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구덩이

by 김필필

사람들은 누구나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돈이나 명예나 학력이나 집안이나 환경 등의 외부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자신감이나 외모, 친절함이나 배려, 유머감각이나 센스 같은 내적인 요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고 내적, 외적인 구성요소들의 부족한 부분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채우려고 노력하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발견되어왔을 부족함은 차곡차곡 쌓이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끌어안고 세상을 살아가기도 하고 체념하고 포기하며 인생을 푸념하기도 한다. 또는 나의 부족함이 사회와 환경, 또는 타인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여 분노와 저주로 하루하루를 채우기도 한다.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이 달라짐에 따라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부족함의 트라우마에 대해 표출하는 양상이 달라진다. 술이나 오락으로 트라우마를 일순간 잠재우는가 하면 묵묵히 더 꾹꾹 자신의 트라우마를 감추기에 급급한 사람들도 있겠다. 트라우마에 대한 스스로의 해결이 어려운 경우에는 그 원인을 사회와 환경과 타인에게 돌리고 그들에게 화살을 돌려 원인을 제거하려 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무엇이 어떻게 됐던 인간은 부족함을 근간으로 발현되는 다양한 양상들의 원인에 대해 인문주의, 종교, 철학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이름을 부여하곤 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부족함에 기인한 트라우마에 결핍이라는 개념으로 다양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부족함에 기인한 한 인간의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인간의 불운과 상처 투성이 운명에 대해 불교는 업보라는 무거운 이름을 주었다. 내면의 어두움과 외부적 요인이 만나 만들어내는 오묘한 조화로 인한 고통에 대해 기독교에서는 환란이라는 짐을 주었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 또한 한 인간의 고뇌와 고통과 괴로움의 결과로 파생된 세기의 작품들을 찬미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자신에게 부여된 구덩이를 발견하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구덩이를 메우기도, 감추기도, 드러내기도 한다.

나의 구덩이 또한 거대하다 못해 바닥이 보일 지경이지만, 다행히 나의 소심한 기질로 인해 그 원인에 대한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내 내면을 탐구하고 가능하면 감추는 지경으로 머물러 있었기에 남들이 보기에 그나마 사회생활한다~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구멍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모두들 메우고 싶어 하지만, 절대로 채울 수 없는 체감할 수 없는 깊이감에 좌절하게 되고 결국 감추거나 표출시키는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덩이가 있기에 다른 구덩이를 가진 타인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구덩이를 메우기 위한 노력이 삶의 한 올, 한 올이 되어 인생이라는 옷감을 짤 수 있을 것이고, 구덩이를 감추고 드러내는 등의 행위를 통해 인생의 슬픔과 고통과 아픔과 기쁨과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어떤 감정이나 사색으로도 채울 수 없는 사람들의 구덩이에 대해 주어진 수많은 이름들, 결핍, 업보, 환란, 예술의 정수 등....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 구덩이를 채운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씩씩하고 부지런히,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힘이 들더라도 구덩이에 눈물과 노력의 한 삽, 좌절과 분노의 한 삽, 한 삽을 채운다. 얼기설기 감추어진 나의 구덩이가 유난히 커 보이는 오후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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