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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May 08. 2022

아, 어여쁜 인간들이여! 오, 멋진 신세계여!

(22.5.8) 멋진 신세계, 이퀄스, 변신, 플라이, 위대한 개츠비

     

  사무실에서 인턴사원이 들어왔다. 말이 없고 수줍은 사람이어서 얘기할 기회는 거의 없었는데 나는 팀장님께 결재를 올리고 문워크로 내 자리로 들어가다 우연히 그의 책상에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꽂혀 있는 것을 보게 되어 잠시 턴을 하여 말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1984와 멋진 신세계를 디스토피아의 오래된 떡밥처럼 비교하지만 그것보다 나에게 더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마약(소마)에 빠진 문명인들 사이에서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는 야만인의 고독이었습니다. 이것은 셰익스피어를 사랑하는 고독한 아싸(MBTI의 I) 남자와 EDM에 빠져있는 인싸(MBTI의 E) 여자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죠.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은 니콜라스 홀트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나오는 영화 ‘이퀄스’를 이 헉슬리의 세계관을 가져와  ESTJ에 의해 지배당하는 결벽증적 디스토피아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들었죠. 하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니콜라스 홀트의 저 순백의 재킷에 매운 닭갈비의 빨간 양념을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처럼 뿌려버리고 싶다. 덧붙여, 저렇게 매일매일 스테이크를 먹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유토피아 아닌가?

  인턴은 앉은자리에서 나를 그윽하게 올려다보며 당최 무슨 소리이신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본인은 이제 막 이 책을 읽기 시작하여 야만인 존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고 이퀼리브리움은 알아도 이퀄스라는 영화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그 야만인 존이 목을 메어 자살했을 때의 상실감을 그에게 말하자, 인턴은 10페이지도 안 본 책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고전은 왜 봐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는데, 사실 나는 고전을 읽기 전에 이미 많은 영화를 먼저 보게 되어서 고전이 지니고 있는 알레고리를 영화적인 수사법으로 편협하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나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플라이’를 너무 어린 나이에 보게 되었다. 중학생 때 친구 집에 놀러 가게 되었는데 마침 친구의 온 가족이 다 있었던 때라 부모님이 재미있는 비디오테이프를 하나 빌려서 같이 보자고 했다. 우리는 쫄래쫄래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부담 없이 볼 수 있을 것 같은 고전 SF ‘플라이’를 (나의 강력한 호기심으로 인해) 빌리게 되었다.

  천재 과학자 세스가 텔레포트 기계를 발명하게 되는데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전송하던 중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와서 파리와 유전자가 섞이게 되고 점차 파리처럼 변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천재 과학자의 여자 친구 베로니카가 구더기를 낳는 꿈을 꾸는 장면에서 친구의 아버지가 기함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고 내 친구 귀에다가 무언가를 속삭이시더니 그 자리에서 나가셨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 친구 아버지를 볼 일은 없었다...)

  비디오테이프는 바로 반납 대상이 되었으나 나는 집에 들고 가서 끝까지 보고는 밥맛이 뚝 떨어져서 저녁을 굶었다. 카프카의 ‘변신’은 그 이후에 읽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러니까 내가 들었던 명성만큼 전복적이지는 않았다. 그레고르는 외모는 흉측하지만 여전히 순응적이며, 무엇보다도 소화액을 내뿜으며 미치광이 과학자처럼 가족들을 모두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할리우드 식이었다면 그레고르가 죽고 난 후, 자신의 방 어딘가에 그레고르가 남겨둔 수십 개의 알들이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변신 2’에서는 그레고르의 후손들이 이 지구를 정복하려고 하고 이것을 알게 된 UN 산하의 특수 조직은 드웨인 존슨을 파견하게 되는데....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옆에 앉아 있던 문이 와서 이야기를 거들었다. 문은 고전 중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한다고 했고, 나는 위대한 개츠비는 ‘F. 스콧 피츠제랄드’가 본인을 개츠비에 그대로 투영해서 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불만스러운 것은 작중에서 개츠비는 약 34세로 추정되는데 어떻게 해서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만한 재력을 가지게 되었는지가 뚜렷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밀주업과 불법 채권거래 만으로 1920년대의 일론 머스크가 될 수 있었나?) 가장 현실적인 인물은 작중의 닉 캐러웨이다. 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금융권에 종사하면서도 작은 집 한 칸 겨우 마련하여 소박하게 살고 있는데 결국 이 작품의 교훈은 바로 그 지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외에도 음주운전을 조심할 것, 이미 헤어진 썸녀는 빨리 잊을 것, 한 방으로 번 돈은 한 방에 없어진다는 것 등등이 있다.

  우리가 여기까지 얘기했을 때, 말이 없던 인턴은 우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컴퓨터를 켜고, 전화를 받고, 끊임없이 침범하는 식물들을 처리하는 곳입니다. 당신은 디스크를 얻고, 시력을 잃지만 통장에 꽂히는 월급을 소마처럼 복용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장소, 멋진 신세계입니다.      


※ 아래의 작품들을 언급했습니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1984 (조지 오웰)

이퀄스 (드레이크 도리머스)

변신 (프란츠 카프카)

플라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랄드)

굿 플레이스 (NBC,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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