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
진짜 이러다 죽는 건가 생각이 든 건 지난해 스페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비행기를 나름 탈 만큼 타봤지만 그렇게 심한 터뷸런스는 처음이었다. 비행기가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렸고 약하지만 뚝 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도 간간이 느껴졌다. 가뜩이나 당시 불안장애가 심했던 터라 호흡을 정돈하고 나쁜 생각을 차단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런 난기류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러다 죽을 수도 있나? 옆에 앉은 애인을 보며,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인가. 죽는다면 순서 없이 둘 다 그냥 한 번에 끝났으면 좋겠다 따위를 떠올리며, 죽음 앞의 강력한 사랑이 샘솟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애인은 헤헤 좀 심하네 근데 나 저번에 제주도 혼자 갈 때 그때가 더 심했엉~ 하며 나를 바라봤다. 덕분에 좀 안심할 수 있었지만... 꽤나 긴 난기류가 지나가고 비행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해졌다.
그리고 또 몇 번의 비행기를 탔다. 그러다 최근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에서 또 심한 난기류를 겪었다. 물론 스페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비행기가 흔들렸다. 불안장애 약도 종료한 터라 혹시나 다 나은 불안장애가 다시 나를 삼키지 않도록 더 애써야 했다. 무사히 비행기에서 내렸고 두 번이나 심한 난기류를 겪자 인터넷을 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요즘 난기류가 심하지? 그전까진 별로 겪은 적이 없었는데?
만물 기후 위기설인지, 진짜인지 암튼 간에 요즘 난기류가 더 잦아진 이유도 바로 기후 위기 때문이란다. 기후가 변하면서 대기가 더욱 불안정해지고 공기는 상승하고 그 결과 난기류도 심해진다고. 진짜 그런가. 생각해 보면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있던 10년 전에는 아무리 유럽 간 비행기를 자주 탔어도 난기류를 거의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주로 소형 비행기였는데도. 한국에서 유럽으로 가고 돌아오는 대형 비행기에서도 쿨쿨 잠을 잘 정도로 난기류를 거의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이후의 모든 여행에서도. 정말 기후 위기 때문인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탑승하기 하루 전날. 충격적인 기사가 떴다. 싱가포르 항공사 비행기가 강한 난기류를 만나 3-4초 되는 짧은 시간에 50m나 하강하게 되면서 한 명이 결국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였다. 보통은 난기류를 예상할 수 있어 미리 좌석벨트 안내를 해주지만 이 사고에서 발생한 난기류는 청천 난기류로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예상할 틈도 없이 급격하게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그래서 그런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장을 포함한 모든 승무원이 난기류에 더 기민하게 대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다행스럽게도 특별히 난기류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조금만 흔들리거나 난기류가 있을 것 같으면 기장이 계속해서 안내 방송으로 벨트 착용을 강조했다. 더불어 기내식 서비스도 중단하고 승무원들에게도 앉을 것을 요청했다. 왜인지 어제의 사고 때문에 더 조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승무원 지인의 블로그에서도 당시 사고 이후의 비행에서 터뷸런스에 대한 교육을 더욱 강조받았단 글을 읽었다.
두 번 정도 겪고 나니 비행기를 타는 게 그렇게 편하게 느껴지지 않게 돼 버렸다. 조금 무섭기도 하다. 물론 난기류로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사람이 죽거나 하는 일은 아주 아주 드물다곤 하지만, 그건 기후 위기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이렇게 공기가 예상치 못하게 상승하고 급격히 강하하고 비행기를 흔들어 대고 급강하시키는 시대에, 더 이상 그 통계는 과학적 믿음을 주지 못한다. 여행을 사랑하고 그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가장 설레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슬프고, 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