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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Mar 14. 2016

회사를 떠났을 때 찾아온 깨달음

5%가 아닌 95%를 보는 마음

    나는 지난 10년 동안 세 군데 직장을  다녔다. 앞으로 계속 직장 생활을 한다면 꽤 많은 직장을 전전할 것 같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나는 5개월 정도를 보냈다. 사실 몇 달을 일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최소 3개월은 일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채용 후 3개월까지는 인턴기간이라고 해서 매월 88만 원 정도를 월급으로 받았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4개월부터 정식 월급을 받았다. 매일 11시까지 야근을 했고, 가끔씩 회식을 하는 날이면 1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는 일도 잦았다. 직장을 그만둔 주된 이유는 원하는 회사에 입사 지원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회사는 그 해에 채용 공고를 내지 않았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정확히 4년을 일했다. 몇 개월간의 백수기간을 거쳐 힘들게 들어간 회사였다. 그래서 굶주린 하이에나 마냥 일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 때부터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일'만 생각했다. 퇴근 후 샤워시간에는 업무에 대한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라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르키메데스처럼 샤워 중에 유레카를 자주 외쳤던 기억이 난다. 

    일속에 파묻혀 살았지만 한 번도 피곤하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이면 아쉬운 마음으로 퇴근을 했고, 일요일 저녁이면 그 다음날 회사를 가는 기대감으로 살았다. 이렇게 일을 하니 3년 만에 하던 일을 3배 이상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 최연소 Best Employee 상을 받았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 뒤에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내 몸과 마음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계속 몸 어딘가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때로는 너무 고통스러워 자리에 앉아서 일하기 조차 어려웠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왔으나 그때뿐이었다. 약을 먹지 않고 조금만 무리해서 일을 하면 어느 새 몸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니 우울해졌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특히 업무 상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점점 피로감을 느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가치가 없으면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포식자에서 먹히지 않기 위해 계속 머릿속으로 바둑을 뒀다. 그러나 20년 이상 정글에서 살아남은 그들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살점을 뜯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살기 위해 기를 쓸수록 그들은 택견의 고수처럼 나의 힘을 역이용에 가볍게 나를 쓰러뜨렸다. 허무했다. 그 후로 사람들을 점점 멀리하기 시작했고,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졌다. 

    몸이 아픈 건 약으로 버티면 되었는데, 마음이 힘든 건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매일 밤마다 괴롭고 우울했다. 그러면서 점점 파괴되어 가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게 힘들었다. 회사를 떠날 때가 된 것을 느꼈다. 손 하나 까닥하지 못할 만큼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첫 회사를 호기롭게 그만두고 한 동안 백수생활을 했기에 이번에는 다음 일자리를 알아보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마지막 부서 회식을 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정성껏 준비한 선물과 함께 롤링 페이퍼를 전달해 주었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롤링 페이퍼에는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한 나에 대한 좋은 점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회사를 다니면서는 알아보지 못했다니... 

    부서 회식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회사에는 이렇게 90%의 좋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고작 10%의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했구나...'

    그렇다. 나는 고작 10%, 아니 어쩌면 전체의 5%밖에 안되었을 사람들 때문에 나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며 살았다. 


    당시의 깨달음으로 나는 인생의 몇 가지 변화를 경험했다. 특히 부정적인 면만 깊게 파고드는 습관이 조금씩 개선되었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때론 진급에서 누락이 되기도 하고,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안 맞는 사람 때문에 힘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혹시 5%의 부정적인 면만 보고 나머지 95%의 긍정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사람과 사물 그리고 현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간혹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도 전과 달리, '그 사람이 비록 나에게는 상처를 주었지만, 분명 저 사람도 자녀들에게 다정한 아빠요. 누군가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좋은 부분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론 정말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을 때는, 내 곁을 지켜주는 가족들과 지인들을 생각하며 5%의 악연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95%의 보석과도 같은 소중한 인연들에 더 마음을 쏟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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