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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Sep 14. 2020

아프리카로 떠났던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내가 찾은 것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찾고 싶었던 것


휴학을 너무 많이 해서 이미 또래보다 졸업이 늦어진 25살의 나이.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남들과 같이 대기업 취업 경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아 취업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말라위로 떠났다. 정상과 비정상이 나뉘어 있는 사회의 기준에서는 뒤쳐지겠지만, 또 한 번 나만의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프리카 말라위 땅과 그 위에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을 위한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생명력 있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라위 도착 후 첫 한 달 동안은 몸만 말라위에 있었지, 내 정신은 아직 한국이었다. 생각보다 쿨하게 취업을 향한 미련을 접지 못했는지 토플책은 챙겨갔는데, 공부에 집중을 잘할 수 없었고, 한국에서는 전혀 가지지 못했던 여유로움을 경험하니 괜히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 불안했다. 밤에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싶어도 잦은 정전 때문에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런 불편함들이 장애물로 느껴져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나의 속도에 말라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말라위의 속도에 나를 맞추면서 새로운 것, 불편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등에는 아이를 업고, 머리에는 짐을 이고 가는 슈퍼우먼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말라위행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질병, 강도 등의 위험 상황에 초연하리라 마음먹었는데, 막상 말라위에 자리를 잡고 살다 보니 '말라리아에 걸려 죽으면 어떡하지', '집에 강도가 들면 어떡하지', '길가다가 소매치기를 만나 험한 꼴을 당하면 어떡하지', '음식을 잘못 먹어 식중독에 걸리면 어떡하지' 등등 온갖 걱정을 다했다. 다행히 나는 건강히 살아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1년의 시간이었다. 내 의지로 선택한 제2의 고향이 되었달까.


권장 탑승 인원의 1.5배 되는 사람들과 닭, 생선 등 온갖 가축이 뒤엉켜 있는 봉고차를 타고 몇 시간을 이동하기도 하고, 전기가 끊겨 촛불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단수가 며칠 지속되는 날에는 찬물 버켓 샤워도 하고, 난민캠프에서 한국 아이돌 가수의 댄스 공연을 하기도 하고, 밤하늘을 가득 메운 빛나는 별을 한참 멍하니 들여다보기도 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다채로운 일을 압축적으로 경험하면서 이때만큼 어떤 상황에도 활짝 열려 있고, 낯선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던 때가 있을까 싶다.


사실, 말라위에 대한 나의 회상은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약간 미화된 것도 있다. 인터넷이 느리고 정전이 자주 되니 정상적인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밤에 어두운데 촛불 빛에만 의지하니 저녁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요리도 할 수 없었고, 책을 읽을 수도 없었고, TV를 볼 수도 없었다. 빛의 부재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말라위 사람들은 정말 친근하고, 정이 많아서 좋았지만 동시에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고, 앞에서는 무조건 YES라고 말하지만, 말뿐인 경우도 많아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말라위에서의 경험이 내게 남긴 것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낼 때는 한국이 참 아득했는데, 막상 1년 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바로 어제까지 한국에 있었던 듯이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말라위가 참 비현실적으로 멀게 느껴졌다. 밤에도 환한 조명, 빠른 인터넷 속도와, 뇌를 얼리듯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짜릿한 맛에 나의 몸은 바로 한국에 적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몸은 한국에 있는데 마음은 말라위에 있는 것처럼 한동안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말라위에서 보낸 1년이라는 시간은 나라는 사람의 체질을 바꾸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너무도 빠르게 휙휙 바뀌는 트렌드, 빨리빨리의 분위기, 주위의 환경에 의해 많이 휘둘리는 그런 한국 사회의 분위기 탓에 나는 고장 난 듯이 한국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도 부적응이 싫지는 않았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말라위에서 1년 동안 살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태도는 한국에서 수없이 마주하는 스트레스 가득한 상황에서도 초연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줬다. 주변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로 결정하는 선택들로 내 삶을 추진해나갈 수 있는 단단한 근육이 자리 잡혔다. 



말라위, 그 후


방황 끝에 떠났던 아프리카에서 과연 나는 답을 찾았을까. 1년 동안 현장을 겪으며 '선한 의지만으로는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만 국제개발협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농업 사업 말고 다른 분야의 사업을 하면 좋은 의지가 좋은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을까?' 오히려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그래도 말라위에서 보낸 1년은 새로운 영역을 두드려보고 싶은 열망과 조금 더 모험을 지속할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곧바로 취업에 뛰어들지 않고 미얀마, 몽골, 네팔을 대상으로 의료 지원 및 지역개발 사업을 하는 국제보건 NGO에서 5개월 인턴십을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현재 나는 국제개발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반전스럽게도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스타트업 씬에 환멸을 느끼며 아프리카로 떠났던 건데, 다시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다니 인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


진로를 선택해야하는 기로에서 방황하며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는데, 결국 그 먼 여정 끝에 찾은 결론은 Where,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영리/비영리, 대기업/중소기업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구분은 불필요하고 오히려 what,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현재는 기술 기반의 온라인 광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에서 재밌게 일하며 내 커리어에서 콘텐츠 마케터라는 점을 찍고 있다.


말라위에서 쌓은 경험을 커리어로 이어가지 못했으니 그럼 말라위에서의 내 경험이 무의미한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말라위에서 보낸 1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시간이었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보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더 길겠지만, 이보다 더 강렬한 시간은 앞으로 경험할 수 없으리라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이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압축적으로 새로운 것을 경험했고, 모든 상황에 열려있었고,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이지만 나를 받아들여준 말라위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나의 세계는 더욱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그때 가졌던 순수함과, 열정, 그로부터 얻은 즐거움은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생생히 기억한다. 말라위에서 겪은 모든 경험이 스며들어 현재의 내가 된 것이라 느낀다.


25살, 20대의 가운데 지점에서 겪은 아프리카 말라위 경험은 내 인생의 많은 수를 바꾸어 놓은 전환점이었다. 시간을 되돌려 선택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주저 없이 말라위행 항공권을 선택할 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말라위에서의 기억을 마음속에 묵직하게 간직하고 싶다.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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