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말라위 관찰 일기
사람은 경험의 동물인지라, 직접 보고 들은 것, 몸 담은 사회의 환경을 기준으로 다른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깊숙이 체화된 사고관 때문에 국경을 기준으로 인종, 민족, 언어, 종교, 정치 체제 등이 다르게 발전한 국가를 방문하면 끊임없이 관찰하며 그들의 것과 우리의 것을 비교하고, 소위 '문화 충격'이라는 것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타 문화를 몸소 접하며 경험하는 재미는 VR 등의 기술로 웬만한 세계 유명 관광지를 구경할 수 있는 시대에서도 굳이 몸 고생하고, 많은 돈 써가면서 먼 해외를 여행하는 이유가 된다.
2016년 봉사활동을 목적으로 한국에서 2번 경유하며 21시간을 꼬박 비행하여 도착한 아프리카 말라위는 반오십 인생을 살았던 내 사고관이 뒤흔들리는 경험이었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말라위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 많았다. 말라위라는 나라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부족했고, '아프리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본능적으로 엄습하는 불안감이 있어 1년 치 짐이 든 무거운 캐리어에는 예쁜 옷, 신발 등 사치품 대신 창문 경보기부터 전기밥솥, 면 생리대 등 생존을 위한 장비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말라위에 도착한 첫날, 식료품 쇼핑을 하러 갔던 마트에서 신라면, 짜파게티, 너구리 등 너무나 친숙한 한국 라면을 발견했을 때 나는 바로 무장해제 당했다.
이곳도 다 사람 사는 곳이구나.
불편한 것들은 있었어도 그래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다 있었다. 위생은 좋아 보이지 않아도 허기를 달래기에 좋았던 길거리 음식부터, 품질이 조악하지만 그래도 당장 쓰기에는 나쁘지 않은 중국산 물건, 나와 같은 외국인 고객을 타겟하여 힙하게 꾸며 놓은 카페 및 식당까지. 처음 도착했을 때는 낯설기만 했던 말라위이었지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경험도 어느덧 나의 일상이 되어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에서도 주말이면 연남동, 성수동의 힙한 카페를 찾아가던 나에게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lilongwe)에 있는 몇몇 카페 및 식당은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였다. 말라위 도착 다음 날, 구글 지도에서 집 주변 괜찮은 카페를 찾아서 들어갔을 때 생각보다 너무 깔끔하고 예쁜 인테리어에, 정갈한 음식을 맛보고 '그래도 이곳에서의 삶이 그래도 꽤 괜찮겠구나' 안심했던 계기였다. 애초에 나처럼 릴롱궤에 거주하는 봉사단원, 국제기구 직원 및 현지에서 사업하는 외국인을 타겟으로 음식 메뉴 및 인테리어 구색이 갖춰진 카페 및 식당이 꽤 있었다. 따라서 가격도 만만치 않았는데, 한국에서 마시고 먹는 커피, 음식의 비용에서 아주 약간만 저렴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최고의 주말 휴식은 맛있는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동기 단원들과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것이었기에, 말라위에서는 가성비보다는 가심비가 통했다.
우리나라의 길거리에서 떡볶이, 군고구마를 팔듯 말라위에도 흔한 길거리 음식이 있다. 가운데가 둥그렇게 움푹 파인 철판에 기름을 붓고 주로 감자 또는 고기를 튀겨 파는데, 고기 종류에는 소고기도 있었고, 염소 고기도 있었다. 말라위 도착 첫 달에는 이런 길거리 음식을 구경만 했지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현지 직원의 권유로 염소 고기 몇 조각을 먹었는데, 갓 튀긴 고기를 소금에 찍어 먹으니 은근 맛이 있었다(검은색으로 찌든 기름은 애써 무시했다). 도톰하게 잘라진 감자를 짭조름하게 튀긴 칩시(감자튀김)도 정말 맛있었다.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100-200원하는 돈이면 칩시를 작은 파란색 봉투에 담아 양배추 샐러드와 함께 주는데, 특히 여행하면서 휴게소에서 사 먹는 칩시가 그렇게 꿀맛이었다.
한국에서는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참 바쁘게 살았던 것 같은데 말라위에서는 참 여유로웠다. 말라위와 한국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 덕에 공부해야 할 자격증, 참여해야 할 대외활동 등에 대한 걱정을 잠시 떨쳤다. 그런데 동시에 참 심심했다. 유일한 놀거리는 집에서 외장하드 속에 가득 담아온 드라마를 보거나, 동기 단원을 만나 수다 떠는 것이 다였다. 그래서 악착같이 심심함을 달랠 놀거리를 찾아다녔다. 역시 조금만 찾아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웬만한 엔터테인먼트는 있었다. 말라위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DVD방이 있었는데, 찬 바람을 겨우 막는 허름한 볏짚 지붕에 바닥에 돗자리만 깔려있는 공간에서 작은 TV로 영화를 보는 말라위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내가 3개월 동안 홈스테이를 했던 한인 가정의 집에는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비록 최신 노래는 없었지만 그래도 소녀시대의 Gee와 GOD의 명곡을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할 수 있았다. 릴롱궤 시내에 있는 Pub에서는 당구대도 있어서 포켓볼 게임을 할 수도 있었다.
없는 것 없어도 있을 건 다 있었던 말라위. 아무리 물리적 거리가 멀고, 언어&문화가 다른 곳이라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정 붙이고 살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