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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Oct 22. 2021

불안한 게 불안한

아니 그래서 도대체 뭐가 불안한거냐고요?

 내가 퇴사를 앞두고 있던 시기에, 회사 내에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아팠다. 우리는 모두 투병중이었다. 불안장애, 우울증, 조울증, 돌발성 난청, 공황장애, 미주신경성실신, 갑상샘암...우리가 우리의 병과 증세와 약에 대해 말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내 차례가 되어 이야기를 할 때면 친구들은 가끔씩 궁금해했다. 


그래서 도대체 뭐가 불안한건데? 너를 불안하게 하는 특정 조건이나 상황같은 게 있어? 


 그럴 때마다 나는 횡설수설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나의 불안에는 정말이지 일관성이라는 게 없었다. 불안발작을 겪고 이를 심장마비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진단을 받긴 했지만 사실 내가 조금 이상해진 것 같다고 느낀 건 그보다 한 두달 전의 일이었다. 점심 식사 이후에 메인 광고주와 캐주얼한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피티를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슬라이드를 띄운 채로 보고를 하는 자리였다. 지난 캠페인의 레슨런드를 바탕으로 어떤 제언을 던지는 자리였고 언제나 그랬듯이 키노트 작성과 발표는 실무자인 내가 맡았다. 뭐랄까,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입사 이후부터 내가 늘 해왔던 일이었고 벌써 4년째 합을 맞춰온 광고주였고 비딩이 붙은 피티 자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날 노트북 비밀번호를 열지 못했다. 정말로 머리가 새하얗게 되었다. 옆에 앉아있던 차장님이 ??? 같은 표정이 되어 나를 쳐다봤고 나 역시 ??? 했다. 아마도 그 때 내 손이 떨렸던 것 같다. 나는 처음 겪는 상황에 너무 당황해서 잠시 두 손을 맞잡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하여튼 뭔가 매끄럽지 않다는 걸 눈치챈 셀장님이 광고주들과 이러저런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다른 비밀번호를 시도했지만 그 중 맞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고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팝업창이 뜰 때마다 내 머릿속은 점점 더 하얘졌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나중에는 그냥 아무 글자나 아무렇게나 눌렀다. 정말로 뭐였을지 어떤 단서나 힌트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거기서 멍하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라도 하는 시늉을 하기 위해, 하여튼 노력하고 있다는 티를 내기 위해 그냥 아무 자판이나 눌렀던 것이다. 


 와, 미쳤다. 정말 미쳤나봐. 나는 속으로 계속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나는 정말 그 이상 여유롭고 차분하고 멀쩡할 수가 없었다. 그랬을 것이다. 아무도 나한테 괜찮냐, 천천히 해라, 어떻게 해라 뭐 그런 말을 안했으니까 말이다. 안에서는 거의 가루가 되어 가고 있으면서도 나는 침착하게 일을 해결해나갔다. 평소에도 꽤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던 실무급 광고주에게 노트북을 빌릴 수 있겠냐고 물었고 그는 예상했던대로 왜 이런 일로 귀찮게 하냐는 투로 야지를 줬지만 나는 그 당시 잘하던대로 헤헤대면서 상황을 스무스하게 넘겼다. 미팅을 출발하기 전 늘 그랬듯이 광고주와 내 메일로 키노트를 보내놓은 상태였다. 나는 상황을 빠르게 수습했다. 그리고 슬라이드를 띄워서 무사히 미팅을 마쳤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미팅 초반 몇 분에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을 뿐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아무도 그 날 내 내면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때 속으로 나는 정말 와, 미쳤다 진짜. 내가 돌았나 진짜?? 지난주에 경쟁피티 티에프에 끌려가서 매일 새벽에 퇴근했는데 그거 때문에 맛이 갔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진짜 미쳤다 미쳤어 그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침착해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을 망치면 안되니까. 여기서 저 문을 열고 뛰쳐나갈 수는 없으니까. 사람들이 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아는게 정말 싫으니까. 그랬었다. 


 아마 여기서 많은 의문이 들텐데 일단 감출 수 있으니까 불안이 아니지 않냐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칠 것이다.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나만 겪는 것은 아닌듯하다. 온갖 불안을 다 겪은 것도 모자라 심지어 첫 아이가 태어나던 날 간호사들이 산고 중이던 아내가 아니라 자신을 돌봐야 했다고 쓴 스콧 스토셀도 어떤 동료로부터 (옆에 있기만 해도 차분해진다는 의미에서) '인간 자낙스'라고 불렸다는 걸 보면 말이다. 심지어 이것은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처럼 보일 정도다. 불안 장애를 겪는 이들은 겉으로는 매우 침착하고 자기 제어를 잘하는 듯 보이기 때문에 이들이 불안장애를 고백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음속에서는 극도의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욕구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욕구는 그렇다 치고 능력 부분이 정말 모든 문제의 원흉이다. 침착함을 가장하는 능력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불안을 간과하고 그저 마인드컨트롤 정도의 해법을 동원하다가 병을 키우는 일도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 하나, 불안발작이 일어나기 전 이렇게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면 그 사건의 조건을 돌이켜보건대 일종의 발표불안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렇다고 내가 발표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자리에서마다 불안해지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발표를 했고 내 커리어와 고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프리젠테이션도 계속했다. 어떤 날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어떤 날은 숨이 너무 가쁜 나머지 목소리가 떨리고 준비한 말들을 채 다 뱉지도 못하기도 했다. 또한, 규모나 경중 따위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50명이 넘게 있는 공유회 자리에서 피티를 할 땐 또 아무렇지도 않다가 광고주 책상 앞의 조그만 원탁에 앉아 셋이 이야기 하는데 난데없이 목소리가 갈라지고 떨려서 사래가 들린 척 잠깐 말을 끊었던 적이 있는 식이었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바로 그 때부터 그것이 내 불안의 정체가 되었다. 나는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불안한 게 불안했다. 내가 불안한 사람인게 불안해! 도대체 이 불안이 언제 어디서 어떤 얼굴을 하고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것 때문에 나는 계속 곤두서 있었다. 한 번은 입구가 굉장히 좁은 지하주차장을 들어가는데 숨이 턱 하고 막힐 뻔 해서 그 후로는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때마다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그 후로 주차장에서 불안이 퍼지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극장과 공연장은 그나마 긴장이 소소하게나마 계속 유지되는 쪽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관객석에만 앉으면 이 건물이 무너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정말 우스운 일이다. 이 얘기는 정말 내 주위의 누구도 믿지 못한다. 나는 학생 때는 영화관에서 살다시피했고 이러저런 영화제에서 이러저런 일을 했고 영화에 관련된 글을 쓰며 돈을 벌었고 친구들이랑도 남자친구랑도 제일 많이 한 것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영화관에 가면 죽을 것 같다니. 믿을 수 없지만 정말 그랬다. 내 불안은 정말이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친구였다. 아주 주체적으로 가지치기를 해나갔고 나는 그 방향을 좀처럼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그 뒤를 살금살금 쫓아가며 제발 들키지 않기를, 제발 뒤를 돌아보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되어갔다.  


 이것이 범불안장애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게된 건 상담과 인지행동치료를 받으면서였다. 범불안장애는 만성적으로 지나친 안절부절함,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걱정이 지속되고 주의집중이 어려우며 쉽고 피로한 증상, 수면장애 및 근육 장애와 과민한 기분상태 중 3가지 이상이 6개월 가량 지속될 경우, 개인이 이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경우 진단된다. 무엇보다도 다른 불안들이 제한된 어떤 주제나 대상이 있는 것에 비해 범불안장애는 그렇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부동 불안이라고 불린다. 불안의 주제가 생활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옮겨다니는 것으로 다른 불안장애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가끔은 나는 또 왜 하필 다양한 불안장애 중에서도 범불안장애인가를 생각한다. 발표불안, 사회불안, 고소공포불안, 대인불안 등 특정한 상황에서 야기되는 불안이라면 조금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 불안은 정말 부유하면서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가 이 얼굴이 되었다가 저 얼굴이 되어서는 나를 놀리는 것 같다. 이번에도 난리가 나겠지? 이건 괜찮겠지? 하는 내 기대와 예상을 늘 배반하며 내 뒷통수를 친다. 오, 정말 이런 녀석과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게 가능한 일일까? 



 가장 최근에 내가 불안을 감지한 것은 두 어 달 전쯤으로 스케일링을 받으러 간 치과 의자에서였다. 스케일링을 하는 김에 십년 전쯤 해둔 레진을 살짝 보수했는데 갑자기 내 얼굴을 덮은 거즈와 면포 비슷한 재질의 무언가가 굉장히 또렷하게 인식되면서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 그런데 이건 숨 쉬는게 좀 불편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동시에 숨 쉬는게 불편해진 느낌이 들었다. 호흡이 짧아지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나면서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다. 이러다가 내가 정말 여기서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걸까 조바심이 나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가 되어 축축해진 손바닥을 서로 비비며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를 속으로 주문처럼 반복하며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제일 자주 소환하는 것은 좀 비겁하지만 바당이의 얼굴이다. 괜찮다. 나는 어른이다(조금 웃기지만 이 생각도 꼭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별의 별 생각을 다 해보지만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가끔씩 통할 때도 있다.) 이러다가 또 심장마비에 걸리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최종 트리거는 언제나 호흡수와 심박수다. 나는 한동안 숨이 조금만 가빠져도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달려서 운동하는 것도 두려워 했다.) 가만히 잘 누워있던 사람이 뭔가 불편해보였는지 선생님이 괜찮냐고 물어보시길래 하하, 잠시만요. 가글 한 번만 해도 될까요? 물었다. 다행히 가능한 상황이었는지 선생님이 의자를 세워주셔서 나는 잠시 숨을 편하게 쉴 수 있는 상태가 되어 가글을 두어 번 하고 심호흡을 여러 번 했다. 제가 사실 불안장애가 있어서요. 어, 있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있었는데요. 지금은 병원은 안 다니는데요. 가끔 좀 힘들 때가 있어서요. 

 나는 비교적 의료인들한테는 이런 말을 잘 한다. 경험 상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감정의 동요를 좀 보이는데 의료인들은 별 말 없이 아, 그러시군요. 시간을 좀 가지시죠. 정도가 전부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가글과 심호흡을 몇 차례 반복한 후 나는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 했고 아까보다 훨씬 나아진 상태로 끝까지 마쳤다. 선생님은 이러저런 설명을 해주신 다음, 원래 치과 진료가 힘들다고, 뭘 하든 너무 소리가 큰 데다가 입 안에서 울리니 더 예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어떤 분은 3M 귀마개 같은 걸 가지고 오시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적절한 다정함이었다. 나는 조금 따뜻한 마음이 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진료실을 빠져나오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곧장 내가 가입되어 있는 불안장애 환우 카페로 들어가 불안장애 치과치료 불안장애 치과 치과 공황 등을 검색하며 나와 있는 모든 글들을 삽시간에 훑었다. 이제부터 치과에 올 때면 귀마개를 가져와야 할까? 또 그러면 어떡하지? 오늘은 선생님이 먼저 물어줬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내가 말하는 게 불편할테니까 무슨 신호같은 걸 만들어야 하나? 손을 들라고 하는데 내가 손을 들 수 있는 상황이 될까? 그럼 일단 귀마개를 손에 들고 있다가 심해지면 간호사 선생님께 끼워달라고 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이번에 내 불안은 치과를 택한 것 같다. 아닌가, 귀마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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