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동안의 아프리카 말라위 물란제 산 등반
성공적인 등산을 위해 필요한 지혜가
우리가 인생을 살 때 필요한 지혜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성취감도 좋지만, 올라가고 내려오는 과정 속에서 눈을 즐겁게 하는 초록색과 갈색의 자연, 평소 도시에서는 잘 듣지 못하는 새 지저귀는 소리, 구슬땀을 식혀주는 산들바람이 좋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지내는 1년 동안에도 나는 등산을 즐겼다. Nkhoma(은코마), Dedza(데자), Zomba(좀바), Mulanje(물란제) 총 4번의 등산을 했다. 그중 가장 높은 산봉우리가 3,002m 인 물란제를 2박 3일 동안 등반한 것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인생 경험이었다. 말라위에서 가장 높은 산 등반이라는 도전을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지혜도 깨달은 것이 큰 수확이었다.
물란제 산에서 우리가 오르려고 하는 Sapitwa peak(사피타) 의 해발 고도는 3,002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 2,750m 보다 더 높다. 등산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주로 얕은 동네 산을 다녔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우리나라에서도 나름 높다고 유명한 산을 등산해본 경험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3천 미터의 산을 2박 3일에 걸쳐 등산한다고 했을 때 두려움이 앞섰다. 과연 내가 무사히 올라갈 수 있을까.
등산을 시작한 첫날 아침, 고개를 들어 바라본 물란제 산의 정상이 너무 높아 저곳까지 간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일단 출발했다. 경사가 높아 힘들 때일수록 그저 땅을 바라보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는 데만 집중했다. 높은 정상이 아득해 보였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발걸음을 내딛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달해있었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현재 나의 능력, 상황과 괴리가 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지더라도 먼 미래보다는 당장 오늘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어느새 목표 달성에 가까이 가게 되는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해외 유명 대학의 교수가 우리 학교에 와서 진행하는 수업을 4주 동안 들은 적이 있다. 우리 학교 학생 절반, 외국인 학생 절반으로 구성된 클래스였다. 그 수업에서 영어를 정말 원어민처럼 잘하고, 당당한 태도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경영학과 언니가 있었는데, 단숨에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당시 나는 토익 700점대에, 머릿속에서 한국어로 먼저 문장 구조를 생각하고, 그걸 영어 문장으로 번역해 겨우 영어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스피킹 실력이 처참했다. 나도 4학년이 되면 그 경영학과 멋있는 언니처럼 한국어 말하듯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내 형편없는 실력으로는 절대 달성할 수 없는 목표 같았다.
실제로 대학교 졸업할 때가 되니, 나는 영어를 잘해서 주변 동기, 후배로부터 부러움을 받는 선배가 되었다. 모든 수업과, 시험, 과제가 영어로 이루어지는 전공 수업에서 A+ 학점도 몇 번 받았다. 그러나 단순히 영어 자체를 잘하기 위해 노력하여 얻어진 결실이 아니었다. 역마살 기질을 타고나서 유럽에서 교환학생 생활도 하고, 미국의 한 아이비리그 대학교에서 계절학기도 듣고, 중국 베이징에서 일주일 동안 문화교류 체험도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열심히 소통하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이런 과정을 정말 좋아하다보니 내 삶은 이런 기회들로 채워졌고, 자연스레 영어 실력은 따라왔다.
정말 원하는 목표 또는 이루고 싶은 꿈이 너무 멀게 느껴져 괴롭더라도, 당장 내가 좋아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목표에 근접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정상으로 가는 여러 등산로 중에 우리가 선택한 길은 초반에는 매우 가파르지만, 뒤로 갈수록 완만해지는 길이었다. '처음에 힘들고 나중에 쉬운 게 낫지' 하며 호기롭게 선택했는데 정말 정상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따가운 햇볕이 내려쬐는 낮에 체감상 80도 경사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정말 땀이 줄줄 흐르고 허벅지가 너무 아팠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그렇게 몇 시간을 내내 오르다 보니 산 중턱에서 갑자기 엄청 완만한 평지가 나왔다. 산에서 내려오는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을 손으로 떠서 마셨다. 불과 몇 십분 전 오르막을 오르며 지옥을 경험했던 게 싹 잊힐 정도로 시원했다. 다시 위로 올라갈 힘이 솟았다.
살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그냥 포기하고 싶을 때가 찾아온다. 내 어깨에 지워진 책임이 너무 무거워서,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슴이 미어져서, 그 누구도 내가 겪는 이 고통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그런데 너무도 괴로운 그 고통의 정점에서 조금만 버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삶은 다시 살만한 것이 된다. 그냥 푹 자고 다음 날 일어나거나, 주변의 따뜻한 위로 한 마디에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털고 일어나 앞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등산 첫날 산을 오르면서 우리는 중간에 참 많이 쉬었다. 너무 많이 쉬면 몸이 퍼져서 그 후에 올라가기 더 힘들 것 같아 걱정도 되었지만 너무 숨차고 힘들어 이대로면 죽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당장 앞으로 한 발자국 나가기도 힘든 상태였어도, 물을 마시고 잠시 그늘에 앉아 쉬고나니 몇 백 발자국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함께 등산한 친구 4명의 페이스는 각자 달랐다. 어쩔 때는 내가 선두를 이끌기도 하고, 어쩔 때는 뒤에서 천천히 선두를 이끄는 친구들을 따라갔다. 결국 정상에 올라간 사람은 나랑 다른 친구 1명뿐이었다. 다른 친구 2명은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포기했는데, 그 선택에 너무 만족해했다. 굳이 몸이 힘들고 괴로우면서까지 정상에 오르기보다는, 나랑 다른 친구가 정상에 다녀오는 반나절의 시간 동안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낮잠을 자고, 주변 경치를 보며 여유를 만끽했다.
당장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면, 그 뒷일을 너무 생각하지 말고 일단 쉬어가자. 더 오래 지속해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줄 것이다. 또한 스스로 뒤처지는 것에 주변 사람들과 괜히 비교하면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각자 자신만의 장, 단점과 페이스가 있는 법이다.
2박 3일 물란제 산 등반의 과정은 말라위 생활의 희로애락을 1년 동안 함께 겪은 동기 봉사단원들과 같이 했다. 아무리 평소에는 관계가 좋아도 체력적으로 피곤하고, 환경이 열악할 때일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도 있을 법한데, 4명 모두 성격이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한 편이라 이 모든 과정을 참 재밌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이겨냈다.
돌이켜보면, 나 혼자였다면 중간에라도 포기하고 내려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친구들과 이 모든 과정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이끌어준 말라위 현지 가이드와 포터에게도 무한히 감사했다.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는데, 훈련을 받은 그들은 2박 3일 치 식량 및 비상약이 든 무거운 짐을 지고 그 가파른 산을 올랐다. 특히 험난한 곳이 있으면, 먼저 올라가 우리 손을 잡아주고, 또 어쩔 때는 너무 빨리 내려가지 않게 페이스를 조절해줬다. 인간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는 것 같은 이 거대하고 고요한 산속에서 그들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믿음직스러운 눈빛만으로도 너무나 큰 위안이 되어줬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주변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입맛대로 사람을 편식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마음 맞는 친구들이 주변에 둔다면 우리 삶은 덜 힘들고, 더 재밌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란제 산에서 2박 3일을 보내면서 깨달은 인생의 지혜 4가지를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새기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