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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불안한 게 불안한 사람>을 연재하고 있는 박한아입니다. 오늘 쓸 글은 사실 10회 차 연재를 기획하던 초안에는 없던 꼭지인데요. 지난 일주일동안 연재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으로 경험담을 나눠주시는 걸 보면서 전격(!)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어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내밀한 경험을 나눠주신 점,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6년 전 범불안장애진단을 받았고 진단 후 10개월 정도는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 상담치료를 병행했고 이후 8개월 정도 약물치료 없이 상담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주기적인 내원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일상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가끔씩 어떤 상황이 트리거가 되어 불안발작으로 흐르려는 때가 있어요. 지난 화에서 이야기한 치과에서처럼요. 하지만 진단을 받던 시기에 비하면 횟수나 빈도, 규모 등이 굉장히 많이 좋아졌고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어느 정도는 알게된 듯합니다. 물론 그게 늘 통하진 않고 잘 안 되서 울고불고 싶을 때도 있고요. 안 좋은 날들이 지속되면 정말로 또 이 시기를 통과해나갈 수 있을지, 괜찮아지는 날들이 다시 올 지 초조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단과 치료를 통해 제가 불안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이를 다룰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으려는 훈련을 했던 것이 매우 유용했어요. 그래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실만한 게 있을까 싶어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제가 유경험자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지 마시고 그 결과로 스스로 병명을 정하거나 미루어 짐작하여 본인의 증세에 선입견을 가지지 마시고 전문가를 찾아가 증상과 구체적인 상황 위주로 상세하게 전술하신 다음 전문가에게 공인받은 검사와 진료를 받은 후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1. 상담치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역시 상담치료였습니다. 저는 인지행동치료에 기반을 둔 상담치료를 받았는데 이는 상담사마다 혹은 치료자의 구체적인 병증마다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지행동치료는 기본적으로 인지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증상을 치료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주관적, 의식적 경험을 중시하며 내담자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저는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다양한 생활사건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촉발되는 부정적 심상, 생각을 인지하고 이것이 인지상의 오류라는 것을 곧장 떠올리는 (그러니까 나는 심장마비가 아니다! 그냥 지금 호흡이 빨라지고 땀이 날 뿐이다! 이걸 심장마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인지적 오류다!!!) 훈련을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과제를 했어요. 불안한 감정이 들 때마다 이를 기록하는 워크시트나 아웃도어 활동이 포함된 주간계획표 같은 것도 썼었고 선생님과 함께 부적응적 사고나 감정에 대항할 수 있는 적응적 사고와 그 내용을 쓴 작은 카드 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부정적 심상이 떠오를 때, 이를 떨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함이었고 이것들은 모두 상당히 도움이 됐습니다.
상담센터를 찾을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해당 상담사가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공신력 있는 자격증 발급처로는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임상심리학회가 있습니다. 두 학회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시면 자격증을 발급받은 상담사들의 목록과 상담기관명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병원에서의 수련을 통해 임상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상담사를 만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상담사마다 전문으로 하는 분야가 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여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상담치료는 비용이 가장 큰 장벽인데요. 그럴 때는 우선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를 방문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센터마다 차이는 있지만 1회기에 5천원-3만원 수준의 비용으로 상담을 진행해볼 수 있습니다. (*검사비는 별도로 청구됩니다.) 자대 대학원에서 수련중인 석, 박사 선생님들께서 상담사로 참여하십니다.
2. 퇴사
치료 외적으로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역시 퇴사였습니다. 회사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저의 경우 업무긴장도가 높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고 업무의 특성 상 매일이 예측이 힘들었으며 (그런 일들이 여럿이겠지만) 정말로 작은 실수라도 용납이 되지 않는 업무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안장애를 치료하면서 계속 회사생활을 하는 게 굉장히 버겁게 느껴졌어요. 게다가 저는 제 자신에게 비합리적인 요구와 기대를 하고 그것을 심지어 또 충족시켜버리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그러니까 항상 제 목표는 100이었고 저는 언제나 이걸 당연하게 해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저 자신을 갈아넣어서 120을 해내는 상황이 늘 반복됐었어요.) 이것이 제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상당한 방해가 된다는 판단을 하게됐습니다. 그럼에도 치료를 받으면서 1년 정도는 더 회사를 다녔고 병가 끝에 퇴사했습니다. 버틸까, 그만둘까라는 선택지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좀 더 일상과 일 사이의 균형을 추구할 수 있고, 저에게 조금 더 많은 선택권이 있는 일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전직을 염두에 두고 퇴사했습니다. 퇴사후에는 당연하게도 제가 제 일상의 주도권을 전적으로 가질 수 있었고 제 컨트롤 바깥에 있는 상황이 줄다보니 단기간에 불안을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안을 자꾸만 자극하는 외적 상황이 있다면 그걸 일시적으로라도 배제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저의 경우에는 그것이 퇴사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독립, 이사, 전학, 이직, 휴직 등이 될 수 있을거에요.
3. 카페인과 알콜과의 결별
분명한 자극이 발견되는 경우, 이 역시 무조건 피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카페인 알러지 쇼크일 확률을 아직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선후관계를 확실히 할 수 없다는 것이 다양한 전공 선생님들의 소견입니다. 아나필락시스를 겪은 것인지(하지만 이후에는 카페인을 섭취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까지 심각한 정도의 발작을 겪은 적이 없었어요. 물론 미식거림, 현기증, 두통, 식은땀, 심박수 증가, 떨림 등이 나타나긴 합니다.) 아니면 불안장애가 있는데 카페인이 ignition 역할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후관계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어쨌든 카페인에 민감성을 보인다는 것은 확실해졌기 때문에 바로 카페인을 끊었어요. 커피는 물론이고 홍차 종류도 전혀 마시지 않았습니다. 정말 한 방울도 안 마신 것이 4년 정도 됩니다. 이후로는 증세가 호전되면서 디카페인 커피도 시도해보고 홍차같은 경우는 연하게 마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저는 숨이 조금만 가빠져도 곧장 패닉에 빠지고 이를 곧장 죽음의 전조로 해석하는 자동적 사고가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호흡이 가빠지는 상황을 피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술을 끊었고요. 지금은 그런 증상은 많이 좋아져서 와인도 잘 마십니다! 다만 절대 많이 마시지 않으려고 해요. 예전에는 제가 이러저런 이유로 술이 그렇게 세지 않았음에도 술을 꽤 마셨습니다. 회사 분위기 상 소맥이 기본이기도 했고 회사 뿐 아니라 빨리 먹고 빨리 취하자는 분위기의 술자리들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와인 한 병 정도를 마시고 있어요. 다만 커피는 아마도 계속해서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운동
운동과 정신건강의 관계는 명확해지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함께 한 사람은 운동을 안 한 사람보다 우울증 발생 확률은 98%, 불안장애 발생은 60%나 낮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고요. 선생님도 항상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셨어요. 저는 산책을 많이 했고 임신 중과 임신 직후에는 요가를 꾸준히 그리고 무척 열심히 했습니다. 루틴을 유지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운동이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불안이 피어오를 때 분위기 환기를 위해 장소를 바꾸고 조금 빠르게 걷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제가 올해 초에 나름대로 타바타라는 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격렬한(!) 운동을 시작한 것도 관련이 있는데요. 작년에 불안과 관련된 아티클을 하나 봤었는데 거기에서 어떤 논문을 인용했더라구요.(제가 어딘가 북마크를 분명히 해놨을텐데 나중에라도 다시 찾게되면 출처를 꼭 적어두겠습니다.)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심박수의 증가나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곧장 불안이나 파멸, 죽음 등으로 연관짓는 흐름을 없애기 위해 운동을 하라는 것이었어요. 운동을 하면 똑같이 심박수가 늘고 호흡이 가빠지는데 이 경험이 반복되면 뇌가 이 흐름과 연결고리에 더욱 익숙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같은 신체증상이 나타나도 뇌가 불안과 연결짓지 못하도록 헷갈리게 하는 것이죠. 약간 노출치료 같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격렬한 운동을 하고 숨을 헐떡이게 될 때마다 조금 무서웠는데 다행히 반복하면서 조금씩 무뎌졌고 덕분에 숨이 가빠지거나 호흡이 불안정한 것에 대해 훨씬 덜 두려워하게 됐습니다.
5. 몇 가지 주문
불안이 번져갈 때 제가 외우고 끄적이고 되뇌어보는 몇 가지 말이 있습니다. 우선 괜찮다, 괜찮다, 괜찮을거야, 지나갈거야를 반복하는 편이에요. 심호흡을 하면서 계속 반복합니다. 저는 심호흡할 때 너무 호흡 자체에 집중하면 더 초조해지고 뭔가를 떠올리지 않는 상태가 더 불안하게 느껴지곤 해서 저한테 말을 거는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몇 가지 잠언처럼 이 곳 저 곳에 적어두고 가지고 다니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소용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계속 모아두고 적고 되뇌어보곤 합니다. 제가 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말들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이전의 비슷한 상황에서 이 말들이 힘을 발휘했었음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음을, 괜찮았음을 상기하려고 합니다.
"It doesn't make sense because it doesn't make sense!"(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의 한 문장.) ,"Life has a gap in it. It just does. You don't go crazy trying to fill it."(영화 Take a waltz의 주인공 누나의 대사), "나는 나이고 나는 괜찮다."(SNS에서 어떤 분의 바이오에서 보고 옮겨둔 문장.)
저는 이렇게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질 수도, 조금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일단 그 때 생각은 그 때 하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