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나 때문에
휴직일기(25) 내가 힘든 건 내가 나이기 때문이라면?
언제부턴가 매주 가는 상담에서 할 말이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복직하고서 이런저런 일이 있긴 했지만서도
커다란 사건이, 그것도 일주일마다 업데이트 될 만큼 일어나지는 않았으니까-
그치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어떤 도돌이표 안에서 내가 맴돌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상담 초중반에는 상담 당시만이 아니라 과거 이야기를 하느라 할 얘기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고, 내가 더 평온하게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마음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을 수 있어 감사하고 개운한 경험인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봐야만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괴롭긴 했지만 조금씩 노력해보면 달라지겠지,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겠지라는 희망으로 이것저것 시도하며 상담을 다녔다
하지만 회차가 점점 쌓일수록 희망과 개운함보다는 답답함과 절망감이 더 커져갔다
내가 선생님에게 얘기하는 사건들은 각기 달랐지만, 그 사건들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하다 보면 닿는 결론은 늘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파헤치다보면 결국은 문제를 만든 원인은 늘 '나'라는 거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내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너무 엄격하게 바라봐서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서
내가, 혼자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어서
상담 가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지라고 생각해두어도 결국 미리 생각해보면 '내가 ~한 사람이라서 ~하지 않도록 노력해보자'가 결론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드니 자연히 하고 싶은 말도 줄어들었다
조금씩 고쳐보려고 애도 써봤지만 내가 달라지는 속도보다 문제라는 것들이 쌓이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나에 대해서 알면 조금 더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알면서도 변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자꾸만 마주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답답한 일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나를 탓했고 도대체 나는 어찌해야 하나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다
선생님에게 이런 생각을 말해보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결국 나 때문에, 내가 이런 사람이라 생긴 일이라면 내가 뭘 해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나인 채로 살 수밖에 없는데 문제가 생기는 게 나 때문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건 내가 살아있는 한 끝나지 않는 문제인 것 아니냐고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하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면 얼마나 힘들어요.."
선생님은 이런 자신을 탓할 게 아니라 안타까워 해야 하는 거 아냐는 듯이 이야기했다
난 그때, '나를 어떻게 안타깝게 여기라는 거지?'란 의문이 생겼다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발끈한 게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 사고해야 저런 생각에 닿을 수 있는지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지금도 난 궁금하다
같은 상황이라도 '나'가 아니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많은 경우를 겪을 때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 머릿속으로는 나를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요즘의 난, '난 이런 사람이니까'라는 무기력한 말로 많은 것을 포기하려고만 하고 있다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ㅡ 그냥 시도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내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너무 엄격하게 바라봐서 ㅡ 남을 차라리 알지 않으려 하고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서 ㅡ 어차피 안 될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길 포기해버리려 하고
내가, 혼자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어서 ㅡ 혼자가 될 상황 자체를 안 만들려 한다
나는 이런 사람
이렇게 되어버린 사람
이럴 수밖에 없는 사람
내키진 않지만 그냥 받아들이고 나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찾아야 되는 걸까?
그치만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나도 나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나도 나를 사랑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