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기다리며 꿈을 이루는 작업을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간은 딸아이가 오기 1시간 전이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이 시간을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회사를 퇴사한 후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할 건지를 선택할 권리를 되찾게 되었다. 직장인은 시간을 급여와 맞바꾼다. 급여를 받는 만큼 나의 시간을 회사의 업무에 할당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급여를 주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나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았고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삶이었다. 육아와 일, 살림을 병행하면서 나는 "바쁘다"와 "피곤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일에도, 육아와 살림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A를 하면 B가 생각나고, B를 하면 c가 생각났다.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매달리지 못했다. 모든 일을 잘 해야겠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강박은 시간의 효율을 방해했다. 효율을 따질 필요가 없는 것들, 육아의 영역에 성과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려 했다. 그래서 나의 일과 육아는 늘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그래서 내 삶에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적용했다. 참 피곤한 삶이었다.
퇴사를 위한 육아휴직을 한 후, 나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나의 시간과 가족의 시간을 분리할 필요가 있었다. 예전처럼 가족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일과 삶을 분리하는 데에 커다란 에너지를 쓰지만 나는 일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일인 사람이라 나와 가족의 시간을 분리하기로 했다.
일단, 나만의 시간은 아이들과 남편이 일어나기 전인 오전 5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2시간,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으로 떠난 후인 9시부터 3시 30분까지를 나만의 시간으로 정했다. 총 8시간 30분 중 9시부터 12시까지는 운동하는 시간으로 정했고, 나머지 시간은 책을 읽거나 영어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는 행위를 하기로 했다.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 기록하는 것에 나의 에너지을 투입하기로 했다.
아이가 집에 올 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울렁거린다는 지인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아이가 오는 시간이 육아 스트레스의 신호가 된다는 것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도 나온 장면이지만 아이들이 집에 오기 1시간 전, 엄마들은 한숨이 나오고 답답함을 느낀다. 나 역시도 이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었다. 산후 우울증도 왔었고, 육아 우울증도 경험했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설렌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낮잠을 자거나 TV를 보는 대신 아이가 다 자란 후 사회에 다시 짠~하고 나갔을 때 경력이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글을 쓰고, 팟캐스트 콘텐츠를 구상하고, 시간 일기를 쓰고, 영어공부를 하고, 온라인 인맥들과 소통하는 것은 현재의 내 상황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 시간을 설계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은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나는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기에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을 내가 성장하는 시간으로 치환했다. 아이도 성장하고 나도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택했다.
시간을 어떻게 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큰 아이는 오후 1시에 집에 오고, 작은 아이는 오후 3시 혹은 4시에 집에 온다. 방해 없는 시간은 오전이 유일하며 오후엔 여러 가지 방해꾼들이 나타나고 변수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자투리 시간도 나에게는 매우 귀중한 시간이다. 연속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면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 되고, 연속적인 시간이 가능하면 최대한 집중해서 내면 성찰을 하고, 공부를 하고, 기록을 하고, 글을 쓴다.
같은 시간, 다른 의미
1시간이라고 해서 얕보지 마라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산다. 하지만 시간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생각해보면 연애시절에 남자친구를 만나기 1시간 전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약속시간 1시간 전에 그가 예고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나면 더 없는 기쁨이요, 커다란 사랑이다.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딱 1시간의 여유가 있을 땐 어떤가? 아끼고 사랑하는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이 하루에 딱 1시간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버스를 기다리는 1시간은 지루하고, 시험을 보는 1시간은 너무 짧으며, 퇴근 전 1시간은 마음이 가볍고, 합격 발표 1시간 전은 떨리고 두렵다. 같은 1시간이라도 어떤 누구에겐 설렘의 시간이고 어떤 누구에겐 의미 없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여러분은 어떤가?
나는 나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게 두지 않으려 한다. 아이를 기다리는 1시간이 지나고 아이를 만나게 되었을 때, 아이에게 나의 온 시간을 내어줘도 괜찮을 수 있게 나의 시간을 아끼고 소중하게 다루려 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즐겁게 등원해 주었고 그 덕에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온 정성을 아이에게 쏟을 것이다. 나의 시간과 가족의 시간을 구분하는 것은 절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나의 시간을 나답게 보내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충실하게 보낼 수 있다.
아이가 오기 1시간 전, 나는 가장 나다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 아이를 만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