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어는 무죄다

완벽한 영어는 없다

by 김현정

세상에는 영어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영어와는 무관한 일을 하는 살아가는 사람들도, 해외로 나갈 일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영어 앞에서 자신도 모르는 새 주눅이 들곤 한다.


영어가 어려운 건 당연하다. 사실 영어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언어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언어는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말과 글이 더해진 거대하고 찬란한 말의 덩어리다. 게다가 한 번 정해진 말이 가만히 고정돼 있는 것도 아니다. 언어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끝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그러니 사람들의 머릿속에 담긴 생각의 갈래를 모두 이해하고 세상의 모든 변화를 빠짐없이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완벽한 영어는 없다

사람들이 영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영어가 뭘까?


문법적인 오류가 없는 문장?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트렌디한 표현?

뉴스에 나올 법한 정확한 발음?

상대의 말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는 완벽한 리스닝?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영어 같은 건 없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모두 ‘한국어 네이티브’일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보자. 한국어로 글을 쓰거나 대화할 때는 어떤가? 단 하나의 비문이나 오타도 없는 글을 기대하는가? 그 어떤 오류도 없는 완벽한 발음을 해야만 제대로 된 대화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100%의 확신을 갖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체로 대부분의 글과 말에는 오류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모국어로도 안 되는 완벽을, 왜 하필 영어에서만 고집해야 할까?!



영어의 갈래

모든 언어가 마찬가지지만, 영어는 완벽을 고집하기가 특히 어려운 언어다. 세상에는 수많은 영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힝글리쉬(인도식 영어), 싱글리쉬(싱가포르식 영어), 스팽글리쉬(스페인식 영어) 등 영어에 각국 고유의 언어가 덧입혀진 향토색 짙은 영어도 많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 호주, 영국, 미국 등은 똑같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만 발음도 표현도 모두 제각각이다.


영어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내게 처음 일깨워준 사람은 런던의 웨이터였다. 스무 살 여름, 언니와 함께 떠난 유럽 배낭여행 첫 목적지였던 런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 많은 언어가 공존하는 유럽 대륙에서 그나마 만만한 게 영어였다. 런던의 작은 식당에서 웨이터는 우리가 내뱉는 말을 곧잘 알아들었다. 웃으며 주문을 끝내고 ‘휴~ 끝났다~’ 하는 찰나 웨이터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Anything to drink?”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닌가!


“워러, 플리즈!”


매끄럽게 이어지던 대화가 뚝 끊겼다.

웨이터는 뭔가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워러, 노.”


나는 순식간에 얼음이 됐다.


‘뭐야, 물이 없다는 거야? 말이 돼?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건가? 이게 인종차별이야?’


상상의 나래가 끝없이 펼쳐졌다.

어질어질한 속도로 굴러가는 내 머릿속을 훤히 꿰뚫어 본 듯 웨이터가 빙그레 웃으며 힘주어 말했다.


“워러, 노. 워! 터!” (미국식 영어에서는 ‘t’가 모음 사이에 올 때 ‘ㄹ’에 가깝게 발음하기 때문에 똑같이 water라고 적어도 미국에서는 ‘워러’, 영국에서는 ‘워터’라고 발음한다. '무언가를 아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상당히 달라서, 두 나라에서 사용하는 영어 발음이 다르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경험했을 때의 충격은 상당했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식 영어를 영어의 정답으로 여긴다. 그러나 영어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들이 생각하는 영어의 정답은 영국식 영어다. 국적에 따라, 고향에 따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어의 정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워러’가 정답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워러’가 오답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영어의 정답은 ‘미국식’ 영어도, ‘영국식’ 영어도 아닌 ‘열린 마음’과 ‘진심’이다. 말이 짧아도, 아는 게 부족해도, 주눅 들기보다 기꺼이 다가가려는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언어는 완벽한 문법보다 진심을 담는 그릇이다. 세련된 표현보다 상대의 마음에 닿는 한마디가 더 큰 울림을 준다. ‘워러’든 ‘워터’든, 당신이 내뱉은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면 그건 이미 완벽한 소통이다. 영어는 시험지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다. 그러니 오늘도 주저하지 말고, 당신의 발음과 문법, 억양 그대로 말해도 좋다. 당신의 영어는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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