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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Aug 13. 2017

불안한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

감자, 막자, 보자!

 사람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끝없는 욕심 때문이다.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소유할  수 없다. 그래서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으면 결국 불행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자기는 욕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 안에 욕심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저 우리 가족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원한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소망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소망이 조금 더 구체화될 때 점점 욕심으로 변질된다. 이왕이면 30평 이상의 아파트면 좋겠다. 아이를 낳을 때쯤이면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 가서 살고 싶다.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면 각자 방 하나씩은 있어야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조금씩 욕심이 확장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현재 내 상황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행복은 어느새 저 멀리서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하루를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본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 자신의 내면을 들어야 보는 시간은 극히 드물다. 수많은 책을 읽고, 유명한 사람들의 강연을 들으러 다닌다. 그러나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나는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불안감이 망망 대해로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무소유의 삶을 살다가신 법정 스님이 계시다. 그분은 산속 깊이 오두막 한 채를 짓고 사셨다. 스님은 집에 책이 한 두 권 정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잘 읽지 않는다고 하셨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더 큰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조용히 벽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시간이 좋다고 하셨다. 아마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모아 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또한 세상 헛 것에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처럼 우리는 귀를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듣는다. 학창 시절에는 좋은 대학을 가라는 메시지가, 회사에는 성과를 내라는 메시지가 한 여름 매미처럼 쨍쨍하게 귓속을 파고든다. 물론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모두 필요한 메시지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정말 나의 삶을 안내해 주는 나침반 될 수 있을까? 세상이 주는 메시지만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 나에게 의미있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내면의 소리를 놓칠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러한 내면의 소리 대신 외부의 메시지에 귀를 더 기울기가 때문이다. 나 역시 하루에도 수없이 들리는 이러한 메시지들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퇴근 후에도 계속 공부를 했다. 그마저도 하지 않을 때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라도 보았다. 그렇게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기쁨과 행복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산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나는 도대체 언제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잠시 귀를 막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내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인가? 중요하다면 왜 중요하지? 중요하지 않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내 마음에 불안감 대신 평안이 찾아왔다. 뭔가 나에게 맞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주는 확신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불안감이 들 때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앞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너무나도 헛것이 많아서 눈이 있지만 진실을 볼 수 없고, 귀가 있지만 진리를 들을 수 없을 때가 많다. 나는 최근 한 고급 주택가를 거닐면서 나도 저런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어 시세를 알아보았다.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는 구매하기는 어려운 금액이었다. 욕심이 생겼다가 현실을 보자 낙심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행복을 위해 저 집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내면의 목소리를 그렇지 않다 대답했다. 저 집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저 집을 사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현재 내게 주어진 공간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해 보였다. 

 며칠 전 '앙리 앙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여자가 나온다. 그녀는 시력을 잃게 된 후로 신기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있으면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사람의 점을 봐주거나, 그 사람의 잊혀진 과거를 생각나게 해 주었다. 앞을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없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것이다. 우리는 불안한 현재를 살고 있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해야 돈이 나오는 경제 구조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자기 내면을 보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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