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이사 온 지 한 달 여 되는 어느 아침에.
10년 간의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이제 전업주부가 되어 아기를 데리고 이 곳 미국 시카고에 이사 온 지도 한 달을 꽉 채우고 반이나 지나갔습니다. 이제 바쁘게 출근할 일도 없으니,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글을 써야지, 하고 시카고행 비행기 안에서 먹었던 마음과는 달리, 이제야 막 저는 첫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네요.
사실 글을 써보려고 노력은 여러 번 했었어요. 아기 낮잠을 재우고, 기분 좋게 커피를 내리고, 잔잔한 음악을 켜고 이제야 의자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열면, 딱 맞춰서 낮잠 잘 자고 있던 아기가 '엥'하고 울어버리죠. 사실 지금은 새벽 5시인데 이 글이 어디까지 써 내려갔을 때쯤 방에서 아기가 알람을 울려줄지, 과연 이 글은 완성이 될지 저도 모릅니다.
18개월짜리 아기의 제 1 육아 책임자로의 변신은 웬만한 회사로의 이직보다 더 큰 두려움이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회사 다닌다는 핑계로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육아 참관자가 되어 살았었거든요. 제 손으로 이유식을 만들어본 적도, 아기를 제대로 씻겨본 적도 없었죠. 그래서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그리고 시카고행 비행기 티켓을 사는 순간에도, 이거 정말 가도 되는 건가, 싶었어요. 막상 미국집에 도착했을 때 아기에게 먹일 첫 끼니를 해줄 자신도 없었거든요.
그렇게 많은 고민의 시간을 뒤로하고, 이 곳에서의 삶을 살아내기 시작한 지 한 달 여. 그럭저럭 아기와 저는 여기 생활에 잘 적응해나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요리 블로그들 덕분에 이런저런 요리 몇 가지를 하게 될 줄 알게 되었고, 고맙게도 아기는 그런 미숙한 엄마의 음식도 한 수저, 두 수저, 잘 먹어줍니다.
여기에서의 삶은 서울에서의 생활과는 비교가 안되게 단순해요. 아니, 일부러 더 단순하게 살고 있지요. 되도록이면 할 일은 하루에 딱 하나씩만 한다는 게 여기 제 삶의 원칙입니다. 예전 같으면 백화점도 들렀다, 미장원도 갔다, 네일숍도 갔다, 미술관도 갔다, 들어오는 길에 책방을 잠깐 들르는 하루였다면, 이제는 정말 필요한 딱 한 개, 그마저도 별로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생각이 들면 미련 없이 버리고, 그냥 집에서 아기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죠. 삶의 마인드셋이 바뀌었다고 해야 되나... 예전에는 그렇게 집 밖으로 안 나오거나, 일 안 하고 집에서 아기만 보는 엄마들이 좀 답답하겠다, 싶었는데, 글쎄요, 막상 제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그냥 이것도 삶의 이 기간을 살아내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여기 오기 전에는 참 이런저런 불안했던 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합니다. 아직까지는요!
그래도 남편이 학교를 안 가는 주말에는 최대한 열심히 여행을 다니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기가 태어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아기와 저는 한국에서, 남편은 미국에서, 떨어져 지냈었기 때문에 같이 보낸 시간이 길지 않거든요. 또 남편이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는 내년부터는 또다시 주말 부부가 되어야 되기 때문에 이 시간을 최대한 함께, 즐겁게 보내려고 하고 있지요. 시간이 더 지나 잊히기 전에 다녀왔던 주말여행들에 대해서도 글을 써두어야겠네요.
아, 이렇게 몇 문단을 쓰고 나니, 이제 시카고에 동이 트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스크롤이 내려올 수 있을 정도의 글을 쓸 시간을 준 꿈나라에 가있는 아기에게 감사하며, 저는 이제 아기 아침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가야겠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엄마의 하루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