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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키모자이크 Oct 22. 2020

<연재소설> 영원의 정원 / 제11장 주근새

"나는 주근새야"

  나는 햇살이 내리쬐는 잔디밭에 누워있다.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눈을 뜬다.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얇고 가느다란 다리를 뽐내듯 서있다. 새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나뭇가지 같은 한쪽 다리를 들어서 다른 한쪽 다리에 기댄다. 다시 한 발을 앞으로 내딛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다리에 체중은 실려있지 않다. 몸은 떠있고 다리만 움직이는 것 같다. 이 커다란 새는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계속 다가온다. 아주 가까워질 때까지.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쓴다.


"죽은 것?" 새가 말한다.

"아니. 살아있어. 여기가 어디지?" 하고 내가 말한다.

“두 번째 정원인 것.” 새가 말한다.


마루 밑에 있는 장작을 들어내고 내리막길로 몸을 던진 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다. 어서 정원관리인을 만나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고 싶은데, 감나무에서 떨어진 교수를 만나질 않나. 그리고 뜻밖의 소녀를 만나질 않나. 게다가 지금은 새랑 대화를 나누고 있다.


"누구야 넌?" 내가 새에게 묻는다. "난 주근새인 것." 하고 새가 말한다.


"죽은 새라고?"

"아닌 것! 주근! 새인 것!"


새가 긴 목을 동그랗게 구부렸다 편다.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렇게 큰 새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다. 모든 움직임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새가 작은 얼굴을 돌려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새의 얼굴에서 주근깨를 본다.


"주근깨가 있구나?" 내가 말한다.

"주근깨가 있는 것. 그래서 주근새인 것."

"응. 알겠어." 주근깨가 있어서 주근새라... 나는 꿈이려니 생각하고 납득을 한다.


"자! 이제 일할 시간. 너는 잔디를 깎아야 하는 것."

"그게 내 업무야?"

"돈을 받기로 했으면 당연히 일을 해야 하는 것."

"이 많은 잔디를 뭘로 깎으라고?"

"손으로 뜯을 것! 길이는 길지도 짧지도 않을 것! 이건 관리인이 시킨 것!"


  그 말을 남기고 새는 날아가버렸다. 큰 날개를 한 두 번 펄럭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날아올라 하늘 저 멀리로 가버린 것이다. 나는 일어서서 새가 사라진 쪽 하늘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해가 기우는 걸 보니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다. 나는 주근새의 지시대로 계속해서 맨손으로 잔디를 뜯었다. 손가락이 풀빛으로 물들고, 몇 군데는 풀에 베이기도 했다. 잡초를 뽑고 잔디를 뜯어낼 때마다 베인 상처에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지만, 내가 받기로 한 보상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


  나는 잠시 앉아서 쉬기로 한다. 엄지손가락으로 다친 검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쓰다듬어본다. 이번엔 반대로 검지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쓰다듬어본다. 그러다가 문득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엄지손가락으로는 절대 검지손가락 전체에 닿을 수 없다. 만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검지손가락은 엄지손가락 전체를 만질 수 있다. 나는 엄청난 발견이라도 한 듯 계속해서 손가락을 서로 비벼대고 있었다. 감교수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잘 하고 있어요?"

  "네. 그럭저럭이요."

  "하! 그래요. 근데 이해 안 가는 것 투성이지?"


  이 사람한테 물어보면 답을 알 수 있을까. 내가 처한 현실이 몹시 이상하다. 주변에 물어볼 데라곤 없다. 이 사람밖에는.


  "이건 꿈인가요?"

  "아니에요."

  "그럼 혹시 저는 죽었나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볼을 꼬집어보듯, 여기가 이승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응! 자네는 죽었었지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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