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심은 아버지의 성품이다.

by biblep

"더 나은 선택은 없을까. 이것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


나는 질문들 앞에서 다시 멈춰 섰다. 언제나 걸음을 주춤하게 만드는 생각들이다. 기도하며 고민 끝에 선택을 내렸다가도, 일말의 부족함이 떠오르는 날에는 여지없는 나의 한계에 괴로워한다.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포개어지길 갈망하는 소원은, 언제나 서글프기만 하다. 좀처럼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평생 닿을 수 없는 신기루를 좇고 있는 것인가. 아스라이 멀어진 소원 때문에 난 또 슬퍼지려던 참이었다. 그때 따뜻하고도 너그러운 음성이 세미하게 마음 안에 머물렀다. "오직 사랑일 때만 선택해 보렴" 염려나 걱정이 주된 동기라면, 옳게 보이는 것이라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사랑과 신뢰가 주된 동기라면, 실패해도 괜찮으니 무엇이든 선택하는 기쁨을 멈추지 말라는 말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인가. 때로는 염려와 걱정이 더 나은 선택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나를 신중하게 만들고, 사람과 상황을 세심하게 배려하도록 이끌기도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게 하고 성찰하도록 한다. 그런데도, 내가 들은 음성은 명확했다. "사랑으로 벅차오를 때만 선택하고, 그 외에는 멈춰서 있어도 괜찮아." 그러다가 중요한 선택을 놓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가? 멈춰서 기다리는 일이 방종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시는가? 아니,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사랑으로 벅차오르는 내 마음 자체가 불완전하지 않은가. 순간의 감정에 속아 잘못된 선택을 했다가 대가를 치르느라 얻게 되는 상실과 수치, 그리고 무력감을 어떻게 책임지실 참인가? 질문들이 분주하고 정신없이 마음 벽에 부딪쳤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분의 대답 앞에서 나는 이내 마음을 놓기로 했다. "그것을 감당해 내는 것이 나의 전능함이 아니겠니. 너를 기다리고, 네가 내린 부족한 선택을 수습하고, 배후의 모든 상황을 감당해 내는 것이 바로 나의 역할이란다. 나는 네 아버지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창조주 하나님을 떠올린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살리신다. 그분은 뜻하신 즉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선하시다. 그분의 뜻과 원함은 선하시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자녀. 나는 생각만해도 벅차오르는 그분의 자녀라는 권세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그분과 닮아있는,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분과 하나로 포개어지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상상했다. 생각만 해도 기특하고 든든하고 벗과 같이 위로가 되는 자녀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청할 때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일인가 깊이 성찰하는 일로 여념이 없었다. 나의 미숙함과 불완전함이 엉뚱한 무언가를 바랄까 봐 늘 걱정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달라고 기도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시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놓였다. 나에 대한 강력한 부정과 불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편협한 이해가 만들어 낸 결과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설령 내가 원하는 것을 주셨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모리아 시험 제단 위에 오르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에게 유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거나, 자칫 우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경계했다. 하나님은 당장 달콤한 사탕을 주시기 보다는, 나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선하신 계획 안에서 기다림과 역경, 혹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더 깊고 완전한 그분의 자녀로 빚으신다고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이토록 기특한 생각이 일궈낸 결론은 언제나 동력을 잃은 채 슬퍼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내가 들은 이 음성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더 깊은 차원의 무엇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성품이었다. 그분은 내가 그분의 마음을 완벽하게 복제해 항상 옳은 것만을 구하길 원하지 않으신다. 다만 기쁨으로 그분께 의지하며 그분을 배우길 원하신다. 선택해야 할 때 멈춰 있어도, 좀 덜 나은 선택지를 골랐더라도, 그것을 선한 방향으로 옮기시고 만들어가실 능력이 그분에겐 충분하다. 그것이 그분의 전능하심이다. 전능하심은 창조주의 존귀하고 위엄있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사실 더 많은 순간 그것은 그의 어린 자녀를 위해 잦은 사고를 수습하는 일에 사용되는 사랑어린 부성애와 책임감이다. 하나님은 비약적으로 나를 개조하시려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과 내가 맺은 영원한 아버지와 자녀라는 관계 안에서 일하신다. 아버지의 기쁨은 자녀의 완전함이 아니라, 자녀가 아비의 품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조금씩 자라나는 과정을 맛보는 일이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과정을 충분히 커버하실 능력이 있고, 그저 자신에게 의지할 것을 원하신다. 안정감 안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이따금 만나는 시행착오를 함께 겪길 원하신다. 그분은 그런 분이시다. 하나님은 최악을 피하는 방식이 아닌, 언제나 가장 지극히 선한 것을 생각하고 선택하신다. 그분은 고민 없이 언제나 사랑을 선택하신다. 그분의 선택이 곧 선이고 사랑이기도 하다. 그분의 자녀는 이것을 배워야 한다. 종의 마음으로는 내 마음이 어디까지 하나님과 포개어지는 지 확인할 수가 없다. 그분이 내 마음을 얼마나 놀랍게 변화시키셨는지 끝내 알 길이 없다. 자녀와 같이 선택해 봐야 안다. 사랑으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감각을 익혀야 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아버지의 성품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최악을 피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최선을 향해 기쁨으로 달려가는 아버지의 능력이다. 그분의 전능하심은, 우리가 그 능력을 배우도록 자신을 넓혀 마련하신 터와 같다. 그러니 사랑일 때, 자유롭게 그 선택을 향해 달려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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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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