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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탈튼튼 김프리 May 31. 2021

길이 아니라 가지 않았다.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꿈도 이루는 쉬운 길은 없다.

내 꿈은 노래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었다. 언제 어떤 계기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같은 학교 6학년 언니가 지방 방송국 동요대회에 출전한 모습을 보고 난 후였던 것 같다. 나도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된 노래에 대한 열정은 어린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가르쳐 주는 선생님도 없었고 엄마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듣기 그다지 좋지 않다며 재능이 없으니 그만하라고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100번쯤 지방 KBS 동요프로그램 <노래는 내 친구> 오디션에서 떨어졌고, 100전 101기 끝에 오디션을 통과해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 상이 마중물이 되어 시립소년소녀합창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지역KBS어린이합창단에 정식 단원으로 활동했다. 내가 불렀던 중학교의 교가는 지금도 학교에 울려 퍼지고 있고 (1회 졸업생) 그 후에도 학교를 대표해 수많은 대회를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예고를 가고, 음대를 가고, 독일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소프라노 신영옥 선생님처럼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확신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진로를 결정해서 한 길만 보고 걷고 있던 나는 고3때 더 이상 레슨을 시킬 수 없다는 부모님의 결정에 인문계열로 진로를 변경하면서 바보, 멍청이, 등신이 되어버렸다. 아빠는 주식으로 자식들의 꿈과 엄마의 평온한 일상, 직장, 퇴직금, 집, 논, 밭을 모두 날리고도 주식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당시 나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딱 한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 길이 좌절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어렵게 입학한 대학교에 <꼬망스>라는 창작 가요 동아리가 있었고, 동아리에서 활동하기 위해 오디션을 봤고 합격했지만 나는 노래하는 것을 멈췄다. 노래하는 즐거움보다는 등록금을 마련할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시급했다.


인하대학교 꼬망스 출신의 멋진 선배들

당시 나는 돈이 필요했고, 매일 술을 마셨으며, 매일 울었다. 간신히 지팡이 짚고 땅에 겨우 서 있는데 머리를 굴려 영리하게 내 길을 찾아갈 힘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재능을 살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면 유흥주점만 생각이 났다.


주말에 결혼식 축가만 불러도 학교 앞 호프집에서 늦은 새벽까지 일하는 것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었다. 지방에서 열리는 노래대회만 찾아다니며 상금과 상품을 받아도 등록금 정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두려웠고 겁이 났고 자신이 없었다.


당시 너무 절박하고 우울한 마음에 인터넷으로 유흥업소 아르바이트를 검색해 본 적이 있다. 하루에 몇 시간만 일하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기도 했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술 한잔 안 마시고도 잘 할 수 있는 것이라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그런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 딸, 나쁜 짓 안하지? 아빠는 우리 딸 믿는다"



몇 년전, 지금은 이름을 널리 알려 꽤 유명해진 가수 윤수현의 인생 스토리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의대를 졸업한 20대 젊은 아가씨가  매니저도 없고 차도 없이 뚜벅이로 전국을 다니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무대의상과 소품, 메이크업 박스를 캐리어에 싣고 찜질방, 모텔에서 자는 잠도 마다하지 않던 그 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펑펑 울었다.


용기를 내지 못했던 어린 내가 안타까웠고, 한창 즐겁고 행복해야 했던 20대를 송두리째 날려버린 것만 같아 서러웠고, 늘 노래하는 삶을 동경했지만 꿈을 향한 독한 마음 한번 품지 못했던 나의 의지박약을 한없이 탓했다.


21살, 내가 화류계에 발을 딛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아서 참 잘했다는 칭찬도 해주고 싶다. 가진 재능을 풀어내며 살진 못했지만 길이 아닌 곳에 발을 딛지 않았으니 지금의 내가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40살인 지금 나의 꿈은 여전히 노래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지금부터 노래해도 앞으로 40년은 더 노래하며 살 수 있으니 너무 늦은 것도 아니다. 이젠 생계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니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음반을 내고 행사를 다니는 가수의 생활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이 나이에 뮤지컬 배우에 도전해 볼 생각도 없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과 가까이 지내며 일상을 좀 더 활력있고 다채롭게 채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살아보니 지름길인 줄 알고 선택했던 길이 고난의 길이 되는 경우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길이 아닌데 길이라 착각하지 않아서 다행이고, 길이 아닌 길을 걷지 않았던 나의 선택에 큰 박수를 보낸다. 힘들었고 외로웠지만 옳은 길 위에 서 있었던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지금의 나는 꽤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내가 걸었던 길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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