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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Oct 23. 2021

불안을 모르던 나날들

leave the past where it belongs

 나는 경쟁심이나 질투라는 감정을 거의 느껴본 적이 없다. 내가 대단히 쿨한사람이라거나 대인배라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고 전해지는 걸로 봐서는 그저 타고난 성향이거나 기질에 가까운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타인에 무심하다. 대체로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는다. 물론 가까운 친구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들을 제외한 타인의 삶은 아예 입력이  안되는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성취의 기준이나 목표를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설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 것 같다. 피아노를  때도 그랬고 공부를  때도 그랬다. 레슨 선생님도, 3 담임도 은근히 나에게 경쟁자나 친구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걔는 이번에 어떻다더라, 뭐뭐했다던데,  점을 받았다던데, 하면서 나를 자극하려고 했지만 나는 거기서 ', 그렇구나.' '이번에 뫄뫄가 어떤 곡을 마스터했구나!' '솨솨는 수리영역을 하나 틀렸구나!'라는 정보값만을 얻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가끔 내가 갖지 못한 어떤 것들을 가지고 누리며 살아가는 이를 보며 막연하게 '좋겠다', '부럽다'라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냥 그게 전부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주기적으로 떠올리며 내가  사람이라면 어떨까를 그려보고 렇게 살고 싶다고 바라는 대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불안장애 진단 이전의 , 불안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지 인간에게 그런 상태가 존재한다는  자체도 몰랐던 어리고 젊은 시절의 나다. ,   나는 정말 얼마나 순진무구했던가! 다시는 그런 표정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때마다  마음은 복잡해진다. 아마도  상태로  살았다면 나는 5화에 썼던 '불안을 모르는 사람들' 살았을 것이다. https://brunch.co.kr/@readsnwrites/37 높은 확률로 불안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결국 마음 먹기에 달린  아닌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나 스무살 이전의 나를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불안장애 환자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면 아마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도 내향적이었지만 강단있고 담대한 애였다. 어렸을 땐 피아노를 해서 적어도 1년에 한 두번은 콩쿠르를 나갔지만 나는 거의 긴장하지 않았다. 콩쿠르 연주장들이 다 추운 편이라 손이 얼까봐 그것만 걱정했었다. 주목받는 자리에 선다고 부담을 느끼는 타입도 아니었다. 나는 거의 언제나 무대에서 사람들 앞에서 실수없이, 원래 하던대로 해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거의 의식하지도 않았고 타인은 더구나 그랬던 것 같다. 어려서 뭘 몰라서 그랬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친구들 중에는 늘 큰 일을 앞두고 떨려하고 초조해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앞에 나가 발표를 하는 것만으로도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빨개지던 친구들. 나는 그게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고 그냥 살면서 어떤 그룹에서 발표를 하게 된다면 그건 그냥 내가 하는 것인, 그런 애였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그랬던 내가 어쩌다가 사람이 단 7명 뿐인 행사장에서 기본적인 안내사항을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숨이 모자라서 사래가 들린척 해가며 시간을 벌고 오후 3시 미팅이라고 하면 삼십분 전부터 안절부절을 못하면서 다른 일을 시작하지도 끝내지도 못한 채로 시계 바늘과 함께 미팅을 들어갈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우는 사람이 된걸까? 나는 그 질문을 여러번 했었다. 선생님, 그런데 저는 정말로 제가 생각하기에도 대담한 사람이거든요. 제가 말씀드렸었죠, 저 어렸을 때 빈혈이 있었는데 그러면 주기적으로 피를 뽑잖아요. 제가 그걸 여섯살 때부터 했는데 제가 피 뽑을 때 한 번도 안 운 건 물론이고 제 팔에서 피 뽑는걸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표정없는 얼굴로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고 하거든요. 한 마디로 저는 좀 보통 애가 아니었던거죠. 그게 어렸을 때만 그런 게 아니에요. 선생님. 저는 발표왕이었다니까요. 제가 하는 일도 그런 일이에요. 전 피티 잘해서 회사에 붙었고 팀장님도 본부장님도 광고주들도 제 피티를 좋아해요. 깔끔하고 재미있고 목소리도 좋고 여유도 있다고요. 그런 사람으로 삼십년을 살았는데 제가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사람이 달라질 수가 있나요?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조금씩 다른 에피소드들로 나는 늘 의문을 표했다. 내 입장에서야 너무나 논리적인 질문이었지만 선생님 입장에서는 전형적인 내담자의 거부나 회피 반응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후자가 맞겠지. 그냥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 그럴 수도 있다는 거, 설사 거기에 어떤 인과율이 숨어있더라도 그걸 알 수 있는 건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사실 지금도 그냥 외우다시피 해서 쓰고 있는 거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문장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삶이, 세상이 그런 원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 같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직까지도 세상과 불화를 겪는 거겠지?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 내가 불안을 알게 됐다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런 것이다. 내 불안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고 내 불안을 그래도 꽤 능숙하게 처리하는 편이지만 이게 어쨌든 불치라는 점이 가끔 좀...억울하달까. 이런 관리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을 필요 없이, 그냥 보통의 삶을 살던 어린 나와 불안이라는 것을 계속 의식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걸 멈출 수가 없다. 불안은 정말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나는 정말로 새로운 것을 좀처럼 시도하지 않게 됐고 안전지향적이 됐고 내 삶의 우선순위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내 불안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되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게 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이것이 내게 불필요한 자극이 되는 것은 아닐까이다. 나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 내 목구멍과 심장과 위장과 손 끝을 예민하게 만들 무언가들을 말이다. 그것이 아무리 멋지고 새롭고 원대한 세계라 해도. 나에게는 내가 평상시와 같은 심박수를 유지하며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끝맺을 수 있고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까 나의 세상은 그런 식으로 비좁아져갔다. 그런 선택들을 해오면서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상상하고 견주어보는 것이다. 불안을 모르던 어린 나의 가상 앞날 그리기랄까. 그 때 내가 그대로 커서 서른이 되었다면,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아이를 낳았다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나는 늘 그걸 상상한다. 거침없고, 근사하고, 매끈한 사람이 늘 그쪽에 있다. 나는 이 쪽에 서서 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그 상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걸 따져묻는 것은 애초에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진짜든 가짜든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내 인생에 득 될 게 하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걸 멈춰야 한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가끔 그렇게 되어버리고 만다. 특히나 여러가지로 불안정한 여름-가을이 되면 생생하게 구체적으로 그런 상상들을 하게 되는데 그럴때면 지금의 나는 자동적으로 별로인 사람, 형편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또, 그건 마음에 걸려서 급히 지금의 나를 건져올려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거의 자동적으로 이런 생각이 딸려온다. 아, 난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그러니까 이전의 나야말로 원래의 나고 지금의 나는 잠깐 잘못된 나인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지금의 나를 이렇게 평가한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이런 것이 열등감일까?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는 가상의 존재를 상대로 그런 말도 안되는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언젠가는 이런 상상을 멈추게 될까?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상상이 잘못된 것인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 상상은 의미없다고,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꼭 불안한 사람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글쎄, 근데 꼭 그 반대일 이유도 없지 않은가? 삶을 단 하나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불안한 사람보다 삶의 질이 훨씬 높을 것 같다. 기저질환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닌가? 정신병리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내 삶 전반에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불안의 기운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야 하는 삶은 여러가지로 꽤 괜찮은 삶일 것 같다. 예전에 내가 그런 삶을 살아봤기 때문에 나는 안다. 그게 꽤 산뜻한 기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 때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나의 상상 속 경쟁 레이스는 단기간에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평생을 이렇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불안하지 않은 내가 마흔이 됐다면 어땠을까? 육십이 되면 어땠을까? 오...세상에. 막상 해보니 조금 끔찍하군. 그 전까지는 반드시 이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불안과 함께하게 된 세월보다 불안 없이 산 세월이 아직까진 훨씬 길다보니 아직까지 긴 낯가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순진한 생각도 해본다. 나는 원래 낯을 좀 오래 가리고 가까워지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 사람이니까...정말 말도 안되는 순진무구한 생각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불안과 함께하는 삶이란.


 과거와 미래를 엉망으로 가로지르며 괴로워하는 나에게 사랑하는 친구 D가 해준 말을 가끔 곱씹어본다. 과거는 과거에만 존재하는 거라는 말. 가상세계처럼, 지금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아무런 실체가 없는것이라는 말. 상태가 안 좋아지면 마치 그 존재하지 않는 것에 휘둘리게 되는 것 같다고. 그러니까 과거 생각을 많이 하게 될 때면 그냥 지금 내가 별로 좋지 않은 상태구나, 그렇게 알아차리고 그 시간을 버티는 게 힘들다고, 이렇게 내가 무너지고 있다고, 그냥 서로에게 얘기하자고. 그러면 되는 것 같다는 말. 아마도 그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그 날 저녁밥으로 무엇을 먹을지 길게 얘기했었다. 너무 멀리, 과거든 미래든 너무 멀리로 가버리지 말자고. 지금, 그리고 잠시 후, 오늘 밤. 내일 아침. 그 때 무얼 할 건지 정해보자고. 그런 건 확실히 도움이 된다. 이 쪽이 현실이야, 라고 나를 붙잡아두는 것들에 대해 떠올리면서 두 발을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 단단히 디뎌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 마련하는 다이어리나 노트 한 켠에 적어두는 문장이다. 좋았던 것이든 나빴던 것이든, 그냥 그렇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되기를. Giovanni Allevi의 go with the flow를 들으면서 나는 지금도 그 문장을 떠올려보는 중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t8ypwvk7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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