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연사의 목소리를 놓치는 가슴이 철렁한 순간들을 감추려고 표정관리는 하지만 이미 놓쳐버린 발화는 어쩔 수 없죠. 통역은 한순간도 딴생각을 할 수가 없는데, 바로 노트 필기가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앞에 한 두 마디 놓치는 것쯤이야 하실 수 있겠으나, 사실 영어 같은 경우 그 앞 한두 마디 때문에 전체 문장이 완전 다른 뜻이 돼버리기도 하니까요.
이런 우역곡절을 겪으며 통대시절엔 운 좋게 1학년 1학기부터 프리시장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진입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은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를 떠올리면 슬프고 씁쓸하기까지 한데요.
동기들과 통대 졸업 후의 안정적인 프리시장 입성이나 인하우스 취업 등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모든 동기들이 경쟁자로 느껴지게 교수님들이 저희의 실력을 향상하시려고 자극을 주시기도 합니다. 또한 스터디를 함께 하면서 서로 크리틱을 해주는 과정에서 예민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예의를 지키라고 학기 초반에 교수님들이 스터디 매너나 원칙등을 알려주셨지만 서로가 경쟁자이다 보니 다른 사람이 해주는 크리틱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했던 것 같네요.
스터디 자료의 품질도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회의 스크립트, 정부기관 연사 스크립트를 자료로 가져오는데 상대는 기사문을 긁어오거나 고대 유물이나 역사 자료 또는 의학용어와 정의만 잔뜩 나열한 스터디 자료를 가져온다고 한다면 이는 시험에도 나오지 않고, 실용성도 떨어지는 자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스터디 시간은 반드시 3분 이상 하여야 합니다. 1, 2분을 하는 스터디가 의미가 없는 이유는, 중간시험이나 기말 시험도 최소 3분에서 6분이니 당연히 못해도 3, 4분으로 스터디를 하는 것이 훈련 차원에서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교수님도 3분 이하는 말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어떤 경우엔 연사 혼자서 15분, 20분을 내리 말씀하실 때도 있으셨습니다.
호주에서 1년 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의 경우는 저희 학교에서 동시 훈련을 1학년 때부터 시키십니다. 1학년 1학기부터 바로 동시 훈련을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막상 닥치면 하게 됩니다. 통대 학생들은 대부분 입시학원에서 통역 훈련을 짧게는 1년, 아니면 2, 3년을 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동시 훈련을 바로 들어가도 해낼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 역량차는 어느 순간에나 존재합니다.
저는 호주 유학을 제가 선택해서 갔습니다. 앞전 포스팅에 이미 언급드렸듯이, 영어 통역을 하는 사람이 영미권에서 거주한 적이 없다는 것은 한국에선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리핀도 영어를 배우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구축하고 있었고 개인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잘할 수 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한국분 모두의 생각이 저와 같지는 않으니까요.
동시통역 수업 시간에 몰래 찍 >, < - 동시 너무 잘하시고 목소리도 좋으신 조 00 교수님
동시를 얼마나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지, 저희 학교는 1학년부터 동시 수업을 3번을 듣고 수업 강도가 실로 엄청납니다. 동시 AB, 동시 BA, 그리고 한영 및 영한동시를 한 수업에서 가르쳐 주시는 수업도 따로 있습니다. 모든 수업마다 교수님들께서 최선을 다하여 지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교수님들은 모두 현장에서 실력으로 인정받고 계시는 분들만 모셔다 놓은 수업이라 품질은 염려 안 하셔도 되십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저희는 교수님들 현장 동시통역을 학생들이 가서 참관하고 들을 수 있도록 하고 계시거든요. 참관 열심히 했던 저도 저희 모든 교수님들 동시통역 다 들어봤습니다.
그만큼 서울외대는 실력과 자질이 입증된 분들만 초빙하고 있고, 실무위주 훈련 위주 수업을 하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효율을 가장 중요시하는 제가, 처음 유학처를 결정할 때 필리핀을 가보고서 여기서 영어 공부를 하면 가장 잘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서 6년을 머물렀듯이, 서울외대의 교수진과 커리큘럼, 수업의 질을 겪어보고 제가 통역을 가장 잘 훈련받을 수 있다고 확신을 얻었기 때문에, 2년을 끝까지 이수한 것입니다. 2년의 과정을 이수하면서 들인 비용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렇게 배운 과정 후로, 저는 현재 프리시장에서 다른 학교 통역사들과 비교하여 뒤치지 않는 실력으로 고객에 인정받고 재요청을 받는 통역사입니다. 물론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래 봬도 프리 경력은 횟수로 벌써 3년 차입니다. 이력서는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