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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Mar 29. 2016

헬싱키에서의 마지막 일기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친절하게 대하는 사회가 아닐까? 조금 더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사람 간에 계급을 세우듯 위아래를 따지는 저급한 사회가 아니라 부족하면 채워주고 나누어 주어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사회. 그래서 어느 하나 낙오자가 없어 범죄도 없고 서로를 신뢰하는 안전한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에게 헬싱키는 그런 곳이었다. 사람들 간에 평등함이 있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가 배려하는 사회. 어느 누구 하나 바쁘게 움직이지 않고, 햇살과 스쳐가는 바람을 충만하게 느끼며 살 수 있는 곳. 여유가 있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어 주고, 횡단보도 앞에 사람이 서있으면 차가 양보해 주는 그런 곳. 이런 것이 왜 내가 사는 곳에서는 어려울까? 나는 그런 사회가 당장 실현되기를 꿈꿀 수는 없을지라도 조금이나마 내 삶에서 그러한 여유와 삶의 태도가 묻어나길 기대한다. 



 지난 3주간 핀란드에서의 삶은 나에게 많은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다. 행복했다. 다시 이 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회의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삶이 내가 사는 곳에서도 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싶다.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일하여 내가 노력한 대가를 충분히 인정받고, 그리고 내가 휴식을 취해야 할 때 내가 나 스스로를 단련해야 할 때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내 삶에 그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용기와 노력을 해야 하겠다. 


 칼스버그 맥주 한 잔으로 몸이 노곤 해 진다. 이루마의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헬싱키 공항에 위치한 노르딕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있다. 비행기에 타기 전까지도 나는 행복감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 이 곳에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그렇게 시끄럽지 않다. 내가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하기에 참 좋은 장소이다. 사람이 없는 곳 아니 적당히 있는 곳에 사는 것도 내 삶에 필요할 것 같다. 붐비는 곳이, 그렇다고 사람이 전혀 없는 곳은 아니지만, 나를 충전해 나가는 데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았다. 



 음식을 주문하면 천천히 음식이 나온다. 그 시간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허겁지겁 먹고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시간을 즐기면 된다. 서두를 필요 없다. 나는 시간의 지배자요, 시간은 내게 주어진 선물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 시간에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여기가 좋다. 돈만 많으면 무엇하겠는가? 허둥지둥 허겁지겁 살다가 번 돈도 다 못쓰고 가는 인생인 것을… 우리는 서울 조그마한 땅떵어리에서 둥지를 틀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것을 포기하며 보낸다. 가족 간의 사랑, 대화, 여유, 보살핌 등등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풍요로움에 우선순위를 낮추고, 아파트 새장 하나를 얻기 위해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간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것이 나의 현실인 것을 어떡하랴. 현실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나의 삶의 태도와 관점을 바꾸는 것은 어느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실험을 머지 않은 미래에 꼭 해 보고 싶다. 



이 글은 작년 8월 어느날에 쓴 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일기를 쓰고 나서 3개월 뒤 육아휴직을 신청하였습니다.

지금은 가족 간의 사랑, 대화, 여유, 보살핌 등등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들에 우선순위를 맞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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