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빼고싶지만떡볶이는먹고싶어
세상에 죽어도 못 먹는 음식은 없다
(부제 : 아들의 배신)
아들은 회를 비롯한 생선류를 먹지 않았다. 이유식을 시작한 돌 이후부터 만 3세까지 만해도 내 기억에는 분명 다양한 해산물과 생선을 곧잘 먹었는데 어느 순간, 고등어, 갈치 등의 생선류를 거부하거나 급기야 오징어, 새우, 문어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식탁 위에 생선과 해산물류의 반찬이 올라오면 남의 집 식탁에 온 사람처럼 굴었다. 크면 고쳐지겠거니 라는 생각에 애써 강요하지 않았더니 벌써 17살이 되어 버렸다.
우리 세 식구들만 있는 식탁에서야 아이의 그런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양가 모두 생선과 해물을 좋아하는 가족들이라 식탁 위에 생선 비슷한 것만 올라오면 아이의 편식을 항상 화두에 올랐다.
“이 맛있는 걸 왜 못 먹었냐?”
“나 어렸을 때는 없어서 못 먹는 거였다” 등등 아이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농담 섞인 말들이 오고 갔다. 두 집안 모두 농담을 잘하고 좋아하는 이들이라 처음에는 그냥 넘겼지만 점점 커가면서 아이의 편식이 마치 나의 큰 잘못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가 나에게 질타를 하거나 죄책감을 심어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부모님들은 회나 생선류의 음식을 먹을 때면 혹여 아이가 먹을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봐 내내 걱정을 하셨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며 옆 식당에서 다른 메뉴를 사 오기도 했고, 한 번은 아예 먹성 좋은 사촌 형 누나들과 어른들은 회를 먹고, 아이들은 옆집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기도 했다.
부모님의 배려 깊은 모습에 감사하지만 사내 녀석이 (요즘에는 이런 말로 폭력이지만 내 자식이니 과감히 해보련다) 아무거나 팍팍 먹지 뭐 그리 가리는 게 많은지 내심 아이의 식성에 대한 화제가 나올 때면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것 마냥 고개가 숙여졌다.
하지만 나는 사실 아이가 뭐라도 잘 먹어주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식성이 그리 좋은 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배꼴(?)이 작은 아이였다. 또래 아이들이 150cc의 분유를 벌컥벌컥 마실 때도 70cc를 겨우 먹던 그런 아이였다. 나는 생선이고 해산물이고를 떠나 일단 아이의 먹성 좋게 뭐든 잘 먹는 그런 아이로 크길 바랐다. 하지만 아이의 짧은 입은 도통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라고 왜 노력을 하지 않았겠냐만은 그게 세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무조건 그것을 많이 먹여 일단 배꼴(?)을 늘려야 한다고 하기에 여러 음식들을 권해보았지만 아이는 도통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관심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꼬리곰탕을 손수 끓여 주셨고, 아이는 그 자리에서 성인보다 더 많은 양의 곰탕 한 그릇을 해치웠다. 어머님은 그날 냉동실에 있던 얼린 곰탕을 몽땅 우리에게 내어주시며 자주 먹이라고 명하셨고, 떨어질 것을 대비하여 어떻게 곰탕을 끓이는지 비법까지 알려주셨다.
곰탕에 맛을 들인 아이는 꼬리곰탕을 시작으로 설렁탕, 내장탕, 선짓국, 양지탕, 돼지국밥, 순댓국 등 고기를 물에 넣고 끓이는 탕이란 탕은 모조리 섭렵했다. 어디선가 유명한 국밥이나 곰탕집이 있다고 하면 서울지방 따지지 않고 찾아다녔다. 심지어 부산에서는 돼지국밥은 여행 내내 하루에 한 끼식 먹기도 했다. 국밥으로 다행히 작기만 했던 아이의 배꼴(?)은 보통 수준이 되었고, 키도 평균 이상으로 자라 내심 큰 시름을 덜었구나 싶었지만 여전히 회나 해산물을 멀리하는 편식을 그대로였다. 그나마 어디 가서 밥상머리에서 깨작거린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만큼의 식욕을 갖게 되었으니 작은 안심을 했다.
하지만 식욕은 식욕이고 취향은 어디까지나 취향인가 보다 하고 내심 아이의 편식을 포기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 크면 다 먹겠지,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럴까 싶기도 하고, 내심 그래! 돈 아끼고 좋지 뭐 라는 생각을 하던 어느 날, 올해 시아버지의 생신을 위해 메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또 한번 아이의 식성이 거론되었다. 온 가족이 새로 생긴 횟집에 가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메뉴판을 보니 아이가 마땅히 먹을 만한 음식이 없었다. 또 한 번 사촌 형 누나들과 옆집이나 근처에서 고기를 먹여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던 순간에 아이가 한마디 했다.
“어 나 이제 회 먹을 수 있어. 먹을 만하던데?”
이건 또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인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회나 해산물의 비릿한 맛에 도리질을 쳤던 이가 바로 너 아니었는가.
“어! 애들이 하도 가자고 해서 한번 가서 먹어봤는데 먹을 만하더라고. 나 회 먹으니까 할아버지 걱정 마시라고 해”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가끔 친구들과 밖에서 밥을 먹고 오는 경우가 있다. 기껏해야 햄버거나 피자를 먹는 줄 알았더니 그 사이 삼겹살, 삼계탕, 칼국수, 돈가스 등 각종 산해진미를 먹고 다니는 것 같았다. 한창 먹을 시기니 잘 먹고 다니라고 이야기까지 해주었다. 하지만 회까지 먹은 줄은 몰랐다. 얼마 전 친구 하나가 무조건 초밥을 먹겠다고 해서 초밥집에 갔고, 거기서 회덮밥을 먹었는데 먹을 만했다는 것이 아이의 말이다. 정말 거짓말처럼 아이는 그날 각종 회와 해산물을 먹었다.
17년 동안 마음 졸이고, 엄마로서 생겼던 작은 죄책감이 일순간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농담 잘하시는 아주버님은 아이의 이런 행동을 보고, 이제 새로운 음식, 먹고 싶은 요리가 생기면 아이의 친구에게 연락해야겠다며 친구의 전화번호를 달라는 우스개 소리를 연신했다.
친구가 좋은 건지 나이가 들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 아이의 편식이 밥상머리에서 화두에 오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마인 나의 마음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정말 뭐든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은 참 많다.
글/이윤영 작가<어쩌면 잘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글쓰기> <10분 초등완성메모글쓰기> 등의 책을 쓴 20년차 방송작가, 에세이작가
그림/강희준 작가 <구방아, 목욕가자> <떴다! 지식탐험대> <난 한글에 홀딱 반했어> 등의 책에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작가이자 매일 글쓰고 그림그리는 사람
이윤영 작가의 브런치 주소는 아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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