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빼고싶지만떡볶이는먹고싶어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면 엄마 생각이 난다
10년 전 작업실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며 커피 마실 준비를 했다. 물을 끓이며, 컵 위에 드리퍼를 올리고, 종이필터는 드리퍼에 넣고 원두 지퍼백을 열면 신선한 원두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핸드밀에 원두를 한 숟갈 반 정도 넣고 핸드밀을 왼손으로 붙잡고 오른손으로 돌리면 드륵~드륵~드륵 소리가 나면서 갈린다. 힘을 주어 몇 번 돌리다 보면 드르르르륵하며 오른손에 힘을 주지 않아도 손쉽게 돌아갈 때 핸드드립용 원두가 된다.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준비하는 동안 커피 향이 온 집안을 감싸 이 모든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그 순간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기 싫어 작업시간을 더 늦추려는 행동은 아니었는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림 작업할 때는 이런 행동들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하나의 의식 같았다.
작업실에서 엄마가 암 투병 중이실 때도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다. 엄마는 책을 읽고 계셨는데, 돌아보시며 ‘뭔데 이렇게 향이 좋아.’ 하시더니 코끝에 감도는 원두커피 향을 코로 들이마시며 쳐다보셨다.
‘핸드드립 커피인데 한번 드셔 보실래요?’ 하며 잔에 조금 따라 드렸다.
엄마는 코끝으로 커피 향을 맡으시며 한 모금 들어가자마자 ‘아이고 써. 향은 좋은데, 왜 이렇게 써.’ 하시길래, ‘설탕 넣어 줄게. 다시 드셔 봐봐.’ 하니 ‘됐다. 너 다 먹으라.’ 하시며 입 안에 쓴맛이 가시지 않으시는지 한참을 찡그리셨다.
"원두는 엄마가 갈아 줄게. 원두 갈 때 향이 너무 좋더라."
다음 날부터 엄마가 핸드밀로 갈아주셔서 핸드드립 커피를 편하게 마실 수 있었다. 그라인더로 원두가 갈리는 소리보다 핸드밀로 갈아지는 소리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엄마도 나처럼 핸드밀로 갈리는 소리와 원두가 갈아질 때 풍겨 나오는 향에 푹 빠지신 것 같았다.
쓴 드립 커피 대신 엄마는 노란 봉지 커피믹스를 타 드렸다. 각자 좋아하는 커피를 들고 마주 앉아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 하던 때가 생각난다. 손이 작은 엄마는 핸드밀 돌릴 때 힘이 많이 들어갔을 텐데 매번 즐거워하시며 갈아주셨다.
‘우리 딸 맛있게 먹게 갈아줘야지.’
엄마를 보며 나도 흐뭇했다.
핸드드립 커피는 만들 때부터 다 마실 때까지 좋은 기분을 유지하게 해 주는데, 엄마가 손수 갈아주시던 그때 이후로 드립 커피를 만들 때마다 엄마가 갈아주던 핸드드립 커피가 생각난다. 이제는 손목이 안 좋아 전동 핸드밀로 바꾸었지만, 엄마가 드륵~드륵~드륵 핸드밀로 원두를 갈아주던 소리가 가끔 그립다.
글,그림/강희준작가 (30여권이 넘는 그림책의 그림을 그리고 지금은 글과 그림을 잘 쓰고 그리는 사람으로 거듭나려고 매일 읽고 쓰고 그리는 사람, 대표작 <구방아, 목욕가자 (권영상동시집, 강희준, 사계절)> <떴다! 지식탐험대> <떴다! 지식탐험대-환경(개정판), 환경용사, 지구를 살려라 김수경 글/강희준 그림, 시공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