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는 단순한 한식 메뉴가 아니다. 제사와 잔치의 제의(祭儀)의 고기로 시작해, 식민지 시대의 산업화를 거쳐, 도시의 감각적 미식으로 진화한 한국 근대사의 축소판이다. 『근대 이후 한국인의 식생활 변천 연구』에 따르면 1896년 독립신문부터 1995년까지 100년간의 신문 광고를 분석한 결과, 한국 식생활의 근대화는 식재료나 조리방식의 변화만이 아니라 **“인식의 변화”**였다고 지적한다. 즉 한식의 근대화는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생활문화와 인식의 전환이었다brunch.co.kr.
이 연구는 근대적 식생활의 특징으로 우유, 맥주, 밀가루 음식(빵과 국수, 라면 등)의 등장을 꼽는다db.mkstudy.com. 이는 전통적으로 채소와 곡물 위주였던 한국인의 식단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결국 근대의 식탁은 서양 식품과 조리법의 유입뿐 아니라, 음식에 대한 태도의 변혁이었다.
이제 우리는 불고기라는 하나의 요리를 통해, 신에게 바치는 고기가 어떻게 시민의 일상 음식이 되었는가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불고기의 변천사는 곧 한국인의 식생활 근대화의 궤적이며, 제의(祭儀)의 고기가 권력의 상징을 거쳐 감각의 미학으로 재탄생한 이야기이다.
19세기 화가 성협의 그림 ‘야연(野宴)’ 속 장면. 양반들이 야외에서 쇠고기를 숯불에 굽는 모습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소고기가 제사나 잔치에 쓰이는 귀한 음식이었음을 보여준다love.seoul.go.kr.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고기는 제물(祭物)**에 가까웠다. 특히 쇠고기는 신에게 바치는 제사상의 주요 품목으로 쓰였고, 일반 백성은 함부로 소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국가에서는 농경에 꼭 필요한 소를 보호하기 위해 우금령 (소 도살 금지령)을 반포하고 관청까지 두어 엄격히 도축을 단속했다love.seoul.go.krbrunch.co.kr. 민중 사이에서는 “흰 쌀밥에 고깃국 한 그릇”이 평생 소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고기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꿈의 음식이었다love.seoul.go.kr. 이처럼 조선 시대의 사회 질서에서 고기는 신성한 제의의 영역에 속했고, 특별한 잔치나 제사를 제외하면 평범한 사람들의 밥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의적 질서는 개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급격히 해체된다. 19세기 말 개항 이후 서구 문화와 식재료가 유입되고, 일본 식민정부가 한반도의 경제를 재편하면서 고기의 생산과 소비 구조에도 변화가 찾아왔다brunch.co.kr. 『근대 이후 한국인의 식생활 변천 연구』는 개항기~일제강점기를 **“식생활 근대화의 기점”**으로 규정하며, 이 시기 신문 자료에 나타난 변화를 여러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전통적 도축 방식이 일본식 근대 도축 제도로 전환되었다. 구한말까지 도시에는 소를 매달아 잡는 전통 도축업자(일명 현방)들이 있었는데, 1900년대 초 식민 당국은 서울에 현대식 도축장을 세워 기존의 24개 현방을 5개의 공설 도축장으로 정비하였다brunch.co.kr. 1917년경 이미 서울의 도축 체계가 근대적 시설로 자리잡았고, 도축량도 체계적으로 집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로 고기는 이전처럼 몰래 잡아 일부만 소비되는 은밀한 제물이 아니라, 공장에서 위생적으로 대량 처리되는 상품이 되었다.
둘째, 냉장 유통과 육가공 기술이 도입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교통과 저장시설이 발달하지 않아 지역 밖으로 육류를 운송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1920년대에 이르러 도축 시설에 전기 도살 장비가 도입되고, 일부 도시에서는 얼음을 활용한 냉장 보관이 시도되었다brunch.co.krbrunch.co.kr. 당시 기록에 따르면 냉장·냉동 시설이 부족해 여름철에는 돼지고기 소비가 급감할 정도였으나, 점차 시설 개선으로 육류 부패 위험을 낮추려는 노력이 진행되었다brunch.co.kr. 이러한 신기술의 유입은 고기를 저장하고 유통하는 방식을 바꾸어, 고기가 보다 널리 공급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셋째, 식민지 시기 신문 광고에는 서양식 식재료와 조미료들이 대거 등장했다. 우유·연유, 버터·치즈 같은 유제품부터 맥주, 청량음료, 심지어 카레까지 새로운 식품 광고가 지면을 채웠다db.mkstudy.com. *“조선에는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드물었던 유제품이 점차 알려지고, 화학 조미료(일본의 아지노모토 등)가 소개되면서 맛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일어났다. 고기에 양념을 하고 재워 먹는 문화도 이 시기에 확산되었는데, 이는 고기의 누린내를 잡고 맛을 돋우기 위한 현대적 조리감각의 출현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고기의 세속화, 즉 상품화였다. 이전까지 신성시되던 쇠고기는 이제 시장에서 가격표가 매겨져 거래되는 일반 식품이 되었다brunch.co.kr. 일제강점기 경성부(서울)의 사례를 보면, 1920년대 경성 시민들은 1인당 연간 14kg 이상의 쇠고기를 소비했는데, 이는 2010년대의 한국인 평균 소비량보다도 많을 정도로 도시민의 육식 소비가 크게 늘었음을 보여준다brunch.co.kr. 당시 경성의 인구 약 30만 명 중 4분의 1가량은 일본인이었지만, 조선인들도 경제 여건이 되는 한 쇠고기를 적극적으로 소비했다는 분석이 있다brunch.co.kr. 이처럼 고기는 더 이상 제사상의 전유물이 아닌 근대 도시민의 식탁 위 상품으로 급속히 변모했다.
그 과정에서 불고기라는 새로운 조리 형태가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 말기와 식민지 시기 신문 기사나 광고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양념한 쇠고기 숯불구이”, “석쇠 불고기” 등이 외식 메뉴로 소개되고 있다brunch.co.kr. 이전까지 소고기 구이는 주로 간장양념을 발라 굽는 너비아니 형태(궁중 및 양반가 음식)로만 존재했는데, 식민지 시기에는 양념에 재운 쇠고기를 숯불에 구워내는 대중적 조리법이 평양과 경성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평양 불고기는 당시 유명한 향토 음식으로, 얇게 저민 쇠고기를 양념장에 찍어 먹는 독특한 방식으로 인기였다. 평양 모란봉 일대에 불고기 파는 숯불연기가 그치지 않아 총독부가 연기 단속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brunch.co.kr. 이러한 사례들은 제사의 고기가 시장과 음식점으로 내려온 결정적 순간을 보여준다. 불고기는 이 시기에 비로소 신성한 제물에서 누구나 돈만 내면 먹을 수 있는 근대적 요리로 첫 발을 내딛었다. 신의 고기가 인간의 식탁으로 **“하강”**한 최초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광복 후 혼란기를 지나 1960~70년대에 이르면, 불고기는 다시 한 번 사회적 정체성이 재규정된다. 근대의 문턱을 넘은 불고기가 이제 산업화 시대를 맞아 보편적 대중 음식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근대 이후 한국인의 식생활 변천 연구』에서는 이 시기를 “한식의 재조정기”, 즉 전통의 복원과 근대적 소비문화의 결합기로 설명한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한식 조리법과 양념은 유지되었지만, 그것이 소비되는 공간과 맥락은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의미다.
실제로 1960~70년대의 불고기는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었다. 조리법만 보면 조선 시대 궁중 음식 너비아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얇게 썬 한우 등에 간장, 설탕, 파, 마늘, 배즙 등을 넣고 양념에 재웠다가 숯불이나 번철에 구워 먹는 방식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 섭취 양상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불고기는 더 이상 제사상이나 잔칫상의 엄숙한 음식이 아니라, 식당이나 회식 자리에 오르는 통속적인 메뉴가 되었다.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가 어울리는 회식 자리, 가족들이 특별한 날 외식하는 음식점 메뉴로 불고기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양념 맛이 강하고 모두 둘러앉아 숯불을 중심으로 함께 구워 먹는 불고기는 공동체적 식사에 안성맞춤이었고, 자연스레 단체 모임에서 선호되는 음식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변화 뒤에는 산업화 시대의 경제·정책적 배경이 놓여 있다.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착수하며 농축산업 진흥 정책을 펼쳤다. 특히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소 한 마리 키우기” 운동과 함께 한우 개량 사업, 근대적 도축장 건설, 축산 장려 정책이 적극 추진되었다farminsight.net. 정부는 품종 개량을 위해 외국 종우(種牛)를 도입하고, 농가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통해 가축 사육을 장려했다farminsight.net. 그 결과 1970년대 후반부터 한우 사육 두수가 크게 증가하고, 도축장 시설도 현대화되어 육류의 위생과 공급량이 개선되었다. 국민소득의 향상과 도시화에 힘입어 육류 소비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쇠고기는 더 이상 일부 특권계층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farminsight.net.
불고기의 대중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가속화되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불고기는 “서울 사람들에게 가장 각별한 음식”으로, 웬만한 집은 졸업식이나 잔칫날에나 가끔 먹을 수 있는 별식이었다고 한다love.seoul.go.kr. 당시엔 시내 중심가(종로, 을지로, 명동 등)에 유명 불고기집들이 몰려 있었고, 가정에서는 쉽게 해먹기 어려운 값비싼 음식이었다love.seoul.go.kr.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 불고기의 상업화와 대중화가 크게 진행된다love.seoul.go.kr. 한 가지 촉매는 기술의 발전이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전기로 작동하는 **기계식 육절기(고기 슬라이서)**가 외식업소에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살짝 얼린 고기를 얇게 저며 대량으로 써는 이 기계의 등장으로 불고기 조리에는 혁신이 일어났다bizhankook.com. 얇게 썬 고기는 빠르게 양념이 배고 금세 익으므로 회전율이 높아져 식당 입장에서는 이득이고, 손님 입장에서는 굳이 값비싼 등심 부위가 아니라 저렴한 부위로도 충분히 부드러운 불고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bizhankook.com. **“고기의 민주화”**가 기술을 통해 실현된 셈이다. 얇은 불고기 감은 질긴 부위도 부드럽게 만들어주어, 고기의 대중화를 한층 촉진했다. 실제로 한 불고기 전문점의 회고에 따르면 1960년대만 해도 숯불 석쇠구이와 국물불고기(번철 불고기)가 병존했으나, 70년대 이후 얇게 저민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먹는 서울식 불고기가 주류를 이루고, 불고기 전문점도 우후죽순 늘어났다고 한다bizhankook.combizhankook.com.
이 시기 불고기는 특별식에서 일상식으로 옮겨간 대표 사례였다. 월급쟁이 직장인들은 월급 날이면 삼삼오오 불고기집에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였고, 중산층 가정에서는 외식으로 종종 불고기집을 찾게 되었다. *“아버지가 한턱내는 날엔 불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는 19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의 증언은, 불고기가 가정 경제 수준을 가늠케 하는 소비 문화의 지표였음을 보여준다love.seoul.go.kr. 1980년대에 이르러 생활 수준이 더 나아지자 일부는 불고기보다 값비싼 갈비를 찾기도 했지만, 그만큼 불고기가 흔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love.seoul.go.kr. 즉 불고기의 일상화는 곧 고기의 권력화가 종말을 고하고, 식탁의 평등화가 이루어졌음을 상징했다. 소고기는 더 이상 제사상이나 권부(權府)의 상징물이 아니었다. 직장 상사에서부터 말단 사원까지, 가장에서 주부와 아이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둘러앉아 구워 먹는 국민 음식이 된 것이다.
불고기를 둘러싼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의 구조 변동과 정확히 겹쳐진다. 전통 사회의 제의 공동체가 산업화 시기의 직장 공동체로, 다시 현대의 식탁 공동체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불고기는 늘 중심에 있었다. 옛날엔 일가친척이 제사 음식을 나누었다면, 이제는 동료들이 불고기 불판을 사이에 두고 고기를 나누어 먹는다. 1970~80년대 불고기의 대중화는 단순한 경제적 사건이 아니라, *“제의(祭儀)의 세속화”*이자 *“권력의 분산화”*로 해석될 수 있다. 모두가 함께 먹는 고기, 함께 불을囲둘러앉는 식사는 한국인의 민주적 공유문화와 맞물려 새로운 미식 질서를 만들어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식탁은 다시 한 번 전환기를 맞는다. 경제 성장과 세계화, 그리고 삶의 질에 대한 관심 증대로 음식 소비의 패턴이 **“감각적 소비와 건강·문화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다folklife.si.edu. 불고기 역시 더 이상 단순히 단백질을 공급하는 영양원의 의미가 아니라, 미각적 정체성의 상징으로 부상한다. 다시 말해, 맛의 시대에 불고기는 한국인의 감각과 미학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다.
불고기의 양념에는 한국인의 감각 철학이 응축되어 있다. 불고기 양념장은 기본적으로 간장(짠맛), 설탕이나 벌꿀(단맛), 마늘과 파(매운 향신 풍미), 배나 양파의 갈은 즙(은은한 감칠맛과 연육 효과), 참기름(고소한 맛) 등이 어우러진다folklife.si.edu. 여기에 숯불이나 화염에 구울 때 나는 특유의 **불맛(훈연 향)**이 배어든다. 이러한 조합은 동아시아 전통 미각론에서 말하는 오미(五味)의 조화 — 단맛·염맛·산맛·신맛·고맛의 균형 — 가운데 특히 단맛, 염분, 감칠맛의 절묘한 균형을 보여준다. 또한 불고기 양념의 베이스인 간장과 고기에서 우러난 감칠맛은 일본의 우마미(旨味) 개념과 통하며, 숯불의 스모키함은 서양의 바비큐 문화와도 접점을 가진다. 다시 말해 불고기는 전통적인 오미의 원리를 현대의 감각 언어로 재구성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산업화 시기에 대량 생산된 설탕, 화학조미료 등이 한식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불고기 양념은 여전히 배, 양파 같은 자연 재료를 통한 단맛과 연육을 강조함으로써 자연주의 미각을 지켰다folklife.si.edu. 이는 **“맛으로 문명을 표현하는 한국식 미학”**의 한 정점이라 볼 수 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불고기는 국내외적으로 르네상스를 맞이하는데, 그 양상은 단순히 옛것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세 가지 층위에서 이루어진 재해석이라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재료의 혁신이다. 한국인의 소고기 사랑은 이제 단순한 소비를 넘어 한우 품종의 지역성, 사육 방식, 숙성 기술 등으로 확대되었다. 예컨대 한우 고기의 풍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건조 숙성(dry aging)*이나 빙온 숙성(거의 어는 점 부근의 저온 숙성) 기술이 미식 산업에 접목되어, 불고기의 재료를 한층 정교한 기술 문명의 산물로 만들었다. 냉장 유통망의 발달로 도축한 지 하루 이틀 내의 신선육만 쓰던 관행에서 벗어나, 숙성육의 깊은 맛을 불고기에 활용하는 시도가 보편화되었다. 또한 지역별 한우 브랜드(예컨대 평창 한우, 횡성 한우 등)가 각자의 사육 노하우로 경쟁하면서, 불고기의 재료 고기 자체가 하나의 프리미엄 문화상품으로 격상되었다. 전통 시대엔 소 자체가 귀했지만 현대엔 어떤 소를 어떻게 길러 어떤 숙성 과정을 거쳤는가까지 감각의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이다.
둘째는 양념의 세계화이다. 불고기 양념은 이제 전 세계 한식당과 가정에서 통용되는 한국 미식의 언어가 되었다. 간장 베이스에 달콤짭조름한 불고기 양념 맛은 한국인의 소울푸드일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가장 친숙한 한식의 풍미로 자리잡았다chosun.comfacebook.com. 실제로 해외 여론조사에서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식으로 불고기가 항상 상위에 꼽히고, 미국 등지에서는 불고기 소스를 병제품으로 판매하거나 불고기 타코, 불고기 버거처럼 퓨전 요리에 응용되는 등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folklife.si.edu. 1990년대 이후 한식 세계화 흐름 속에서 불고기는 비빔밥, 김치 등과 함께 세계적 코드로 활용되어 왔다. 예컨대 불고기 피자나 불고기 스파게티처럼 서양 음식에 불고기 양념을 접목하면 “한국식 풍미”가 즉시 더해지기 때문에, 한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사례가 많다folklife.si.edu. 한편으론 이러한 세계화 속에서 지역별 불고기 스타일도 재조명되었다. 서울식 불고기는 전골에 가까운 국물 자작한 형태이고, 전라도 광양 불고기나 경상도 언양 불고기는 양념에 재운 고기를 숯불 석쇠에 구워내는 스타일로 유명하다folklife.si.edu. 각기 개성이 다른 불고기 조리법들이 한식당의 메뉴로 소개되고, 해외의 미식가들도 그 차이를 인식하게 되면서 불고기는 단일 요리가 아닌 다층적 미식 문화로 이해되고 있다.
서울의 한 불고기 전문점에서 불고기를 굽는 모습. 서울식 불고기는 불고기판 가장자리에 육수를 붓고 당면 등을 넣어 국물과 함께 즐기는데, 이러한 번철 불고기 조리법은 1950년대 이후 서울에서 발전한 형태이다folklife.si.edu. 불고기판 가운데 고기를 굽고 가장자리에서 국물이 자박하게 끓어 당면이나 밥을 비벼 먹을 수 있다.
셋째는 식탁 연출의 진화, 즉 공유 문화의 시각화이다. 불고기 식사는 본래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고기를 함께 구워 먹는 형태다. 이러한 나눔의 형태가 현대에 와서는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었다. 예컨대 가족 단위 외식이나 직장 회식에서 불고기를 함께 구워 먹는 모습은 한국인의 정(情) 문화, 공동체 문화를 그대로 드러낸다. 불고기집에서는 중앙의 불판을 사이에 두고 모두가 고기를 집어 서로의 접시에 놓아주거나, 익은 고기를 함께 나눈다. 이러한 행위는 서양의 코스 요리와 대비되는 참여형 식사로서, 전통적인 두레 문화나 품앗이 정신과도 통한다. 최근에는 외국의 셰프나 미식 평론가들도 한국의 BBQ 문화를 체험하면서 “불고기 식탁은 요리를 매개로 한 하나의 작은 축제 같다”고 평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불고기 식사는 현대에 이르러 공유의 의례로서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전통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음식 자리를 통해 공동체적 가치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미각의 문명화라 할 수 있다.
요컨대 21세기의 불고기 르네상스는 재료의 과학화, 양념의 세계화, 식탁 교류의 문화화라는 세 축을 따라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전면적인 업그레이드이며, 맛과 문화 양면에서 전통의 재창조라 할 만하다. 불고기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진화하는 미각 문명의 아이콘이다.
불고기의 역사는 곧 한국인의 문명사이다. 앞서 살핀 궤적을 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다시 말해, 불고기 르네상스란 제의적 고기가 감각적 고기로 귀환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귀환은 단순한 원점 회귀가 아니다. 과거 제천의 제단 위에 놓였던 고기가 현대에 똑같이 제단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식탁 위에서 “공유의 의례”로 되살아난 것이다. 신성함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 대신 함께 굽고 나누는 행위 속에 공동체적 의례성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이러한 재탄생은 제의의 세속화일 뿐 아니라,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한곳에 집중되었던 권력의 미학이 모두에게 분산된 미식 민주주의의 구현이라 할 만하다.
불고기는 현대에 이르러 제의, 산업, 감각을 잇는 가교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제사에서 다루던 불의 의식이 불고기 불판 위에서 친숙한 조리 행위가 되었고, 산업화 시대 권력자들의 특권 음식이 모두가 즐기는 대중 음식이 되었으며, 이제는 그 맛 자체로 한국의 문화를 대변하는 예술이 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음식사 연구자들은 불고기를 가리켜 **“한국 문명이 이룩한 가장 완성된 음식”**이라고 평가한다. 오랜 세월 축적된 전통 (양념과 조리법), 격동의 근대를 거치며 축적된 사회 변화 (공동식문화), 그리고 세계 속에서 인정받은 풍미까지 – 불고기 한 접시에는 한국인의 역사와 철학이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근대 이후 한국인의 식생활 변천 연구』는 한국인의 지난 100년 식탁을 **“근대화의 실험장”**으로 해석했다. 그 실험의 결과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이 바로 불고기라 할 수 있다. 불고기는 신의 음식에서 인간의 음식으로, 다시 세계의 음식으로 성장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제의의 고기에서 권력의 고기로, 다시 감각의 고기로 이어지는 변모의 과정은 한국 사회가 전통과 근대, 공동체와 개인, 신성과 세속을 어떻게 조율해왔는지 그대로 반영한다. 불고기의 변천사는 한국인의 문화적 적응력과 혁신의 기록이기도 하다 –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변화를 이끌어낸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불고기를 굽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그것은 알고 보면 “신과 함께하던 제의의 불”이 “사람과 함께하는 식탁의 불”로 변모한 장대한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조상 대대 이어져 온 3천 년 식문화의 불꽃이 가정과 식당의 연탄불, 가스불 위에서 계속 타오르고 있는 셈이다. 현대의 불고기 자리에는 과거 제천의 제단불, 잔칫상의 촛불, 산업화의 화롯불이 겹쳐 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불고기의 인기와 위상이 국내를 넘어 세계로 퍼지면서도 오히려 한국인 정체성의 재발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1960~80년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사랑받았던 불고기는 1990년대 이후 젊은 세대에겐 다소 고리타분한 옛날 음식 취급을 받기도 했다folklife.si.edu. 실제로 밀레니얼 세대는 피자나 파스타 같은 음식을 선호하면서 불고기 전문점 방문을 부모 세대의 취향으로 여기곤 했다folklife.si.edu. 그럼에도 불고기는 완전히 뒤처지지 않고 학교 급식, 가정 반찬, 대형마트 양념육 코너 등 일상 속에 깊숙이 파고들며 생명력을 이어왔다folklife.si.edu. 그리고 한류 열풍과 함께 해외에서 불고기가 각광받자, 한국인들은 다시금 불고기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청년 세대도 **“우리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불고기를 자부심 있게 받아들이는 추세다.
결국 불고기 르네상스란 맛의 부활인 동시에 문화의 자기 반성이다. 불고기를 통해 한국인은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마주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맛본다. 우리가 불고기를 먹는 행위는 곧 한국인이 자신의 역사를 “다시 먹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한 점 한 점의 고기는 우리 문명의 거울처럼, 신성했던 시절부터 모두의 것이 된 오늘날까지의 이야기를 비추고 있다. 불고기를 한 입 씹을 때마다 우리는 전통의 기억과 현대의 감각을 함께 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안효진, 『근대 이후 한국인의 식생활 변천 연구』(1896~1995년 신문 광고 분석) 및 관련 음식사 논문・언론 기사brunch.co.krlove.seoul.go.krbrunch.co.krfarminsight.netbizhankook.comfolklife.si.edu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