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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Sep 24. 2024

유덕문구의 힘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는 문구점이 두 곳 있었다. 한 곳은 이름이 ‘꿈돌이 문방구’였는데 다른 한 곳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나는 두 곳 중 ‘꿈돌이 문방구’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시절 등교하는 길 문구점에 가면 문구점 안은 늘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고 샤프 하나라도 사려면 아이들 틈에 끼어 내 순서가 올 때까지 손을 위로 내밀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검은색 제도 샤프, 반짝이 젤리 펜 같은 걸 끝끝내 골라 사고 또 사고는 했다. 문구점에서 물건을 사는 일에는 늘 큰 기쁨이 따랐다.


  요즘은 학교에서 대부분의 준비물을 준비해 주니 그 시절만큼 문구점이 호황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학교 앞이라고 해서 문구점이 꼭 있지도 않고, 문구점보다는 군것질거리와 문구류, 액세서리와 작은 장난감을 함께 파는 작은 무인 가게가 눈에 더 자주 띈다. 그래도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물건이 모두 모여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곳이나 다름없다. 갈 때마다 새롭게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 곳. 매일 가도 또 가고 싶고 설레는 곳. 작은 캐릭터 지우개나 수첩, 스티커와 같은 별 것 아닌 물건들이 주었던 감정의 풍요를  떠올리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내가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앞에는 요즘 흔히 보기는 힘든 ‘유덕문구’라는 이름의 문구점이 있다. 간판이 주는 느낌도 꽤나 레트로 한데, 이름마저 ‘유덕’이라니 ‘꿈돌이’와는 사뭇 다르다. ‘덕망이 있다’는 다소 난해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학교 앞 단 하나뿐인 유덕문구는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다. 유덕문구에는 별사탕도 있고 산리오도 있고 보석 반지도 있고 쫀득이와 아이스크림도 있으니까. 작년에 졸업한 우리 반 학생은 용돈을 모두 유덕문구에서 파는 별사탕에 탕진했다. 졸업하면 유덕문구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마 중학교 앞에서 또 다른 유덕문구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학교만큼이나 매일 출석하는 문구점을 나는 이 학교에 근무하는 이 년 동안 딱 한 번 가보았다. 여름방학을 맞이하기 이 주전쯤, 아이들에게 사 줄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서였다. 선생님이 되어 문구점 밖의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잔뜩 담아 유덕문구에 처음 들어서자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정돈되어 있지 않은 실내와 무질서하게 선반에 매달려 있거나 쌓여 있는 쓸모없는 장난감, 알록달록한 문구류와 맛있지만 건강에 나쁜 간식거리들이 어린 시절의 문구점과 꼭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유덕문구가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 유덕문구는 없는 게 없는 곳이고 가능하다면 그곳에 있는 물건을 몽땅 다 사고 싶을 만큼 가지고 싶은 물건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다. 심지어 가지고 싶은 새로운 물건이 생기고 또 생기는 곳이기도 하다. 문방구와 슈퍼마켓이 전부였던 나의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 좋은 가게가 많이 생긴 지금에 와서도 유덕문구의 힘은 남다르다. 그러고 보면 ‘꿈돌이’라는 이름보다는 ‘유덕’이 훨씬 더 걸맞은 이름인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의 행복은 아주 단순하고 단단해서 나도 단단한 사람이 되게 한다. 내가 성의껏 고른 귀여운 그림책이나 준비한 수업과 놀이, 아이들에게 하는 작은 칭찬이나 장난이 아이들이 가진 삶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한 부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본다. 덕분에 나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 하루하루를 보낸다. 꿈돌이에서 유덕으로, 유덕에서 또 무언가로 아이들의 행복은 조금씩 바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늘 학생들에게 어디에나 하나쯤 있는 유덕문구 같은 존재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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