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빼고싶지만떡볶이는먹고싶어
나이 들수록 엄마 손맛이 그립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제일 슬펐고, 그다음은 엄마 김치를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다는 것이 두 번째로 슬펐다. 음식점에서 김치를 마주할 때마다 엄마 김치 맛과 비슷하면 기본 두 접시는 먹고 나오는 버릇이 생겼다.
3~4월까지 지인들이 엄마가 담근 김치를 맛있게 먹고 있다고 할 때, 이때가 젤 부럽다. 밑반찬은 엄마가 암 투병 중이실 때 조금씩 배워 두었지만, 김치는 배우지 못해 두고두고 후회된다. 아픈 엄마한테 가르쳐 달라고 할 수도 없었고, 김치 비법을 알려달라고 한들 숙성된 손맛이 아니기에 똑같은 김치 맛을 낼 수 없어 단념했다.
여름마다 먹었던 엄마표 열무김치를 생각하며 담갔다가 거의 먹지 못하고 버렸던 일이 있다. 김치 담글 때마다 보조했던 경력으로 작은 언니와 나는 눈과 입이 기억하는 입맛을 떠올려 열무 한 단을 사 왔다. 어디서 그런 당당함이 나왔던지, 다듬고 절이고 양념까지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열무를 신나게 팍팍 치대며 씻고 나니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열무는 풋내 나니까 너무 치대면 안 돼.’
씻기 단계부터 열무김치는 망했다. 그래도 만들어 놓은 양념이 아까워 버무리는데 이번엔 넉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양념이 턱없이 부족했다.
‘양념도 아끼지 말고 넉넉히 넣어야 김치 맛이 좋다.’ 또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만들기 전에 생각나지 않고 늘 망한 뒤에 떠오른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너네 둘이 그렇지 뭐.’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양념을 더 만들 수가 없어 ‘짠 음식은 건강에 좋지 않아.’ 하며 열무 샐러드처럼 먹자고 서로를 다독였지만, 끝내 다 먹지 못하고 쏟아 버렸다.
엄마표 열무김치에 열광하는 이유는 소금 간으로 담가 뒷맛이 개운하고 칼칼해 멸치 꽁다리를 넣지 않아도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열무김치가 많이 익어가면 열무김치 찌개를 끓여주셨는데, 열무 된장찌개 열무와는 식감부터가 다르고, 우거지 찌개의 무청과도 다른 식감이다. 김치찌개는 오래 끓이면 김치가 흐물흐물해져 씹을 것이 없는데, 열무는 신기하게도 끓일수록 아삭아삭하다.
큰언니가 엄마 손맛과 비슷해 가끔 열무김치를 담가주지만, 김치 담그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60을 넘긴 큰언니에게 받을 때마다 미안하다. 열무김치가 망한 이후에도 엄마 손맛을 기억하며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재료만 버리게 되어 이제는 담그지 않는다. 양념 양부터 ‘그 적당하게 넣은 엄마 손끝의 감’을 전혀 알 수 없기에 그 맛을 내기 어렵다.
작은언니와 나는 엄마표 열무김치를 언젠가는 담그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슴에 품고 당분간은 사 먹는 김치에 만족하기로 했다.
어릴 때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대한 소중함이 적었는데, 엄마가 안 계신 지금은 죽기 전에 꼭 한번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간절해졌다. 2021년 엄마 돌아가신 지 7년, 그동안 수많은 김치를 사 먹었지만, 엄마 손맛과 비슷한 김치와 열무김치를 찾지 못한 작은 언니와 나는 엄마표 열무김치가 너무도 그립다.
글,그림/강희준작가 (30여권이 넘는 그림책의 그림을 그리고 지금은 글과 그림을 잘 쓰고 그리는 사람으로 거듭나려고 매일 읽고 쓰고 그리는 사람, 대표작 <구방아, 목욕가자 (권영상동시집, 강희준, 사계절)> <떴다! 지식탐험대> <떴다! 지식탐험대-환경(개정판), 환경용사, 지구를 살려라 김수경 글/강희준 그림, 시공주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