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극심한 정전이 일깨워준 빛의 소중함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한다. 배터리가 100% 충전이 된 것을 확인한다.
'내가 자는 사이 전기가 들어왔었구나' 깨닫는다.
말라위의 전기, 물 사정에 대해서는 오기 전에 이미 들은 바 있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로 왔지만, 실제 제가 겪은 정전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정말 정전이 심각한 주에는 일주일에 전기를 구경할 수 조차 없었다. (물론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어두워진 저녁,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다 지쳐 잠에 들고, 그 다음 날 일어나 미리 충전기를 꽂아놨던 핸드폰 배터리가 100% 충전이 된 것으로 밤 사이 그 분이 짧게 왔다가셨구나를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극심한 전력난의 원인은?
화력,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지열, 풍력 등 많고 많은 에너지 발전 중에서도 말라위는 수력 발전에 에너지 생산을 의존하고 있다. 수력 발전이라는 한 가지 방식에 의존하는 것의 맹점은 말라위가 2년 연속 최악의 가뭄을 겪으면서 댐의 물이 말라버려 전기를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말라위는 일년이 건기와 우기로 구분되는데 따라서, 긴 건기(4월~12월) 에는 항상 정전 문제를 겪는다. 특히 우기를 목전에 앞둔 8월부터 12월까지는 정전 문제가 정말 심각한데, 이런 전력난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는 커녕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길고 긴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전력난이 미치는 영향
전기가 나가도 요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이렇게 정전이 잦으면 일상 생활에서 어떤 불편함을 겪냐면, 전기 스토브, 커피포트 등 문명의 물건들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가스레인지 없이 인덕션만 있는 집에서는 요리도 하지 못한다. 냉장고 가동을 못해서 고기, 생선과 같은 신선 식품은 구매하기가 꺼려지며, 이 때문에 상한 고기로 요리를 해서 식중독 사태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나또한 상한 소고기를 먹고 엄청난 설사 지옥을 경험했다.) 또한 데스크톱의 경우에는 아예 전원조차 키지 못하며, 와이파이도 작동하지 않고(이 나라에는 와이파이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기는 함) 그마나 쓸 수 있는 휴대폰 & 노트북의 수명도 충전을 하지 못한다면 끽해봐야 4-5시간 정도이다.
이런 환경적 영향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의 계획들도 수포로 돌아간 경우가 많았다. 말라위에 있는 1년동안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잘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를 남기고 싶어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 것을 계획했으나 와이파이가 없고, 느려서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도 핸드폰 데이터는 꽤나 잘 터져서 문제없이 카카오톡을 사용할 수 있었던 편)
촛불 및 등잔 빛에 의지하는 것은 때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주기도 한다전기가 없어서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좋은 점도 몇 있었다. 일단 일을 안해도 되는 좋은 핑계가 생기고(ㅎㅎ), 깜깜한 밤, 촛불 빛에 의지해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아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건강한 수면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라위의 전기 문제는 일상 생활에 불편함을 초래하는 것을 넘어 국가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다. 전기 없이는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국가의 경제가 휘청인다. 약한 제조 기반은 물건 수입에 의존하게 만든다.
또한, 밤에 전기가 없으면 사람이 무기력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촛불 빛에 의지해 책을 읽기도 힘들고,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욕 자체가 사라진다. 마을에서 아예 전기가 없이 생활하는 말라위 사람들은 해가 지고 나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는 농담으로 말하지만, 말라위 마을에서 한 가구당 아이들의 수가 많은 이유는 어두운 밤이 길기 때문이다.)
극심한 전력난을 겪으면서, “Light is Right(빛은 권리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양열 에너지 등의 대체 에너지를 통해 마을 깊숙한 곳까지 전기 보급된다면, 말라위의 교육 수준이 더 높아지고, 자연스레 국가적인 발전이 더 잘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