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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an 31. 2020

얼굴은 뜨겁고 음식을 생각하면 역겹다

휴직일기(23) 갑자기 사실상 무동력상태가 되었다



지난주부터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졌다

설 연휴 시작하기 직전부터였던 것 같다

아니, 그 전 주에 그렇게 기대하던 퀸 콘서트에 가는 게 갑자기 무서워졌을 때부터였나



회사에 가지 않는 동안 휴직하기 전처럼 엄청나게 우울하거나 허무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밤이 되면 슬픈 생각만 나고, 살기 싫다는 생각만 계속 들어서 많이 울었다

설 연휴엔 본가에 가서 정신없이 지내느라 조금 무감각해졌었는데.. 연휴가 지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다시 똑같은 상태가 되었다



웃픈 점은 우울함, 허무함, 두려움 그런 건 이제 많이 겪어서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고 괴로워도 '내가 우울했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얼굴이 너무 화끈거리고 몸이 뜨겁게 느껴지기까지 해서 너무 불편하다

꼭 갱년기가 된 것처럼(오려면 한참 멀었지만) 얼굴이 자꾸만 너무 뜨거워져서 신경이 쓰이고 심해지면 머리가 아프다

머리에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근육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타이밍 이상하게 전세계에 퍼진 코로나 바이러스인 것도 아닐 텐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병원에 가서 이런 문제점을 말하고 약도 다르게 처방 받았지만 이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는 원래 추운 걸 엄청나게 혐오해서 이불을 애벌레처럼 칭칭 감고 자는데 (잠버릇: 옆에서 자는 사람 이불 뺏어가기)

요즘에는 이불을 덮으면 너무 불편하고 열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어서 이불을 덮기가 무섭다

자취방의 단열이 좋지 않아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데 그 냉기에 발을 닿게 하지 않으면 불편하다

회사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 문제가 생겨서는 해결이 되지 않으니 너무 싫다

회사로 돌아갈 생각에 이런 문제가 뜬금없이 생긴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드는데.. 잘 모르겠고 그냥 답답하다







요즘 겪고 있는 또다른 문제는 (원래 그러긴 했지만 유독 심해진 문제는) 혼자 있을 때 뭔가를 먹기가 싫어진다 것이다

가족, 친구, 남자친구랑 있으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져서 그런지 입맛이 생겨서 뭐라도 먹게 되는데

이상하게 집에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다


음식을 먹는 걸 생각하면 그 음식이 자꾸 역겹게 느껴진다

뭐라도 먹어보려고 편의점에 가서 고민하다가 나름 맘에 드는 걸 사와도 막상 먹으려고 하면 먹기가 싫다

그렇다고 아예 몇날 며칠 끼니를 거르거나 거식증처럼 밥을 먹으면 오바이트를 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밥을 먹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8시에 일어나도, 12시에 일어나도, 3시에 일어나도, 밥 먹는 시간은 거의 저녁 6시~7시가 되는 것 같다

한 끼만 먹고 밥도 많이 안 먹는데 살은 안 빠지는 게 신기할 정도다





중간중간 콘서트도 다녀오고, 여행도 다녀오고, 공연도 보고, 뭐 이것저것 많이 하고 다녔는데

혼자서 제대로 한 것 없이 남자친구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가

남자친구가 더 좋아진 만큼 혼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능력(?)이 줄어든 것 같다

그저께 상담을 받을 때도 선생님이 홀로 똑바로 설 수 있는 힘을 가져야 된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의지없이 무기력하고,

몸은 처음 겪는 요상함에 괴로우니 요즘에는 기분도 별로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런데 하필 내일까지 고과 평가를 위한 자기평가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회사, 고과고 뭐고 엿이나 까드쇼! 이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회사로 돌아가서 다시 월급을 받고 일해야 되니까 내일 부지런히 작성해서 제출해야지




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 들어보니, 내가 회사 때문에 아픈 게 아니고 회사에서 겪은 일이 불안/우울함을 촉발시켜서 원래 있던 기질이 확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상태 돌려놓느라 병원비 덕분에 연말정산 환급은 제대로 받게 된 나의 제1의 원망거리는 회사인데, 내가 병가를 냈다고 고과를 안 좋게 줄까봐 그것도 걱정이 된다 (역시 걱정 전문가)

나는 일 때문에 아파졌는데, 아파서 쉬었다고 일한 것도 인정을 못 받는 그런 억울한 일은 없으면 좋겠다




엄청 징징대기만 하고 의미없는 주저리를 많이 썼다

모르겠다 그냥 나는 기분이 안 좋고, 전보다 많이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얼굴이 뜨거워서 괴롭다

시간이 가지 않으면 좋겠으면서도 동시에 시간이 미친듯이 빨리 흘러서 빨리 생을 마감하고 싶기도 하다

그냥 남들처럼 똑같이 24시간 사는 것뿐인데 왜이렇게 나는 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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