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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키모자이크 Oct 21. 2020

<연재소설> 영원의 정원 / 제9장 그들의 대화

"지금 인과율(因果律)에 의심을 품는 건가?"

"남자 주인공은요?"

"이제 겨우 두 번째 정원으로 가고 있어."

“환생 기억은 다 잊었나요?"

"당연하지. 수 천 년 동안 진행돼 온 일이야."

“이번엔 극장이더군요. 참신했어요.”

“훗, 참신이라… 그래서, 이번 역할은 맘에 드나?”

“극장 관리인은 또 처음이네요.” 

“항상 처음이었지. 안 그런가?”

“하긴 그렇죠.”

“이전의 생을 한 편의 연극으로 인식하겠지. 그마저도 지금은 잊었겠지만.”


“그럼 이제 카하이, 아니, 남자 주인공의 시간은 1998년인가요?”

“그렇게 되겠지. 환생에 타임머신을 더한 거랄까.”

“한 두 번 본 것도 아닌데, 꿈에서 꿈으로 연결하는 그 솜씨는 정말 볼 때마다 놀라워요.”

“가슴에서 가슴으로. 그게 우리가 하는 일 아니겠나?”

“그런데… 이번엔 뭔가 좀 다른 느낌이 들어요."

"지금 인과율(因果律)에 의심을 품는 건가?" 

"양상이 다르잖아요. 이번엔 소녀를 만지지도 않았다고요."
  

  캄캄한 극장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매의 눈을 가진 남자가 머리 위의 원반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말한다. 

  

  "'우리는 앞서 이를 계산했으며 이 파고에 맞설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다'... 기억하나? 러시아 대통령 옐친이 TV에 나와서 떠들었던 말이지. 나는 옐친 같은 허풍쟁이가 아니야. 소녀를 만지지 않은 것? 그 정도는 변수도 아니지. ‘앞서 계산했다’라는 건 이런 거야. 모든 건 예측 범위 안에 있어. 의심하지 말게. 이건 신의 영역이야."


  뾰족한 수염을 가진 남자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신의 영역..." 하고 그가 되뇌듯 말한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네."

  "라-호루스-아텐!" 뾰족한 수염을 가진 남자가 말한다.

  "라-호루스-아텐!" 매의 눈을 가진 남자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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