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출근하는가?"
영화 <다크나이트> 속 배트맨의 모습에서 인간의 삶의 자세와 방향성에 대한 영감을 얻어 작성하게 된 글입니다. 서론 - 본론1 - 본론2 - 본론3 - 결론으로 3부작 글을 구성하였습니다. 이번 글에선 서론과 본론1까지 작성하였습니다.
주제 : 영화 <다크나이트>를 통해 본 현대인의 정체성 - 니체 사상을 중심으로
1.서론 : 니체와 현대인의 가상 대화
2.본론1 : 니체가 이야기한 정체성의 종류
1)두 유형의 허무주의: 능동적 / 수동적
2)니체 관점에서 인간의 성장 과정 : 낙타 –> 사자 –> 초인
3. 본론2 니체의 개념을 통해 본 영화 <다크나이트>
1) 잘못된 초인 : 조커
2) 실패한 초인 : 하비덴트(투페이스)
3) 수동적 허무주의자들의 집합소 : 고담시티
4) 낙타, 사자를 거친 유일한 초인 : 배트맨
(1) 인간의 악함을 입증하고자 하는 조커
(2) 낙타에서 사자로: '너는 ~을 해야한다'에서 '나는 ~을 하고싶다'로
(3) 사자에서 초인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
4. 본론3 현대인의 정체성 분석
1) 어린아이에서 수동적 허무주의자로 : 소년에서 청소년으로
2) 수동적 허무주의자에서 낙타로 : 여드름 고민을 짊어지다
3) 낙타에서 사자로 : 대학교를 뛰쳐나간 낙타
4) 사자에서 초인으로 : 나만의 길을 걷는다
5.결론 : Amor Fati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서론 : 니체와 현대인의 가상 대화
니체는 1887년 책 『유고』를 통해, 신이 죽어버린 틈을 타 싹트고 있는 허무주의가 세상을 곧 지배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가 말하는 허무주의는 '목표가 결여되어 있으며 '왜'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 예시를 보자. 만약 오늘 아침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당신은 왜 사나요?'라고 묻는다면, 당황스러운 모습과 함께 대꾸없이 지나가거나 '그냥요.', '그런 걸 왜 묻죠?'라는 대답을 하며 피곤이 가득한 걸음으로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을 볼 것이다. 왜 행동하는지 모르는 이 모습이 니체가 정확히 지적한 모습이 아닌가? 지나가던 이에게 다시 한 번 왜 출근하느냐고 묻는다면 '가족이 있어서', '일이 좋아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등등 여러 대답을 들을 것이지만 이것은 제대로된 대답이 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가족이 없으면', '일이 안좋으면', '먹고 살 필요가 없다면' 과연 당신은 출근하지 않을 것인가?
니체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왜 사는지 대답 못하면 당신은 그럼 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목적이 없다면 그 행위는 필연 고통일 것인데, 왜 이유도 모르는 고통을 겪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현대인이 방황하는 원인을 니체는 '오늘날 신은 죽었다.'이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신은 단지 종교에서 섬기는 신만이 아닌 삶의 지표와 같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 가치의 상실과 허무주의의 도래를 의미한다. 신이 죽은 공간을 다른 가치로 채워 넣지 못한 공백 상태로 둔 현대인은 삶의 목적과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글 하단 [미주1] 참고) 현대인이 보여주는 이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니체는 낙타-사자-초인의 과정을 추상적으로 제시하는데, 나는 배트맨이 낙타에서 사자, 사자에서 초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정체성의 성장 방식을 구체적으로 도출하고자 한다.
본론1 : 니체가 이야기한 정체성의 종류
영화 <배트맨-다크나이트>에는 인간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는 니체의 사상을 접목하여 현대인의 정체성을 분석하기 좋은 사례가 된다. 우선 니체의 허무주의와 위버멘쉬(초인)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1)두 유형의 허무주의: 능동적 / 수동적
허무주의는 능동과 수동의 두 갈래로 나뉜다. 수동적 허무주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삶을 책임 지지 않으며 오직 쾌락만을 추구한다. 방탕한 삶을 의미하는 수동적 허무주의와 달리 능동적 허무주의는 인생의 덧없음(無)를 인정한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능동적 허무주의는 사회의 모든 가치를 깨부수며 기존의 생의 소모를 생의 창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인생은 덧없기에 매일 매일을 다른 인간으로 태어나 하루를 축제처럼 살아가고 현생의 기쁨을 만끽하며 내일의 축제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지, 현실을 부정하여 노예의 삶으로 매일을 살면 안된다는 것이다. 능동적 허무주의의 삶을 살기 위해 수동적 허무주의자는 낙타-사자-초인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2)니체 관점에서 인간의 성장 과정 : 낙타 –> 사자 –> 초인
위버멘쉬는 극복하는 인간이라는 독일어이다. 한국에선 초인으로 번역되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슈퍼맨으로 인식되지만,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어린아 이'의 모습을 띈다.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선 낙타와 사자라는 두 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묵묵히 걷는 동물이다. 낙타는 그 일이 자신이 하고싶든 아니든, 자신에 관련된 일이기에 남 탓 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간다. 수동적 허무주의에 빠진 인간은 우선 낙타가 되어야 한다. 신을 찾아가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일은 자신이 묵묵히 책임지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충분히 짊어질 때 비로소 사자가 될 수 있다. 사자는 초원의 왕이면서, 사자가 하는 행동이 곧 초원에서 규칙이다. 사자는 다른 동물이 어떻게 자신을 보던 간에 관계없이 자신의 사냥 욕구에 충실히 맞춰서 행동한다. 사회가 '너는 ~을 해야한다'이라는 규범을 제시 할 때 낙타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내한다. 반면 사자는 낡은 도덕과 규범에 대해 '나는 ~을 하고싶다. 할 것이다'의 태도로 당당히 직면하고 불의에 항거하고, 옳지 않음에 대항한다.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하지만, 사자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는 없는 존재다. 사회에 영향을 받지 않는, 충분히 독립적인 인간이 됐다면 어린아이가 될 자격이 주어진다. 어린아이는 사자와 달리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성인의 굳은 머리와 달리 어린 아이는 모든 대상에 대해 창조적이고 적극적이며 새로운 놀이를 하고 매번 순수한 접근을 한다. 그러면서도 뒤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리는 어린아이의 정신이 곧 초인이라는 것이다. (글 하단 [미주2] 참고)
그러나 말해 보라, 나의 형제들이여.
사자는 할 수 없는 것을 어린아이가 능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약탈하는 사자가 다시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린아이는 천진무구 그 자체이며 망각이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며, 쾌락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시원의 운동이고, 신성한 긍정이다.
창조라는 쾌락을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로부터 격리된 정신은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를 설명하였다.
정신이 어떻게 해서 낙타가 되고, 낙타가 어떻게 해서 사자가 되며,
끝으로 사자가 어떻게 해서 어린아이가 되는 지를.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미주 1] 양대종, 『니체 철학에서 부정적 인간 유형에 대한 고찰 – 배우와 군중 개념을 중심으로』, 『니체연구』, 제 37집, 건국대학교 철학과, 2020, 50
[미주 2] 구성욱, 『니체 정치사상의 비극적 사유를 통한 근대적 존재양식 비판』, 정치학 석사학위 심사 논문, 경희대학교, 2000년 2월, 76