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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Oct 26. 2020

복직, 그 어이없는 편안함

휴직일기(24) 우리는 왜 시간에게 빚진 듯이 사는 걸까


너무 오랜만에 쓴다


2월 초였지 아마

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간 게


복직 전 날, 너무 무서워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남자친구와 통화하면서 울었던 게 기억난다





어쨌든, 다시, 회사로



복직하고나서 느낀 제일 큰 감정은 어이없음이었다

왜냐, 무섭다고 울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복직하기 전 한 달은 너무 괴로운 시간이었다

어떻게 보내야 이 시간들아 아쉽지 않을지가 계속 걱정됐기 때문이다

TV를 봐도, 잠을 자도, 재봉틀을 해도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 이 행동을 하고 싶은지, 해서 기분이 좋은지 보다도 나중에 이 시간이 의미있었다고 생각될 지가 늘 우선인 채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복직을 하고 나서는

TV를 봐도, 잠을 자도, 재봉틀을 해도 '난 이럴 자격이 있으니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주 편ㅡ안해졌다

나는 출근해서 8시간 동안 일을 하고 왔으니까 TV를 봐도 괜찮았다

나는 주중에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으니까 주말에는 잠을 실컷 자도 괜찮았다

나는 돈을 벌고 있으니까 돈을 써도 괜찮았다 (더 어이없는 건, 유급휴직이었음)


달라진 것은 회사를 나간 것뿐인데.. 마음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변화였다



회사를 가는 게 더 마음이 편한 것이 썩 기분 좋진 않았지만

막 복직했던 2월의 나는, 그 편안한 마음 상태가 차라리 더 좋았다

불안정한 마음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게 너무 싫었고, 어떻게 그 마음을 다뤄야 하는지도 충분히 알지 못했던 내게는 약속대로 회사로 돌아가 직장인의 일상을 사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선택지였으니까


이렇게 요상한 안정감을 방패 삼아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자연스럽게 회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인지 덕분인지) 다른 해와는 다르게 조금은 설렁설렁 일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10월 말이 되었다








아프고 지친 심신을 쉬게 해주려고 가진 휴식 중에도

나는 시간에 대한 이상한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채감은 그냥 시간을 흘러보내서는 안 된다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냈다

그런 내게는 힘들고 짜증나지만 '일'이라는 게 차라리 나은 선택이었다



지금도 내 마음의 변화가 맘에 들지 않는다

TV를 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인가? 잠을 자는 것은 허송세월인가?

일은 돈을 생산하고, TV나 잠은 돈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재봉틀이나 음식 먹기는 돈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TV든, 잠이든, 뭐든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감히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받아들여지는 이 사실이 내 마음 속으로 향하면 다른 방향으로 흘러버리는 건 왜일까

취미, 쉼, 그런 게 누구보다 절실히 필요했던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내 마음속 프로그래밍은 왜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걸까



언제, 어떻게

아니면 얼마나 오랫동안

'모든 시간은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내게 새겨진 거지?

누구를, 무엇을 위해 그 생각에 묶여있는 거지?


그 편안했던 2월의 내가, 지금은 참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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