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유치원 등원 시간은 8시 50분, 딸 아이의 기상시간은 매일 8시 00분. 흔들어 깨우고, 뽀뽀를 하고, 이불을 빼앗아도 일어나지 못한다. 잠이 덜 깨 비몽사몽인 딸이 침대에 누워있는 채로 양말과 속옷, 겉옷을 입혀 거실로 들쳐 매고 나오면 8시 30분.
눈이 반쯤 감긴 아이의 입에 아침식사까지 떠 먹여주고 나면 아침 8시 40분. 겨우겨우 달래 외투를 입히고 신발을 신겨 등원을 위해 집 밖으로 나온다.
매일 이런 일상의 반복이다.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번쩍 일어나는 10세 오빠와는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 유치원을 간다, 안 간다를 수십 번 반복하며 엄마인 나와 끝도 없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유치원 문 앞에서는 쿨하게 손 한번 흔들어주며 멋지게 걸어가는 아이.
밤새 눈이 많이 왔다. 눈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는 쌓인 눈을 꾹꾹 밟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 행여 눈이 녹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입에 들어있는 만둣국을 금세 삼키고 밖으로 나간다.
요 근래 눈이 많이 내린 우리 동네엔 아침 등원 길에 볼 수 있는 개성만점 눈사람들도 많고, 아직 그 누구도 밟지 않은 눈 덮인 새하얀 길도 많다. 딸아이는 유치원 가는 길에 눈사람도 구경하고, 눈 덮인 나뭇잎도 구경하고, 바닥에 쌓여있는 눈도 만져보고, 발로 차보고, 손으로 뿌려도 본다. 태어난 지 7년밖에 안된 이 아이에게 눈은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더 많은 시간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나의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지각해 본 적이 없다. 어떻게든 일할 시간을 확보해야 하고, 거래처와의 미팅 시간에 골인하기 위해 자고 있는 아이를 어떻게든 깨우고 입히고 먹인 후 아침 8시 30분에 등원을 시켰다. 그렇게 해도 늘 시간은 모자랐고 마음은 조급했다. 울며 떼쓰는 아이를 뒤로 한 채 일터로 나가는 내 마음도 편치 않았지만 그래야 내가 제 역할을 다 하고, 사회에서 쓰임이 있는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의 나는 꽤 많이 달라졌다. 유치원에 지각하는 날이 많지는 않지만 오늘처럼 눈이 내린 날이면 눈 구경에 홀딱 빠진 아이의 즐거운 모습을 보는 것이 커다란 행복이다. 9시 30분이 다 되어도 조급함이 없다. 그래, 좀 늦으면 어떠냐. 늦었다고 출석체크해서 벌점 주는 것도 아니고, 나도 딱히 바쁜 일이 없으니 200m도 안 되는 이 거리를 30분째 걸어가는 게 뭐 어떤가.
그래, 네가 즐거우면 됐다.
그래, 빨리 가자고 어린 너를, 지금 이 순간 즐거운 너를 닥달하지 않으니 나도 좋다.
만져볼 거 다 만져보고, 구경할 거 다 한 딸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며 오늘도 쿨하게 유치원 정문으로 들어갔다. 코도 귀도 시린 차가운 아침, 유치원으로 총총총 걸어가는 딸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도 나답게 살고 싶은 것처럼 어린 딸, 7살 유치원생인 너도 너답게 살고 싶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다움을 지키고 싶다면 어린 내 아이들의 "아이다움"도 지켜주자. 사회적 성취와 효율, 더 많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내 아이들이 아이다울 수 있는 권리를 희생시키지 말자.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을 여유롭게 느끼고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엄마의 시간으로 아이의 세상을 넓혀줘야겠다 한 번 더 다짐해보는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