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빼고싶지만떡볶이는먹고싶어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맛있는 음식을 먹어봐야 요리도 잘한다고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각종 집들이의 향연이 펼쳐졌다. 당시 신혼집 이사 날짜와 결혼식 날짜가 맞지 않아 약 2개월 남짓 결혼식 후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살다가 한 집에 살게 되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우리의 집들이는 또 하나의 이벤트처럼 여겨졌던 모양이다.
친구는 물론 지금 같이 일하는 사람들,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 일가친척까지 두 사람의 함께 사니 집들이 횟수도 두 배로 늘어났다.
한 달은 내 친구와 지인들, 한 달은 또 남편의 친구와 지인들로 하자고 약속했던 집들이는 하다 보니 몇 달간 지속되었다. 집들이를 자주 오래 하는 것은 사실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워낙 사람 좋아하고 평일에 일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주변 지인들과의 각종 음주로 타파하던 혈기왕성했던 때였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 보니 밖에서 먹고 마시는 것 대비 1/10도 안 되는 돈으로 집에서 맘 편히 듣고 싶은 음악 틀어놓고, 보고 싶은 예능프로그램 보며 이것저것 편하게 먹고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하루하루였다. 대용량 물건들만 파는 대형마트에 가서 새로 나온 맥주를 박스로 사다 나르고, 집에서도 호프집 감성을 자아낼만한 맥주잔과 갓 뽑아낸 생맥주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는 밸브형 대용량 맥주까지 이고 지고 와도 행복 그 자체였다.
그런데 문제는 음식 메뉴였다.
손님들은 한번 먹는 음식이지만 우리는 매번 같은 음식을 먹다 보니 한 달이 조금 지나자 살짝 물리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맛나게 먹는 음식을 우리는 입에도 대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편은 연속해서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까탈스러운 사람이다. 그래서 집들이 토요일조와 일요일조로 메뉴를 나누고 (A세트, B세트) 다시 새로 추가할 메뉴들을 적어보았다.
펜과 노트를 가져와 내가 할 수 있는 메뉴를 적기 시작했다.
닭튀김, 골뱅이무침, 감자튀김, 옥수수 버터구이, 감자전, 파전, 부대찌개, 닭볶음탕 등 한참을 적고 나니 이것은 안주였다. 여의도하면 빠질 수 없는 파가 듬뿍 들어간 골뱅이 무침, 둘이 먹다 하다가 집에 가도 모르는 닭튀김, 배가 불러도 항상 들어갈 자리가 있는 감자튀김과 옥수수 버터 철판구이, 감자전과 파전, 부대찌개, 닭볶음탕은 그냥 말은 말겠다.
어느 후미진 호프집이나 막걸리 집의 메뉴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차림표였다.
나와 남편은 박장대소를 하며 적당히 손님들의 성향에 맞춰 A, B세트를 구분해서 마트로 향했다.
살면서 ‘경험’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린다. 내가 그거 해봐서 아는데 라는 말로 시작되는 자신의 경험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고정 레퍼토리다. 경험이 전부는 아니지만 경험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경험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시너지 효과는 없던 잠재력도 용솟음치게 하고, 제일 자신 없던 분야도 선뜻해볼 만한 그것으로 만들어 주곤 한다.
내가 했던 경험, 나의 경험치를 오늘은 슬쩍 사랑해보자.
* 참고로 나의 가장 최애 안주템은 닭튀김이다. 토막 낸 닭을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어서 튀김가루와 생강, 간단한 소금과 후추만으로 양념을 한 나의 닭튀김은 꽤 정평이 나있던 나의 최애 안주 템이었다. 가끔 그 맛을 잊지 못해 우리 집을 찾는 몇몇 나의 지인들은 요새는 왜 안 해주냐고 한다.
“언니도 이제 늙었다. 닭은 시켜먹자”
글/이윤영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글쓰기>, <어쩌면 잘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방송작가, 매일 글쓰고 메모하는 사람)
일러스트/강희준 (<구방아, 목욕가자> 작가, 30여 권이 넘는 그림책의 그림을 그리고 지금은 글과 그림을 잘 쓰고, 잘 그리는 사람이 되려고 열심히 매일 그리고 쓰는 사람)
이윤영 작가의 브런치 주소는 아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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