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에서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집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내가 마주한 환경은 예상보다 많이 달랐다. 특히, 집이 그랬다. 너무 열악해서 충격받은 것은 아니고, 그 반대였다. 기대보다 훨씬 좋아서 오히려 한국의 집보다 더 넓고 쾌적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한국에 있었을 때 나는 거의 집에 붙어있는 적이 없었다.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 약속이 많았기도 하고, 약속이 없는 날에도 기어코 집 밖을 나가 주변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할 일을 잊은 채 하염없이 TV만 보며 축 쳐지는 게 싫었다. 그런 내가 말라위에서 생애 처음으로 집순이가 되는 경험을 했다. 한국에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을 때는, 다른 건 다 아쉽지 않은데 집 때문에 말라위에 더 머물고 싶어 지기도 했다.
봉사 활동을 위해 말라위에 거주하는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총 3번의 집을 거쳤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따른 이사도 있었고, 나의 강력한 의지로 인한 이사도 있었다. 이사를 거듭할수록 삶의 질과 만족도는 높아졌다(물론 월세도 같이 높아졌다).
모든 봉사단원이 본인의 의사대로 원하는 집에서 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이었는데, 주최 기관이 살 집을 구해주지는 않고, 대신 매월 주거 지원금이 나왔다. 여러 명의 단원이 같은 국가에 파견되었더라도, 소속되어 일하는 NGO기관의 지침을 따라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좋든 싫든 선택권 없이 상사인 지부장과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자율권이 단원에게 주어져서 '위험하지 않는 동네'라는 조건 아래 본인의 의사를 반영하여 집을 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운 좋게도 나는 후자에 속했다.
위치: Lilongwe Area 3
거주 기간: 1개월
하우스메이트: 야나(벨기에인), 이든(야나의 딸), 조아나(미국인)
심미성: ★★☆☆☆
편리성: ★☆☆☆☆
심리적 안정감: ★☆☆☆☆
독립성: ★★★★★
첫 번째 집은 벨기에 여자 야나의 집이었다. 그녀의 귀여운 딸 이든과 미국인 사업가 조아나와 함께 살았다. 야나가 곧 벨기에로 돌아가야 해서, 이 집에서는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딱 한 달이었다. 처음에는 한 달 밖에 머물지 못하는 게 참 아쉬웠는데 딱 일주일 살아보니, 한 달만이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던 점은 조금만 걸어가면 주변에 괜찮은 카페와 쇼핑몰이 있었다는 것이다. 봉사단원은 운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뚜벅이 생활을 해야 했던 나에게는 접근성은 엄청난 큰 장점이었다. 크림색 벽에 침대 하나와 옷장만 있는 단출한 방도 나쁘지는 않았다. 야나와 조아나의 지인들과 (릴롱궤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자연스레 교류할 기회도 많아 마치 교환학생 생활을 하는 것과 같은 재미도 있었다.
반면, 단점은 집 안에 벌레가 많고,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뭐, 아프리카까지 와서 뜨거운 온수 샤워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 각오했다. 그런데 막상 겪고 나니 세상에 너무나 불편했다. 낮에는 덥지만, 아침에는 기온이 꽤 낮게 내려가서, 찬물로 샤워하면 바로 감기 걸릴 각이었다. 말라위에서는 감기 몸살 증상이 오면 단순 감기가 아니라 말라리아일 가능성(치사율 꽤 높은 편)이 있어 항상 조심해야 했다.
벌레는 또 어찌나 많던지.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내 침대에 텐트형의 모기장을 설치하여, 항상 모기장 안에서 잠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놈의 모기들은 기어코 텐트 안쪽까지 침범하여 내 피를 야무지게 빨아먹었다(그래도 1년 동안 다행히 말라리아 한 번 걸리지 않았다.) 모기가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면, 꽤 귀여운 손님도 있었는데 바로 개코였다. 나는 개코라고 불리는 이런 파충류가 있다는 것을 말라 위에 와서 처음 알았다. 체구가 매우 작아 일단 귀엽고, 벽에 붙어 집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없어서 내 방 벽에 갑자기 붙어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단점은 바로 취약한 안전이었다. 말라위가 기본적으로 치안이 나쁜 나라는 아니지만, 강도 떼는 어딜 가나 있다. 그래서 수도에 있는 대부분의 단독주택은 튼튼한 철문과 높은 벽돌 벽으로 둘러져 있고, 2교대 경호원들이 집을 지킨다. 처음에 말라위 도착했을 때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쾌적한 집 상태만 보고 안심해서 몰랐었는데, 이 집 엄청나게 허술한 경비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대문은 총알도 뚫을 수 없는 튼튼한 철문이 아니라 볏짚을 이어 만든 것과 같은 문에, 잠금장치도 없이 그냥 닫아두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집을 둘러싼 울타리도 마찬가지로 허술해서 덩치 큰 사람도 지나다닐 수 있는 큰 구멍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야나네 집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렇게 무방비로 허술하게 노출된 환경에서 살았다고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오히려 외관상 너무 딱해 보여서 강도들이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일...)
위치: Lilongwe Area 9
거주 기간: 3개월
하우스메이트: 한국인 가족 3명 + 한국인 하숙생 1~2명
심미성: ★★★☆☆
편리성: ★★★★★
심리적 안정감: ★★★★☆
독립성: ★★☆☆☆
두 번째 집은 말라위에서 오랫동안 거주하시며 사진관을 운영하시던 한국인 가족의 집이었다. 집에 비는 방 몇 개가 있어서 나 같은 장기 봉사단원 또는 출장으로 말라위에 방문한 단기 방문객들 대상으로 하숙을 하셨다. 야나네 집에서 지내면서 온수 샤워 및 안전에 대한 불안감 및 불만족한 것들이 있었기에, 안전한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수 있는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 필요하다고 여겨지어 3개월만 생활하기로 하고 들어왔다.
딸처럼 살뜰히 챙겨주시면 말라위 부모님(진짜 엄마, 아빠라고 불렀다)과 나를 잘 따라주던 둘째 딸 덕분에 정말 두 번째 가족을 말라위에서 만난 것처럼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말라위 거주하신 지 거의 20년이 넘으셨기 때문에 이 나라 돌아가는 사정에 해박하셨고, 집에는 없는 것들이 없었다. 노래방 기기부터 팥빙수 기기까지. 아침, 저녁으로 든든한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 단연 가장 큰 장점이었다. 감자탕부터, 짬뽕, 양념치킨, 김밥, 돈까스 등등 말라위 엄마가 요리를 정말 잘하셔서 못 만드시는 것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 먹는 집밥보다 훨씬 맛있었다(실제 우리 엄마 미안).
반면 단점이라고 하면 너무 잘 먹어서 볼에 살이 포동포동 올랐다는 것? 그리고 아무래도 한국의 문화 자체가 공동체주의다 보니,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보내는 시간보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신경 써야 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말라위 가족들과 3개월 동안 함께 살며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지냈던 덕분에 면역력을 키워서 그 후 말라위 생활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위치: Lilongwe Area 6
거주 기간: 7개월
하우스메이트: 미쉘(대만인), 미쉘의 엄마
심미성: ★★★★★
편리성: ★★★★☆
심리적 안정감: ★★★☆☆
독립성: ★★★★★
세 번째 집은 보건 NGO에서 일하고 있는 대만 출신의 미쉘의 집이었다. 이 집을 처음 본 순간 너무도 넓고, 쾌적하고 감각적인 집의 인테리어에 반해버렸다. 내가 부담해야 하는 월세가 내가 받는 주거 지원금보다 훨씬 비싸서 초반에는 매우 망설였지만, 이미 첫눈에 반해버렸기에 생활비를 아껴서 주거비에 보태기로 했다. 드디어 이주 생활을 끝내고 정착했다.
집이 너무 예뻐서 그냥 거실에 있는 널찍한 원목 테이블에 앉아 아침을 먹거나, 소파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이 집에는 가스레인지가 있어서(보통 대부분의 집은 전기 인덕션), 잦은 정전에도 무사히 요리를 해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특장점이 있었다. 집이 워낙 좋아서 친구들을 자주 집에 초대하여 놀기도 했다.
마당에는 텃밭이 있었는데, 미쉘이 대파, 토마토, 고수 등의 작물을 키워서 주방에서 문만 열고 나가서 즉석에서 신선한 야채를 캐서 바로 요리 재료로 쓰는 짜릿함도 있었다. 한때는 나도 내 작물을 키운다고 땅을 갈고, 토마토 씨앗을 심은 적이 있었는데,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2번 물 주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자연스레 나의 텃밭은 우리 집 경비원 사디크에게 넘겼다.
같은 동양 출신의 미쉘과 통하는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캐나다에서 유학생활을 한 미쉘은 완전 아메리칸이었다. 굉장히 스트레스에 취약한 친구여서, 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오늘 하루 어땠어?' 하며 재잘거리기를 좋아하는 나와 다르게 아무 말도 안 하고 밥 먹고, 방 안에서 칩거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우리는 7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살았는데도 깊은 유대감을 쌓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똑똑하고, 신뢰가 가는 친구여서 가끔 깊은 이야기도 하면서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곤 했다.
말라위 생활 후반기(=가장 재밌는 시간을 보낸 시기) 나의 안식처가 되어줬던 미쉘 하우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의 여유없이 바쁜 시기를 보낼 때는 그 집이 떠오른다. 퇴근 후 시원하게 샤워를 싹 하고 테라스에 앉아 밀크티를 마시면서 노을지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봤던 그 때의 여유가 너무 그립다.
집이란 가격, 직장과의 거리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나의 선택권 없이 반강제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면서도 조금 욕심을 부려서라도 '나는 이런 곳에서 살고 말겠다'라는 지향점을 투영해야 하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집이란 단순히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