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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Feb 25. 2020

아프리카에서도 예뻐 보이고 싶어

배는 고프더라도 패션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옷을 매우 좋아한다. 자타공인 패피 수준은 아니지만,  퇴근길 버스에서 '내일은 뭐 입지?' 고민하며 머릿속으로 옷장을 열어 상, 하의에 걸칠 옷을 시뮬레이션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그런 내가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1년간 해외봉사를 가기로 결심했을 때는 옷을 향한 나의 사랑(욕심)을 기꺼이 놓아주기로 했다.


아프리카까지 가서 멋 부릴 일이 뭐 있겠어



생존 앞에서 옷은 사치일 뿐


23kg의 가방에 1년 치의 짐을 꾸겨 넣어야 했다. 가방에 남는 공간이 있다면, 옷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한국 음식(고추장, 햇반, 라면 등)을 챙겨야 했다. 형광색의 NGO 조끼와 냉장고 바지를 입은 해외 봉사단원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봉사 활동하러 가는데 멋 부리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꼈던 옷은 서랍 속에 두고, 실용적이고 1년 동안 내내 입다가 버리고 와도 아깝지 않을 옷들 위주로 챙겼다.


그런데 막상 말라위에 도착하니, 그런 거지 같은 옷들만 챙겨 온 것을 바로 후회했다. 나는 당시 말라위의 수도인 릴롱궤(Lilongwe)에서 거주했는데, 도시의 말라위 사람들은 굉장히 옷을 잘 입었다. 초라한 내 몰골이 창피해졌다.

놀랍게도, 수도 릴롱궤에 있는 마트에 가니 신라면, 짜파게티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고, 한인 식당이 2곳이나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한국 음식 먹기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캐리어 속의 음식을 덜어내고, 내가 좋아하는 예쁜 옷으로 채우고 싶었다.


내가 상상했던 아프리카 말라위 파견 봉사단원 모습의 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는데, 단돈 2천 원


옷을 사기 위해 우리나라로 치면 롯데마트, 이마트와 같은 종합몰을 돌아다녔다. 말라위판 H&M이나, 에잇 세컨즈와 같은 의류 브랜드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유아 옷을 판매하는 매장은 있었어도, 괜찮은 성인을 위한 기성복 매장이 거의 없었다. 말라위에서 이미 2년 동안 일하신 한국인 직원 분께 '대체 옷을 어디서 살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여기서 괜찮은 옷을 사려면 'DAPP(댑)’에 가야 한다는 간단한 답을 해주셨다.


말라위에서 옷을 사고 싶다면, 꼭 가야만 하는 DAPP

DAPP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NGO에서 운영하는 매장이었는데, 해외에서 기부받은 의류 및 신발을 깔끔히 세탁하고, 분류하여 현지인들에게 판매하는 사업을 운영했다. 처음 DAPP에 들어섰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곳에서 내가 입을만한 괜찮은 옷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우리나라의 동묘 앞처럼 산더미 같이 쌓인 옷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이키'나 '자라'처럼 비교적 깔끔한 상태의 브랜드 옷을 저렴한 가격에 득템 할 수 있다. 한 벌의 가격이 200콰차(kwacha)에서부터 2,000콰차까지 다양했는데, 원화로 치면 단돈 몇 백 원에서 2천 원 사이에 괜찮은 중고 옷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돈 2천원으로 완성한 커리어우먼 스타일


처음에는 Dapp에서 중고 옷을 구매하여 입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트렌드가 이미 한참 지나 디자인이 촌스럽거나, 누가 입던 옷이라 깨끗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멋을 부리고 싶다면, 로마의 법을 따를 수밖에.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 나와 함께 파견된 봉사단원들은 금세 DAPP의 열성 고객이 되어 주말마다 방문했고, 일 년 동안 정말 많은 옷을 DAPP에서 구매했다. 그중 몇 벌의 옷은 한국에 가져왔을 정도로 생각보다 유니크한 디자인과 고퀄이었다.



사람들이 길가에 서서 옷을 파는 Area 2 시장

DAPP 말고도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Area 2에 있는 시장에서 중고 의류를 구매할 수도 있었는데, 여기는 정말 어나더 레벨... 어줍지 않은 외국인이 갔다가 가격 덤탱이 쓰거나, 소매치기당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나는 이곳에서 휴대폰을 도난당했다(또르륵)

 


괜찮은 옷이 없어? 그럼 하나 만들어


말라위에서 패피가 되는 2번째 방법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인건비가 저렴한 말라위에서는 테일러를 통해 나만의 맞춤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 매우 흔한 일상이다.


말라위뿐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적으로 맞춤옷 문화가 발달해있는데, 약한 제조업 기반으로 인해 수공업으로 옷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강한 개성 표현의 욕구 때문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마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하는 그런 것)


말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천은 치텐지(chitenji)라고 불리는데, 자체 생산보다는 이웃 국가에서 수입해오는 비중이 높다. (옆 나라인 잠비아에서는 치텡게라고도 불린다.) 치텐지는 엄청 쨍쨍한 색상과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있는데 가격에 따라 천의 재질이 천차만별로 다르다.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천이 있는가 하면, 엄청 부들부들한 고급 재질의 천도 있다.


마을에 있는 치텐지 매장

현지인뿐 아니라 말라위에 사는 몇몇 외국인들도 심심치 않게 치텐지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말라위 생활 6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나도 용기를 얻어 나만의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했다.


일단 옷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2가지는 천과 테일러이다. 천은 시장에 가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믿을만한 테일러 찾기는 쉽지 않다. 이미 경험이 있는 친구들로부터 추천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 같은 경우는 모험적으로 집 근처에 있는 수선소에 가서 한 번 맡겨봤는데, 첫 번째 옷의 결과가 괜찮아서 그 후부터 단골이 되었다. 직접 수선소에 가지 않아도, 프리랜서로 일하는 테일러는 집으로 방문해주기도 한다.


한 번에 내 몸에 맞고, 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옷이 탄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보통 1-3번의 수정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작에 걸리는 시간은 여유롭게 1-2주 정도 잡아야 한다.


(좌) 최초의 작품/ (우) 내가 가장 좋아한 스커트


처음에는 주름 스커트를 만들었는데, 주변에서 예쁘다는 칭찬을 받아 자신감이 생겨서 그 후에도 한 두 개씩 만든다는 것이 결국  H라인 스커트, 점프슈트, 원피스, 반바지, 셔츠, 양면 랩스커트 등 총 9벌의 옷을 만들어 입기에 이르렀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영감을 얻기고 하고, 어쩔 때는 천을 특유의 패턴을 먼저 보고 디자인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기도 했다. 영감이 떠오르면, 종이에 연필로 슥슥 그림을 그려서 테일러에게 보여주고 설명해주면 신기하게 다 알아듣는다.


점프슈트 1차 피팅 중. 안타깝게도 실패작이었다.


물론 만들었던 모든 옷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실패작은 점프슈트였는데, 상&하의가 합쳐진 옷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큰 챌린지였다. 어깨, 팔, 가슴, 허리,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등 모든 신체 부위의 품이 맞아떨어져야 했다. 여러 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 어느 정도 몸에 걸칠 수 있는 정도의 사이즈는 만들었는데, 진짜 문제는 천의 소재였다. 신축성이 전~혀 없는 천이다 보니, 점프슈트를 입고 오랫동안 앉아있으면, 어깨부터 모든 신체 부위가 압박을 받아, 4시간만 앉아있었어도 히말라야 등반을 한 듯 온몸이 피곤해졌다.


천으로 옷 뿐 아니라 다양한 소품을 만들 수 있었다. (지갑, 가방, 파우치 등)

현지 시장에 가서 직접 천을 고르고, 내 몸에 딱 맞는, 내가 구상한 디자인의 옷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밌어서, 치텐지로 옷 만들어 입기는 말라위에 있는 동안 나의 취미이자 큰 낙이 되었다. 학부 때 정치외교학과가 아니라 의상디자인과를 전공으로 했어야 했나 진심 후회하기도 했다.



P.S

옷으로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사람뿐 아니라 옷도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한다.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가 출신 재클린 노보그라츠는 어릴 적 옷에 이름을 새길만큼 본인이 아꼈던 파란색의 스웨터를 20년 뒤  11,595 km 떨어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한 소년이 입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의 작은 행동이 낯선 세계의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깨닫고, 이는 세계 최초의 비영리 투자 기업 '어큐먼펀드'의 설립으로 이어지게 된다. 재클린 노보그라츠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 「블루 스웨터 」에 나오는 내용이다.


말라위에서 한  마을 사람의 집에 한 번 방문했다가, 한국어로 쓰인 어느 사립 유치원 가방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정말 놀랐던 적이 있다. 저 가방의 주인은 대체 누구였을까, 그 먼 한국에서 말라위까지 가방은 어떤 여행을 한 것일까 궁금해졌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입던 옷을 헌 옷 수거함에 넣을 때면 ‘과연 이 옷은 어느 국경을 넘어, 어떤 사람을 만나 입혀질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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