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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Feb 19. 2023

팀장직을 내려놓고 배운 것

서투르지만 둥글둥글했던 팀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작년 5월 《서투르지만 둥글둥글한 팀장입니다》책을 출간하고, 한동안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교보문고 등의 도서 사이트에 올라오는 리뷰를 꼼꼼하게 모니터링했다. 초보 팀장으로서 느끼는 감정과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공감이 되고 재밌었다는 반응에 참 기쁘고, 감사했다. 


그중에는 '책 속의 서툴렀던 팀장은 현재 어떻게 성장했을까?' 후속 이야기를 궁금해주시는 독자들의 후기가 종종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책 출간 이후 일어났던 지난 10개월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팀원들에게 알맞은 피드백을 주며 지속적인 성장을 돕는 팀장, 규모가 커진 조직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진두지휘하는 팀장, 더 이상 서투르지 않고 성숙해진 팀장. 이런 모습으로 성장한 해피엔딩을 기대한 독자가 있다면 죄송하지만,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팀장직을 내려놨다. 


조직 개편으로 내가 리드했던 콘텐츠 팀이 사라졌다. 원래 우리 팀은 콘텐츠, 영상, 디자인 인력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를 아우르는 상위 차원의 Lab이라는 조직이 신설되고 콘텐츠, 영상, 디자인은 각각의 파트로 분리 독립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새로운 팀장이 들어왔다. 


주변 동료들은 팀장에서 갑자기 팀원으로 내려온 내가 걱정되었는지 조심스럽게 나의 안부를 물었다. 사실 나는 생각보다 큰 타격이 없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에 속도에 발맞춰 내 능력과 리더십이 성장하지 못하는 한계에 맞닥 뜨렸을 때 대표에게 먼저 이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시니어 팀장이 있다면, 그로부터 배우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으니까. 


애초에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었는데 운 좋게 일찍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고, 이참에 경력 많은 팀장 밑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솔직히 자존심이 구겨지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자존심에 스크래치 나는 것보다 조직의 성장을 가로막는 병목이 되는 것이 더 싫었다.


오늘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소진되었다고 확 느꼈다. 그냥 지쳐버렸다. 끊임없이 몰려 들어오는 일을 받아들여 처리하는 일에.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는 것에. 팀장이라는 직책을 어깨에 무겁게 달고 있는 것에. '나는 왜 이렇게 뾰족하지 못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내가 더 배울 수 있는 건 과연 뭘까. 더 버티면 성장할까? - 2021년 12월 일기 - 


당시 나는 바람이 불면 바로 꺼질 수 있는 위태위태한 촛불처럼 소진된 상태였다. 포기하기 직전의 그 순간에 조직 개편은 나에게는 오히려 기회였다. 무거웠던 팀장직을 내려놓고, 질질 끌려가더라도 결과적으로 이대로 포기했을 때 보다 그래도 더 멀리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바랬다. 




새로 오신 팀장과 합을 맞춘 지 10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더 이상 내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팀원들이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새로 오신 팀장님께 피드백과 컨펌을 요청하는 상황이 어색했다. 그러나 민망함은 아주 잠시뿐, 더 이상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자리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내 일만 잘하면 인정받는 팀원의 역할에 익숙해지며 홀가분함을 느꼈다. 


다시 팀원으로 돌아왔지만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었다. 팀장의 시선으로 조직과 일, 사람을 보던 관점을 여전히 장착한 것이다. 그제야 예전에 팀원으로 일했을 때는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시야도 좁고, 조직과 동료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인지 능력이 부족했는지 깨달았다. 


내 일과 팀장의 일을 굳이 나누지 않고 '팀장님 지금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이것까지 신경 쓰시진 못할 거야. 내가 대신 챙겨드리자'라는 마음으로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신입 직원과 인턴들을 챙기며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팀장을 서포트했다.


약 1년 미만의 기간 동안 실무에만 신경 쓰며, 콘텐츠 마케터로서 내 기획력은 이전보다 깊어졌다. 오프라인 마케팅 컨퍼런스 기획 및 운영, 만 명 이상이 참여한 마케터 MBTI 테스트 기획 등 이전에는 감히 시도해보지 못했던 일을 밀도 높게 처리하며 포트폴리오도 화려해졌다. 일을 대하는 태도도 이전보다는 성숙해졌다. 


팀장직을 유지하려고 괜한 자존심 부렸다면 절대 얻지 못했을 결과다. 결국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했던 것이었다. 


좋은 팀장이 되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섣부르게 욕심 내지는 않는다. 언젠가 다시 주어질 수도 있는 기회에 서투르지 않고, 단단한 팀장이 되기 위해 지금의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Photo by Maxime Lebru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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