다. 악취를 풍기면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다. 아까 만난 주근새는 분명히 아니다. 주근새보다는 몸집이 훨씬 작다. 새가 날개를 펼치고 활강하더니 내 발 밑에 착지한다.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넌 얼굴이 왜 그래?” 새가 묻는다. 새랑 대화하는 것쯤은 이제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냄새가 고약해서.” 하고 내가 말한다.

“첫 만남에 그런 표정을 짓다니, 넌 예의라곤 없네?” 새가 말한다.

“그래. 예의 없어서 미안해.” 악취를 견디는 내 표정은 더 일그러진다.

“넌 엄지 맞지?” 새가 묻는다.

“응. 너는 누군데?” 내가 힘겹게 묻는다.

“나는 악취까치야. 감을 쪼아 먹으면서 나름 잘 살고 있지.”


나는 그제야 왜 감교수가 ‘까! 까!’로 끝나는 말을 하며 모습을 감췄는지 이해가 됐다. 이 더러운 까치가 온다는 것을 나에게 알리려고 했던 것일 테다.  


“자! 일을 시작하자!” 악취까치가 말한다.

“무슨 일?” 내가 묻는다.

“돈을 받기로 했으면 당연히 일을 해야지. 넌 개념이 없네?”

“너도 관리인이 보낸 거야?”

“당연하지! 눈치도 없네? 너는?”
 

악취까치는 끊임없이 나를 지적했다. 그 지독한 악취를 잊게 만들 정도로.


“잔디를 균일하게, 골고루! 넌 재능이라곤 없네? 거긴 더 뜯어야지! 넌 일머리가 없네? 뜯은 잔디는 저 포대자루에 채워 넣어야 해. 넌 손이 너무 느리네? 이 잔디 하나하나가 다 누군가의 마음이란 건 알아? 넌 그런 것도 모르지? 머리도 나쁘네? 그래서 균일해야 되는 거라고! 어떤 마음 하나만 길게 자라면 되겠어? 당연히 모르겠지. 너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야 하다니. 아, 정말 나는 이렇게 외롭고 바쁘다. 정말. 너는 그런데 세수는 하고 온 거야? 위생관념도 없는 건 아니겠지?”
 

똥밭에서 몇 백 년 동안이나 구르다 온 것 같은 악취를 풍기는 주제에 나에게 위생관념을 이야기하다니. 정원의 잡일을 맡아서 하게 될 거란 건 미리 알고 있었다. 정원관리에 아무런 경험도 없는 나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악취를 견디며 잔디를 뜯는 것보다는 좀 더 근사한 업무를 기대했었다. 정원수를 다듬고 화단을 가꾼다거나, 연못을 꾸미고 낡은 벽을 칠하고. 그런 거 말이다. 악취까치는 쉬지도 않고 말한다.


“옷차림은 그게 또 뭐야? 보기 싫으면 내 눈을 질끈 감으라는 건가? 넌 배려심도 없네? 잡초는 뿌리까지 완전히 뽑으라고! 지금 생각이 있는 거야? 내 말에 일일이 대답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를 무시하는 건 절대 용납 못 한다고! 알겠지? 그리고 내가 이렇게 진심으로 충고를 해주고 있는데, 지금까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만 봐도! 음… 아무래도 넌 융통성이 없어.”


‘나에게 없는 게 정말 많구나’ 하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잔디를 다듬는다. 이 넓은 잔디밭을 거의 다 훑고 지나온 것 같다. 끝날 무렵이 되니 이제야 제법 요령이 생겼다고 느낀다. 코가 완전히 마비된 건지 악취도 이제 가신 듯하다. 


나를 감독하던 악취까치가 이번에는 “떼떼! 떼떼!”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악취까지가 “떼떼! 떼떼!”소리를 멈춘다.


“아, 정말 나는 화장실 한 번 갈 틈도 없다!” 


악취까치는 다시 지독한 냄새를 풍기면서 풀숲 뒤로 훌쩍 날아가 버린다. “떼떼! 떼떼!” 하는 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것만 같다.


“그건 잔디밭에서 떼*를 떼라는 소리예요.” 감교수의 목소리다.

“아니 또 어디서 나타난 거예요?” 내가 묻는다.

“쉿! 쪼이면 큰일이라니까! 아파요. 아프다고!” 


감교수는 한 손으로 모자를 붙들고 황급히 풀숲 반대편으로 뛰어가버린다. 떼를 떼라는 소리라니.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미 맨손으로 잔디를 떠내고 있다. 어림잡아 가로, 세로 20센티 정도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나는 잔디를 뿌리째 떠낸다. 잔디를 들어내자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통로 입구가 보인다. 첫 번째 정원의 마루 밑에서 봤던 것과 같은 입구다. 나는 묘한 이끌림을 느낀다.

맨손으로 풀을 뜯고 땅을 파헤치느라 손이 엉망이다. 잔디밭을 돌아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이 아리다. 애잔한 마음이 밀려온다. 나는 잔디 한 움큼을 손에 쥐고 다시 한번 내리막을 향해 몸을 던진다.


각주

*흙이 붙어 있는 상태로 뿌리째 떠낸 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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