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남편과 부산 기장으로 첫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다행히 남쪽은 막 장마가 끝난 참이었다. 우리가 지낸 숙소에는 바다를 따라 근사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고 귀여운 소품과 다양한 책을 파는 아주 큰 책방도 있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수영장에서 따가운 볕을 맞으며 수영도 실컷 했고 술과 음료와 과일, 컵라면, 초콜릿이나 감자 칩 같은 먹을거리를 파는 작은 마켓에서 검은색 토분을 사서 산책로를 걸었다. 바다에 해무가 짙게 껴 있었고 뭉게구름 사이로 석양이 지고 있어 하늘 색깔이 예뻤다. 우리는 연신 감탄하며 산책로를 따라 숙소로 돌아와 욕조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했다. 반신욕을 하며 책방에서 산 책을 읽었다.
이박 삼 일간의 휴가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 안에서 보내며 자주 전동 휠체어를 탄 중년의 남자를 만났다. 조식을 먹었던 레스토랑, 수영장,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을 산 책방과 간식거리와 토분을 샀던 마켓, 주차장과 전망대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그 풍경은 사뭇 낯설게 느껴졌는데 자유롭게 휠체어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는 사람을 여행지의 숙소에서 만나는 일은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교직생활 중 나는 휠체어를 타는 학생을 두 명 만났는데 두 명 모두 근육의 힘이 점차 약화되는 근이영양증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만났던 학생이 학예회 공연을 위해 장래희망을 그리며 자신의 장래희망은 ‘아빠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점점 걸을 수 없게 되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어린이의 마음은 여전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만났던 학생은 사 학년이었는데, 자주 일 학년 때 뛰어다녔던 일을 이야기했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그 이야기를 웃으며 들었다. 위로 같은 건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휴가를 온 가족이 많았다. 임신 팔 개월 차, 어디를 가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이제 어디를 가든 아이들만 보인다. 이렇게 남편과 둘이서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것도 마지막이겠지. 염려와 불안,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자그마한 기대감이 뒤엉킨 마음으로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겪어보기 전에는 느끼지 조차 못하는 감각이 있다. 임신을 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든다.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은 만큼 휴대용 유모차도 자주 눈에 띄었다. 아직 유모차를 사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어떤 유모차를 사야 할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혼돈에 빠져 있던 참이다. 사람들이 끌고 다니는 유모차를 눈여겨보다 보니 그제야 이 넓고 거대한 숙소 안 이곳저곳에서 휠체어를 타는 중년의 남자를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숙소 안 대부분의 곳에 유모차가 손쉽게 다닐 수 있도록 넓고 매끄러운 길이 만들어져 있었고 넓은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학생이 휠체어를 타고 신나는 표정으로 어디든 자유롭게 놀러 다니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움츠러들지 않고 학교 안의 모든 곳을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을. 다른 고등학생과 똑같이 휠체어를 타고 마라탕을 먹으러 가고 간식으로 탕후루도 사 먹으러 갔으면 좋겠다. 건물 입구의 턱이나 계단이 학생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지 않았으면. 휠체어의 바퀴만 굴리면 어디든 갈 수 있었으면.
겪어보기 전에는 느끼지 조차 못하는 감각이 있다. 이번 여름휴가에서 휠체어를 타고 휴가를 즐기는 중년의 남자를 마주치지 않았다면 나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째서 수많은 여름 휴가지에서 한 번도 휠체어를 탄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는지. 바다에 짙게 깔린 해무 아래에서 찰싹하는 소리를 내며 크게 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나는 숨이 조금 막힌 채로 생각했다. 겪어보지 못하면 알 수 없지만 애를 써서 길러야 하는 감각이 있지 않느냐고. 건물 입구의 턱을 없애는 감각, 그곳이 어디든 경사로를 만드는 감각, 이 층 이상의 건물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앨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감각. 세상에는 그런 감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