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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Oct 19. 2024

241018- 21번째 진료 (저녁약을 없애다)

잠을 잘 잡니다. 특히 양압기를 하면서 꿈도 안 꾸고 잘 자는 것 같습니다. 

크게 화를 내지도 않았어요. 남편이 밉다가도 또 불쌍하고, 내가 우울증인 것은 괜찮은데 남편이 멕아리 없이 있으면 너무 싫어요. 그걸 사랑이라고 말하기로 결정하니 많이 안정감이 생기더라구요.

남편이 옷도 사주고, 이번 생일에 합방도 약속해 주고, 애들도 커서 자유시간도 갖고 저는 굉장히 요즘 안락하고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전 문답지 결과도 아주 좋게 나왔습니다. 저녁약을 거의 안 드시고 양압기로 질 좋은 수면이 어느 정도 되시니 저녁약은 이번에는 처방하지 않겠습니다. 계속 이렇게 안정감 있는 생활이 가능해진다면, 아침약도 줄이면서 차츰차츰 약을 안 먹고 일상생활 가능하도록 나가봅시다"


****


저녁약이 없는 약봉투가 매우 가벼웠다. 질병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희망찬가. 

남편은 결국 "비싼 옷을 사주고 나니 병이 나아지나 보다 돈 써라 써서 편해지면 돈 써라"라고 말해주었다. 

진짜 기부니가 좋았다. 


솔직히 진짜 모르겠다

정말 정신과약을 부지런히 먹어서인지

옷을 사고, 여행을 가고, 가사도우미를 고용해서, 돈을 써서 금융치료가 된 건지

가사도우미와 친정엄마와 회사 직원의 도움으로, 육체적으로 편해져서 나아진 것인지

남편에 대한 감정을 사랑으로 결정해서 이혼고민을 안 하게 돼서 그런 건지

남편에게 다시 한번 시댁에 대한 내 감정을 토로하고, 진심으로 이해받아서 잠을 잘 잘 수 있게 된 건지.


이 무엇이 가장 결정적으로 내 우울증 치료에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불안감은 확실하게 나아진 것 같은데

우울감은 돈과 시간을 써서, 내 자유시간과 체력을 확보해서 나 아긴 것 같다.

그 와중에 내가 돈 쓰는 것에 대해 남편과 가족들의 반응이 매우 만족스러운 것, 즉, 나를 다들 신경 쓰고 사랑해주고 있구나를 다시 한번 깨달은 점도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사실 정신과약은 정말 꾸준히 먹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이따위 알약이 어떻게 정신치료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불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은 육체와 환경과 무엇보다 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걸리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약을 먹으면 배아 안 아프고, 설사를 안 하고, 상처가 낫는 듯 다른 약은 눈에 보이는 효과가 있지만, 정신과약은 먹어도 먹어도 뭐가 어떻게 낫는지 눈에 보이지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먹었다.

먹는 행위를 통해 다시 한번 나는 아픈 사람이란 것을 깨닫기 원했으며,

아픈 사람이기에 내 정신병이 낮기 위해서 내가 마음가짐을 다시 다잡아야 하는 것을

내가 약을 먹는 행위를 보는 내 가족, 남편이 나를 배려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열심히 먹었다. 


거의 10개월 정도 먹은 것 같은데, 올해 한 것 중에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제 약을 줄일 수 있고, 

그만큼 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참으로 희망찬 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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