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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un 04. 2019

뉴 올리언스의 100년 전 신문사가 호텔로 변신하다

The Eliza Jane 호텔

지지난 주말은 미국의 Labor day 롱 위켄드였어요. 저도 여기 와서 처음 알게 된 용어인데, 월요일에 공휴일이 붙어있는 주말을 '긴 주말'이라고 부르는 거죠. 사실 한국에서 5월은 근로자의 날, 어린이 날, 부처님 오신 날 등 퐁당퐁당 징검다리 공휴일이 많아서 전 항상 이 시기에 휴가를 붙여 긴 여행을 떠나곤 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월요일 하루 쉬는 것을 가지고 롱 위켄드라고 불러주는 게 성에 안차긴 했지만요. 어쨌든 몇 달 동안 오래 떨어 지낸 우리 세 식구가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똘똘 뭉칠 수 있도록 롱 위켄드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로 말이죠.


사실 뉴올리언스를 가게 된 계기는, 호텔 웹사이트를 구경하다가 너무 마음에 드는 호텔을 발견해서였어요. 바로 19세기에 있던 뉴올리언스의 신문사 The Daily Picayune의 건물을 그 당시 모습 그대로 호텔로 탈바꿈한 The Eliza Jane이죠. 이 호텔이 위치한 곳은 아마도 예전에 신문사나 잡지사들이 모여있었던 곳 같아요. 그래서인지 거리의 이름도 Magazine Street지요. 호텔 이름도 무슨 유명 재즈 가수 이름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 신문사 발행인의 이름이라고 해요. 호텔은 옛 신문사 인쇄소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곳곳에 그대로 노출되어있는 오래된 벽돌, 2층 천장부터 로비로 연결되어있는 큰 인쇄기, 기자들이 취재를 다니며 뛰어다녔을 것 같은 클래식한 복도와 엘리베이터 등이 여기가 예전 신문사였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려주죠.



저희가 처음 도착한 날은 아주 늦은 밤이었는데, 그 날은 아마도 루이지애나에서 큰 학회가 있었던 날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기대했던 업그레이드는커녕 창문도 하나 없는 창고 같은 방을 배정받았죠. 정말 그런 호텔방은 난생처음이었어요. 벽지가 하나도 발리지 않은 침실 방은 천고가 아주 높고 울리는데 빛 한 줄기 들어올 곳 없는 캄캄한 창고 같은 곳이었죠. 호텔방이라기보다는 예전에 쓰이던 서류창고실에 침대와 소파를 놓은 듯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호텔 자체는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방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여기서 나흘을 어떻게 더 지내나 걱정이 될 정도였죠. 물론 이색적인 경험이기는 했지만요.



다음 날, 로비에 가서 전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혹시 창문 하나라도 나있는 방으로 옮길 수 있냐고요. 그런데 웬걸, 친절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너무나 흔쾌히 "우리 호텔에서 제일 좋은 방인 Publisher's Suite로 옮겨줄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역시 100년 전의 미국도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군요. 신문사 발행인의 방이 그 건물 전체에서 가장 좋은 방을 차지하고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어쨌든 저희는 운 좋게 창고 방에서 이 호텔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어떤 모습일지 정말 기대가 되었죠.


그리고 방에 들어간 순간, '루이지애나까지 와서 이 곳에 와보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생각이 들었죠. 그곳은 제가 상상했던 루이지애나의 색과 감각을 그대로 현실화해놓은 공간이었어요. 따뜻하면서도 정겨운 인테리어 구조와 하나하나 조화를 이루며 벽에 걸려있는 장식품들, 더스티 핑크, 블루, 화이트, 골드 등 과감하면서도 동시에 편안함을 주는 색감 등이 정말 마음에 쏙 들었죠.



이 방으로 옮기고 나서 남편과 저는 우리가 앞으로 집을 고를 때 창문으로 빛이 잘 들어오는 게 얼마나 삶에 중요한지, 꼭 잊어버리지 말자고 얘기했습니다. (작년에 한동안 집 구경을 다녔었는데 빛이 잘 안 들어오는 북향집의 인테리어와 가격이 마음에 들어서 덜컥 계약을 할 뻔했던 경험이 있거든요! 물론 어두운 게 영 찜찜해서 더 진행은 안 했지만요. 정말 다행이죠)


방이 마음에 드니 그제야 호텔의 다른 곳들도 천천히 둘러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어젯밤에는 어두워서 잘 못 봤는데, 아침에 되어 건물 곳곳에 자연 채광이 들어오니 호텔 곳곳을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색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뉴올리언스는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래서인지 마치 파리의 마레 지구에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부띠끄 호텔 분위기도 물씬 났지요. 보라색, 초록색 등의 페인트부터, 건물이 에워싸고 있는 야외라서 약간은 시끌벅쩍한 뉴올리언스 프렌치 쿼터에서 조금 벗어나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중정 테라스(이 곳은 저녁에는 조용한 야외 와인바로 변신), 그리고 우리의 아침마다 무슨 메뉴를 고를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 Couvant 레스토랑(제 입맛에는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맛있었던 곳) 등, 어디 하나 빠지는 곳 없이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제가 여행을 하면서 인스타그램에 호텔 사진을 올리니, 예전에 일할 때 알고 지내던 럭셔리 매거진 에디터님이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이번에 전 세계 이색 호텔을 묶어 소개하는 기사를 준비 중이신데, 바로 여기 호텔을 소개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요. 뉴올리언스는 사실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여행지인데 이 호텔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말씀과 함께요. 맞아요, 바로 그거에요! 사실 미국 사는 저희들도 며칠 여유가 생기면 뉴욕이나 LA, 샌프란시스코 같은 큰 관광 도시만 갈 생각을 하지 굳이 남부를 찾지는 않거든요. 한국에서부터 날아온다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그런데 저도 어디선가 우연히 본 이 호텔의 몇 장의 사진이 저희를 이 곳으로 이끌어줬고, 잊을 수 없는 여행지로 남게 해주었어요. 그래서인지 누군가 그 기사나 제 브런치를 보고 우연히 이 멋진 도시를 여행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까지 다 발견하지 못했던, 미국의 새로운 매력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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